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곡(蓀谷)과 삼당시인(三唐詩人) 13

武夷洞 무이동 - 孤竹 崔慶昌 고죽 최경창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은 백광훈(白光勳) 이달(李達)과 함께 당시(唐詩)에 뛰어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으며, 이이(李珥) 송익필(宋翼弼) 최립(崔岦) 등과는 무이동(武夷洞)에서 함께 수창(酬唱;시나 노래를 서로 주고받으며 읊음)하였다. 또한 정철(鄭澈) 서익(徐益) 등과도 삼청동에서 교류하였으며, 백광훈(白光勳) 송익필(宋翼弼) 이산해(李山海) 최립(崔岦) 이순인(李純仁) 윤탁연(尹卓然) 하응림(河應臨)과 함께 조선시대 팔문장(八文章)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문명(文名)을 날렸고, 서화에도 뛰어났다. 무이산(武夷山)은 중국 남동부 복건성(福建省)의 명산(名山)으로 남송시대 유학자 주희(朱熹)가 무이산 아래에 머물면서 그곳의 승경(勝景)을 찬미하며 지은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로도 유명하여 조선시대..

孤竹 崔慶昌(고죽 최경창)과 洪娘(홍랑)

孤竹 崔慶昌(고죽 최경창)은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시명(詩名)이 잘 알려져 있으나, 관북 홍원(洪原) 관기(官妓)였던 홍랑(洪娘)과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하다. 홍랑(洪娘)은 조선시대 기녀(妓女)의 신분으로 사대부가(士大夫家)의 족보(族譜)에 그 이름을 올리고 해주 최씨 문중(門中)의 선산에 묻혀 해마다 시월에 시제(時祭)를 받는 분이다. 최경창(崔慶昌)이 함경도 북도평사(北道評事)가 되어서 경성(鏡城)에 부임했을 때 시문을 좋아하고 특히 최경창 본인의 시문을 좋아하는 관기인 홍랑(洪娘)을 만나게 되었다. 시문(詩文)을 통한 교감(交感)이 사랑으로 발전하여 동거하던 중 최경창(崔慶昌)이 임기가 끝나 한양으로 떠나게 되자, 홍랑은 쌍성(지금의 永興)까지 나아가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에 함관령(咸關嶺)에서 우리..

效崔國輔體四時 효최국보체사시

이번에는 손곡(蓀谷) 李達(이달)의 效崔國輔體四時(효최국보체사시)라는 시를 감상한다. 최국보체 사시를 본받아 지은 시라는 뜻인데,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 옥봉 백광훈(玉峯 白光勳)과 같이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리던 손곡은 당나라 시인으로 유명한 최국보의 시를 좋아했던 것 같다. 최국보(崔國輔)는 당조(唐朝)때 시인으로 생몰연대 및 자호(字號)는 분명치 않으며, 여인의 정한(情恨)을 즐겨 노래했다 한다. 화려하고도 환상적인 최국보의 시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여, 오랫동안 많은 시인들이 이를 모방하여지었으며, 손곡 이달은 물론 그의 제자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작품에도 최국보의 시를 모방한 작품이 다수 보인다. 效崔國輔體四時 효최국보체사시 최국보체 사시를 본받아 曉色珊瑚薦 효색산호천 새벽빛은 산호를..

蓀谷과 孤竹 崔慶昌-望孤竹村莊(망고죽촌장)

孤竹崔慶昌(고죽 최경창, 1539~1583)은 이달(李達,1539년~1612년)과 동년배의 친구이며 백광훈과 함께 삼당시인으로 앞서 금대곡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서로를 믿고 아끼며 활동하였으나 손곡보다 30년이나 먼저 세상을 떴다. 이 시는 고죽이 세상을 떠난 5년 뒤 고죽의 무덤을 찾은 손곡이 고죽을 그리며 지은 시로 생각된다. 望孤竹村莊 망고죽촌장 고죽 무덤의 무성한 풀을 보며 遙望村莊漏滿巾 요망촌장루만건 무성한 풀 멀리 바라보며 눈물 수건 적시네 五年墳樹蔽荊榛 오년분수폐형진 오년 된 무덤에 가시덤불 무성하게 덮였구나 西州門外羊曇醉 서주문외양담취 양담이 취하여 서주 문 밖에 찾아오니 更有山陽笛裏人 갱유산양적리인 산양 옛집 피리소리 듣는 사람 또 있구나 ※ 羊曇(양담) : 晉(진) 나라 사람으로, 謝安..

蓀谷과 孤竹 崔慶昌-錦帶曲(금대곡)

蓀谷李達(손곡 이달)은 평생을 떠돌며 시를 짓고 살았다. 따라서 같은 시기 같은 三唐詩人(삼당시인)인 孤竹崔慶昌(고죽 최경창)과 잘 어울렸는데 한 번은 孤竹(고죽)을 따라 靈光(영광)에서 노닌 적이 있었다. 이때 사랑하는 기생이 있어 비단을 사주려는데, 그 비단 살 돈이 없어, 孤竹(고죽)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써서 보냈다. 錦帶曲 贈孤竹使君 금대곡 증고죽사군 비단 띠의 노래. 고죽 사또에게 주다 商胡賣錦江南市 상호매금강남시 장사꾼이 강남 저자에서 비단을 파는데 朝日照之生紫煙 조일조지생자연 아침 해 비치자 자줏빛 안개가 피어나네. 佳人正欲作裙帶 가인정욕작군대 가인에게 사줘서 치마와 대를 만들고 싶으나 手探粧匳無直錢 수탐장렴무직전 손으로 화장 경대 뒤져도 값 치를 돈이 없네. 이 시를 읽은 孤竹(고죽)이 ..

