분류 전체보기 883

己巳年燈夕 翰林奏呈 (기사년등석 한림주정) - 李奎報 (이규보)

己巳年燈夕 翰林奏呈   기사년등석 한림주정     李奎報   이규보 기사년 대보름날 한림원에서 지어 올리다.文機障子詩 二首 문기장자시 2수九門淸蹕走驚雷 구문청필주경뢰구문에 우레같은 벽제와 함께 임금님 납시니 蘂闕華筵卜夜開 예궐화연복야개궁중의 화려한 연회가 밤낮으로 열리는구나龍燭影中排羽葆 용촉영중배우보용 촛대 불빛 가운데 깃털 장식이 늘어섰고 鳳簫聲裏送金杯 봉소성리송금배봉황 피리 소리 가운데 금 술잔을 보내오네 三呼萬歲神山湧 삼호만세신산용만세를 세 번 부르니 삼신산이 솟아오르고一熟千年海菓來 일숙천년해과래천년 만에 한 번 익는다는 해과를 보내왔네 恩許侍臣司宴樂 은허시신사연락신하들에게 연회를 즐기도록 허락해 주시니宣花萬揷醉扶廻 선화만삽취부회어사화 가득 꽂고 취해 부축받아 돌아왔네 祥煙繚繞紫宸高 상연료요자신고상..

大殿立春帖 (대전입춘첩) - 曺偉 (조위)

大殿立春帖   대전입춘첩     曺偉   조위대전에 올린 입춘첩. 條風昨夜入承明 조풍작야입승명 봄바람이 어젯밤에 승명전에 불어오니俄頃宮花剪綵成 아경궁화전채성 곧 비단을 잘라 궁중채화를 만들겠네 一氣知時梅柳動 일기지시매류동 일기가 때를 알아 매화와 버들도 피고三光順執泰階平 삼광순집태계평 삼광이 밝으니 점차 크게 태평하겠네  辛盤狼藉春蔬軟 신반랑자춘소연 상에 가득한 오신반 봄나물이 부드럽고琪樹糢糊臘雪晴 기수모호납설청 납설이 개이니 옥 같은 나무가 흐릿하네早向靑陽布新令 조향청양포신영 봄철에 일찌감치 새로운 영을 반포하니昭光先滿洛陽城 소광선만낙양성 밝은 빛이 한양 땅에 먼저 가득하구나 ※條風(조풍) :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만물을 탄생시키는 일을 주관한다. 곧 봄바람을 뜻한다. 사기(史記) 율서(律書)에..

元日翌日立春 (원일익일입춘) - 尹愭 (윤기)

元日翌日立春 원일익일입춘 尹愭 윤기  설날 이튿날에 든 입춘  昨日是元日 작일시원일어제가 바로 설날이었고 新春乃立春 신춘내입춘새봄인 입춘이 되었는데 差遲花照眼 차지화조안눈에 비치는 꽃소식은 더디지만 已喜暖隨人 이희난수인이미 따뜻한 기운 느껴 기쁘구나 黃卷宜雙酉 황권의쌍유서책은 책 상자에 내버려 둔 채 靑絲問五辛 청사문오신부드러운 봄나물 오신반을 찾네 老夫昔慵起 노부석용기늙은이 예전에는 늦잠을 자다가 今却坐淸晨 금각좌청신오늘은 이른 새벽 일어나 앉았네  ※黃卷宜雙酉(황권의쌍유) : 황권(黃卷)은 누런 서책을 말하고, 쌍유(雙酉)는 1000 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었다는 중국의 대유산(大酉山)과 소유산(小酉山)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책을 보관해 두는 서가(書架)나 책 상자 등의 뜻으로 쓰였다.

