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完譯』蓬萊詩集(완역 봉래시집)-楊士彦/賦, 文, 記. (부, 문, 기.)

鄭掌令浦記 (정장령포기)

-수헌- 2025. 1. 29. 23:03

鄭掌令浦記   정장령포기  

由縣距北十里 有野曰新灌浦 幾八九里 可澤五十斛 吾從兄楊混曰 古掌令鄭某所始也 某一作子 聞說 鄭十八登第 三十授掌令 乃老灌浦水 耕以資 資少裕 曰無庸 悉推與寒餒 闔境以至 茅茨數椽 蓽戶繩樞遇變節必移 環新野一區 陶穴行窩 隨步可見 布被短褐 竹杖芒鞋 囂囂如也 與與如也 或告遊楓岳 謝曰 雲山千萬疊 固已藏吾胸中 以神遊之 何必勤館人勞脛脰 然後得遂方外之志哉 或亦不行 嘗入洛 駑駘短僕 按轡徐行 行遇釋祝石嶺 驚曰 止或泥之 嶺逢凶邪 吾其歸與 疾驅不顧 縉紳途過 必式其里 傳告遠去 必欲無見 年至耄耋 以道終 職姓加浦 時人所命也 名字不傳 口耳失也 鄭無子 楊混云

 

鄭掌令浦記  정장령포기

由縣距北十里 有野曰新灌浦 幾八九里 可澤五十斛

현으로부터 북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곳에 들이 있는데 신관포라 한다. 거의 8~9리쯤 되며 곡식 50곡 정도 수확할 수 있다.

吾從兄楊混曰 古掌令鄭某所始也

나의 종형 양혼이 이르기를 옛날 장령을 지낸 정모가 처음으로 개간했다고 한다.

某一作子 聞說 鄭十八登第 三十授掌令 乃老灌浦水 耕以資 資少裕 曰無庸 悉推與寒餒

어떤 사람이 들으니, 정모는 18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30세에 장령에 제수되었으며 늙어서는 논에 포구의 물을 대어 농사지어 먹고 살았는데, 살림이 조금 여유 있게 되자 쓸 일이 없다고 말하며 모두 춥고 배고픈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다.

闔境以至 茅茨數椽 蓽戶繩樞 遇變節必移 環新野一區 陶穴行窩 隨步可見 布被短褐 竹杖芒鞋 囂囂如也 與與如也

경내에 다다르면 몇 칸짜리 띠 집과, 누추한 집에 계절이 바뀌면 반드시 옮기는 것을 만나고, 새 들판에 삥 둘러서 토굴과 움집을 지어 놓은 것을 몇 걸음 나가면 볼 수 있으니, 베잠방이에 지팡이 짚고, 짚신을 신은 사람들이 떠들썩 하기 알맞았다.

或告遊楓岳 謝曰 雲山千萬疊 固已藏吾胸中 以神遊之 何必勤館人勞脛脰 然後得遂方外之志哉 或亦不行

어떤 사람이 정모에게 ‘풍악산에 놀러 가지 않겠습니까?’ 하니, 거절하며 이르기를 ‘구름과 산이 천만 겹으로 쌓여 이미 내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는데 마음으로 놀면 되지 꼭 역관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리를 수고롭게 해야 바깥에서 노는 뜻을 이룰 수 있을까.’ 하니 그 사람 또한 놀러 가지 않았다.

嘗入洛 駑駘短僕 按轡徐行 行遇釋祝石嶺 驚曰 止或泥之 嶺逢凶邪 吾其歸與 疾驅不顧

일찍이 그가 서울에 들어올 적에 둔한 말과 종 한 명을 데리고 고삐를 잡고 천천히 가는데, 도중에 축석령에서 스님을 만났다. 놀라며 이르기를 ‘멈춰라. 더럽혀지겠다. 축석령에서 흉한 사람을 만났으니 나는 돌아가련다’ 하며 재빨리 달려가며 뒤돌아보지 않았다.

縉紳途過 必式其里 傳告遠去 必欲無見

벼슬아치들도 길을 지나가면서 반드시 그 마을에 예를 표하였으며, 멀리 가서는 전하고 알렸으나 반드시 보고자 하지는 않았다.

年至耄耋 以道終 職姓加浦 時人所命也

정모는 나이가 70세에 이르도록 도로서 본분을 마쳤으며 벼슬과 성에 포자를 붙인 것은 당시 사람들이 지은 것이다.

名字不傳 口耳失也 鄭無子 楊混云

이름과 자가 전하지 않은 것은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은 것을 잃어버린 때문이다. 정모는 자식이 없다고 양혼(楊混)이 말했다.

 

※蓽戶繩樞(필호승추) : 필호(蓽戶)는 싸리로 만든 문이며, 승추(繩樞)는 기둥에 새끼줄로 지도리를 매단 문이라는 뜻으로 가난한 집. 가난하여 누추한 집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