宮詞(궁사) -李達

이번에는 손곡(蓀谷)이달(李達)의 궁사를 소개한다. 궁사(宫詞)란 중국시(中國詩)의 한 형태로서 궁정 내부의 비사(秘事)나 전해오는 이야기를 칠언 절구의 형태로 읊은 시를 말하는데 당나라의 왕건(王建)이 당현종(唐玄宗)의 궁정생활에 대해들은 것을 궁사 100수를 지은 것이 처음이라 한다. 출신의 한계로 벼슬도 못하고 평생을 시로 살아온 손곡(蓀谷)이 궁사(宮詞)를 쓴 사실이 매우 이채롭다. 宫詞1 궁사1 -李達(이달) 平明日出殿門開 평명일출전문개 해 뜨고 날 밝으니 대궐문 열리고 鳳扇雙行引上來 봉선쌍행인상래 봉선을 두 줄로 이끌고 올라오네 遙聽太儀宣詔語 요청태의선조어 태의관의 조칙이 멀리서 들려오고 罷朝新幸望春臺 파조신행망춘대 조회 마친 임금은 망춘대를 향하네. ※봉선(鳳扇) ; 조선 시대 임금이 거동할..

長信宮四時詞 -李達

이번에는 손곡 이달(蓀谷 李達)의 장신궁 사시사(長信宮四時詞)를 소개 한다. 사시사(四時詞)는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풍습이나 풍경을 노래한 시인데, 특별히 장신궁(長信宮)의 사시 풍경을 노래한 것이 이채롭다. 장신궁(長信宮)은 중국 한나라의 궁전인데 장락궁(長樂宮) 안에 있었으며, 주로 태후(太后)가 살았다 한다. 전하여 태후가 거처하는 궁을 말하기도 하는데 손곡의 시에 권력에서 밀려나고 자식인 군왕도 잘 찾지 않는 쓸쓸한 모습의 사시(四時)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長信宮四時詞1 장신궁사시사1 -李達(이달) 別院無人楊柳齊 별원무인양류제 별원엔 사람 없이 버드나무만 늘어졌고 早衙初散戟門西 조아초산극문서 극문 서쪽 이른 관아는 조용히 한가롭네 畫梁東角雙飛燕 화량동각쌍비연 들보 동쪽 모서리에 제비 한 쌍 ..

步虛詞(보허사) -李達(이달)

손곡 이달(蓀谷 李達)의 시 보허사를 소개 한다. 보허사(步虛詞)란 허공을 걷는 노래라는 뜻인데 원래 악부(樂府)의 악곡(樂曲) 이름이다. 주로 신선들에 대해 읊는데, 중국 양나라 때의 학자 유신(庾信)의 〈보허사〉가 유명하며, 우리나라의 문인들 가운데에는 이달(李達)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의 〈보허사〉가 유명하다. 步虛詞1 보허사1 -李達(이달) 三角峨峨鬢上綃 삼각아아빈상초 높다랗게 올린 머리 비단으로 묶었는데 散垂餘髮過纎腰 산수여발과섬요 남은 머리 드리우니 가는 허리 지나네. 須臾宴赴西王母 수유연부서왕모 잠깐 동안의 잔치를 서왕모에게 알리면 一曲鸞簫向碧霄 일곡란소향벽소 한 곡조 난소소리 푸른 하늘로 향하겠네. *西王母(서왕모) ; 중국 도교 신화에 나오는 불사(不死)의 여왕 신녀(神女)의 이름. 사람의..

平調四時詞 -李達(이달)

平調四時詞1 평조사시사1 -李達(이달) 門巷淸明燕子來 문항청명연자래 청명절이라 거리에는 제비가 날아오고 綠楊如霧掩樓臺 녹양여무엄로대 푸른 버들은 안개처럼 누대를 가리네 同隨女伴鞦韆下 동수녀반추천하 동행한 여인과 같이 그네에서 내려서 更向花間鬪草廻 경향화간투초회 다시 꽃 사이에서 투초하고 돌아왔네 ※ 鬪草(투초) ; 풀을 꺾어서 승부를 가리는 아이들의 놀이 平調四時詞2 평조사시사2 -李達(이달) 五色絲針倦繡窠 오색사침권수과 오색 실 바늘로 수놓기도 지겨워서 玉階新發石榴花 옥계신발석류화 옥섬 돌에 석류꽃 새로이 피어났네 銀牀氷簟無餘事 은상빙점무여사 할 일없어 은 침상에 찬 대자리 까니 盡日南園蛺蝶多 진일남원협접다 남쪽 동산에 종일토록 나비 떼가 나네. 平調四時詞3 평조사시사3 -李達(이달) 金井梧桐下玉䦨 금..

손곡(蓀谷)이달(李達)과 봉래(蓬萊)양사언(楊士彦)

봉래(蓬萊)양사언(楊士彦;1517년생)과 손곡(蓀谷)이달(李達;1539년생?)은 20세 이상, 근 한 세대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봉래는 워낙 출중한 손곡의 시재(詩才)를 존중하여 가까이하며 극진히 대하였고 심지어는 서로의 詩에 대해 평을 하는 등의 시우(詩友)로써 교류 하였다. 蓬萊가 蓀谷을 이렇게 존중하고 예우한 것은 그의 시재가 워낙 탁월하였기 때문이지만 그가 서자로 태어나 벼슬도 못하고 방랑하는데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은 봉래(蓬萊)양사언(楊士彦)과 손곡(蓀谷)이달(李達)의 관계를 볼 수 있는 시 몇 수를 올린다. 淮陽府簡寄楊蓬萊 회양부간기양봉래 - 李達 회양부의 봉래 양공에게 올리는 편지 十月發漢陽 시월발한양 시월에 한양을 떠나 今在交洲道 금재교주도 지금은 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