次退溪元日見寄之作 (차퇴계원일견기지작) - 黃俊良 (황준량)

次退溪元日見寄之作   차퇴계원일견기지작     黃俊良  황준량  퇴계가 정월 초하루에 부쳐준 시에 차운하다  餞臘迎春欲曉天 전랍영춘욕효천섣달 보내고 봄을 맞아 동이 틀 무렵에 山齋獨坐意茫然 산재독좌의망연산속 집에 홀로 앉으니 마음이 아득하네行臨蘧瑗知非歲 행림거원지비세거원이 잘못을 알았던 나이가 다가오니 已到鄒軻不動年 이도추가부동년 맹자가 부동심이라던 나이에 도달했구나 聖處工夫難下手 성처공부난하수성인을 공부하는 것은 손 대기 어려운데 頭邊光景劇奔川 두변광경극분천세월은 물살처럼 빨리 백발을 재촉하니 何緣免被他歧惑 하연면피타기혹어찌하면 기로에서 미혹을 면하게 될까正路前頭試着鞭 정로전두시착편바른길 머리에서 채찍을 휘둘러 보리라  後醉屠蘇若病狂 후취도소약병광늦게 도소주에 취하여 미친 것처럼 되니客懷多緖轉堪傷 객회..

봉래시집(蓬萊詩集)을 완역(完譯)하며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의 봉래시집(蓬萊詩集)을 번역하면서.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라는 시조 태산가(泰山歌)를 지은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은 조선 중기의 관료이자 시인 묵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이 시조를 모르는 이가 없고, 해서(楷書)와 초서(草書)에 뛰어났고 특히 큰 글자를 잘 써서 안평대군(安平大君), 김구(金絿), 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4대 서예가로 일컬어진다. 또한 아우 양사준(楊士俊) 양사기(楊士奇)와 함께 시문에도 뛰어나 중국 송나라의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의 3부자[미산삼소 : 眉山三蘇]에 견주어졌으며, 아들 양만고(楊萬古)도 문장과 서예로 이름..

飛字記 (비자기) - 西坰 (서경)

記 飛字記   비자기     西坰   서경楊蓬萊 辛巳年間 謫海西 甲申五月二日 捐館舍 양봉래는 신사년(1581년)간에 해서로 귀양을 갔다가 갑신년(1584년) 오월 이일 별세하였다.蓬萊於甲子歲 卜居于嶺東之高城都九仙峯下鑑湖之上 名其亭曰飛來봉래공은 갑자년에 영동 고성읍 구선봉 아래 감호 위에 거주했는데 그 정자를 비래정이라고 이름했다.束鯨鬚爲大筆 手書扁額 飛字先成 來亭二字 屢書不稱意 고래수염으로 큰 붓을 엮어서 편액을 썼는데 비(飛)자는 먼저 완성했으나 래정(來亭) 두자는 여러 번 써도 맘에 들지 않았다.將飛字爲簇 挂亭齋之壁上 留一力 守其亭 一日 大風猝起 亭齋鎖戶自開 書籍孱簇 卷出于外비자만 족자를 만들어서 정재 벽에 걸어두고 한 사람을 두어 정자를 지키게 했는데, 어느 날 큰 바람이 갑자기 일어나 정재의 닫힌..

寄淸虛書 (기청허서)

寄淸虛書 기청허서 空靑桑海 玉雪蓬山 是合淸虛攸寓 有那魔障挽 無住九臘耶 儂於春仲 始出火湯 便入金剛 不見道顔只與然師珠師 吃吃不已 當時明月 分照君我 獨自忡悵 回首西傃 歔欷而已 思之不得已 則披詠碧松夢雲二贊 灑然若淸風動竹 霽月籠梅 何用吸三危寒露 茹五秀靈芝耶 君終不返蓬海 吾欲挺身西去 摻執道袂以東來 風雲往來 不惜顧答 書不能旣 又淸虛不我待以南 往歲茹歡 到今不去 心曲未委 道體今乃萬吉 炎海北溟 雲樹杳渺 尋常面目 只憑夢想 每與然師珠師 吃吃稱道不已 神交馳情 唯碧空明月耳 儂雖繫官塞邑 糶余倘畢 開月間決欲解龜還向達忽海上 靡淸虛 誰與消遣餘生 竊念 淸虛亦換星甲 豈宜更往妙香 豈合終老頭流耶 嘗聞 彼二山豐厚 資生理有裕 故俗僧好居 亦何異暮林鳥獸 大澤魚龍耶 蓬萊天下一名山 而曉先 天下陽氣攸宗 生佛眞仙 君我今日 非萬幸中萬幸耶 淸虛昔誚我已忘白玉峯 ..

友人祭文 (우인제문) 外

友人祭文   우인제문 浮雲蓊鬱兮 君安止只 流水蕩潏兮 君焉至只 上下黲黷兮 東南湯爍些 西有故國兮 父母在堂些 北有淸溪兮 鷗鷺交翔些 盍歸來兮 翩翩披髮髮兮下太荒 友人祭文   우인제문 친구의 제문  浮雲蓊鬱兮 君安止只 구름은 무성하게 떠 있는데 그대는 어디에 머무는가流水蕩潏兮 君焉至只물은 세차게 흘러가는데 그대는 어디에 이르려는가上下黲黷兮 東南湯爍些천지는 혼탁하고 동남은 뜨겁게 끓어오르고 西有故國兮 父母在堂些 서쪽의 고향에는 부모님이 집에 계시고 北有淸溪兮 鷗鷺交翔些 盍歸來兮북에는 맑은 개울에 갈매기 해오라기 섞여 나는데 어찌 돌아오지 못하는가. 翩翩披髮髮兮下太荒풀어헤친 머리가 나부끼니 매우 황당하구나  萬曆二年甲戌 江陵祈雨祭文   만력이년갑술 강릉기우제문祈輒得雨 民咸悅服 曾守三疊 遇大旱 作祝親禱 環百里大霈三日 不..

孝友門傳 효우문전

孝友門傳   효우문전  門去縣西十五里自作村大道右 吾七叔文化柳仁 善公叔之旌也 公 某朝某之後 世登槐棘 音徽不昧 公生而端秀 長益敦方 秉禮律己 治喪葬必有聞 薦祀祭必親執 鄕黨畏敬 兄弟之困於資地者 必分其衣食 惡其寒餒 不敢數 怒曰 兄弟一閭 天下至樂 爾何間朝夕 片時相違 鬱陶已甚 作樗蒲戱 賭貨物 陽負輸與 必欲分張 然後以安于心 蓋公孝友天至 一家愛如父母 畏若神明 庭戶無間言 子弟無過擧 余嘗一拜于門屛 辱賜之坐 肅乎其容 金相而玉振也 鏘鏘乎其言 若鳳鳴而韶奏也 斬斬焉井井焉 其儀可度 諤諤焉囂囂焉 其知有立 如近玉雪照映人也 對光風霽月 獨立乎高山鉅海之上也 某年 以行薦 徵以四山監役 俄見罷 在官凡幾月分 山直夫遮回路 泣曰 天奪我父 吾將奈何 至今怨慕 行相問北路曰 柳父安否 兄弟凡五人 公爲適 曰恩善 醇純寬厚 有長者風 文童簡古 擧必高選 中年遜不赴 曰禮..

鄭掌令浦記 (정장령포기)

鄭掌令浦記   정장령포기  由縣距北十里 有野曰新灌浦 幾八九里 可澤五十斛 吾從兄楊混曰 古掌令鄭某所始也 某一作子 聞說 鄭十八登第 三十授掌令 乃老灌浦水 耕以資 資少裕 曰無庸 悉推與寒餒 闔境以至 茅茨數椽 蓽戶繩樞遇變節必移 環新野一區 陶穴行窩 隨步可見 布被短褐 竹杖芒鞋 囂囂如也 與與如也 或告遊楓岳 謝曰 雲山千萬疊 固已藏吾胸中 以神遊之 何必勤館人勞脛脰 然後得遂方外之志哉 或亦不行 嘗入洛 駑駘短僕 按轡徐行 行遇釋祝石嶺 驚曰 止或泥之 嶺逢凶邪 吾其歸與 疾驅不顧 縉紳途過 必式其里 傳告遠去 必欲無見 年至耄耋 以道終 職姓加浦 時人所命也 名字不傳 口耳失也 鄭無子 楊混云 鄭掌令浦記  정장령포기由縣距北十里 有野曰新灌浦 幾八九里 可澤五十斛현으로부터 북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곳에 들이 있는데 신관포라 한다. 거의 8~9리쯤 되며 곡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