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431

단오절(端午節)

6월 14일은 음력 5월 5일 단오절(端午節)이다. 단오절도 예전에는 설, 추석, 한식과 함께 4대 명절로써 조상과 하늘에 제사 지내고, 창포물에 머리 감기, 씨름, 그네뛰기 등 다양한 민속을 즐겼으나 요즘 들어 잊혀진 명절이 되었다. 단오와 관련한 행사인 강릉 단오제는 중요무형문화제 13호로 지정되어 있고 2005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 당시 중국 언론에서는 단오를 뺏어간다느니 문화 약탈이니 하며 한국을 비난했었다. 중국의 단오는 우리나라와 달리 정치가이자 시인인 굴원(屈原)의 추모에서 비롯되었다. 굴원(기원전 339~278년)은 전국시대 초나라 회왕(楚懷王)때의 신하인데, 당시 전국(戰國) 7개국 중 가장 강대한 진(秦)나라가 초나라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굴원은 초나라..

십이월사(十二月詞) - 김삼의당(金三宜堂)

이번에는 삼의당 김씨의 십이월사(十二月詞)를 감상해 본다. 김삼의당(金三宜堂)은 조선 후기 전라도 벽촌에서 살았던 여류문인인데 그녀의 대표작인 「十二月詞」는 1월부터 12월까지 총 12 수로 지어진 세시풍속시(歲時風俗詩)이다. 조선시대 이름난 문인들은 세시를 읊는 것이 유행이었으나, 우리나라 여류문인 가운데 유일하게 1년 열두 달의 세시풍속을 한시(漢詩)로 읊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가진다. 특히 후반부에는 낭군의 출세를 기원하며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잘 표현되었다. 김삼의당(金三宜堂;1769∼1823)은 전라도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당호는 삼의당(三宜堂)이다.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에서 출생하여 같은 마을에 살던 담락당(湛樂堂) 하립(河笠,1769∼1830)과 혼인하여 남원, 진안 등지의 ..

망종(芒種)과 모내기

망종(芒種)은 양력 6월 초순으로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위치한다. 이 때가 곡식의 씨앗을 뿌리고 모를 심는 적기로 농촌에서는 아주 중요한 절기이다. 보리 수확시기인 소만을 지나고 다시 모내기철을 맞아 농촌에서는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고 일 년 농사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또 날씨가 좋아야 보리수확과 타작을 하고, 비가 와야 모를 심을 수 있기 때문에 농부의 마음은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다. 村居雜詠 촌거잡영 南龍翼 남용익 시골에 살며 여러 가지를 읊다 穀雨初乾立夏徂 곡우초건립하조 곡우 비 막 개고 입하도 지나가자 老農看曆戒田夫 노농간력계전부 달력 본 늙은 농부 농사꾼 일깨운다 今年四月仍芒種 금년사월잉망종 올해는 4월에 망종이 들었는데 早稻西疇已播無 조도서주이파무 서쪽 논에 올..

소만(小滿)과 보릿고개

소만(小滿) 5월 21일은 24절기 중 소만(小滿)이다. 소만은 시기적으로 초여름에 해당하며 보리가 익어 보리타작을 할 시기이다. 요즘은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지만 예부터 보리가 익어 가는 시기는 춘궁기(春窮期)로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 시기였다. 따라서 옛 시인들도 보릿고개의 어려움을 노래한 시인도 있고, 힘든 노동인 보리타작을 수확의 기쁨으로 승화시킨 노래도 있다. 소만을 맞아 이와 관련된 시 몇 수를 감상한다. 田家 전가 辛永禧 신영희 농부의 집 打麥聲高酒滿盆 타맥성고주만분 보리타작 소리 높고 동이에 술 가득해도 老人無事臥荒村 노인무사와황촌 노인은 할 일 없어 빈 마을에 누워 있네 呼兒室下遮風慢 호아실하차풍만 아이 불러 집 아래 바람막이 치게 한건 恐擾新移紫竹根 공우신이자죽근 옮겨 심은 자죽뿌리 흔들..

鐘街觀燈 종가관등

부처님 오신 날 내일 19일은 음력 4월 8일로 부처님 오신 날! 4월 초파일 연등회는 사실 천여 년을 이어온 축제이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의 도성 문안 출입을 금할 정도로 불교를 억압했지만, 연등회만큼은 순수한 민속 풍속으로 여겨 허용했다고 한다. 단지 신라시대나 고려조에서는 나라에서 주관하였다면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민간 축제로 바뀌었다는 게 다를 뿐이다. 조선시대 당시 서울에서 이 연등회를 구경하는 것은 남산 꽃구경, 마포 뱃놀이 등과 함께 '한양의 10대 볼거리(漢都十景)' 중 하나였다고 하는데, 최근 이 연등회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이제 세계인의 축제이자 구경거리가 되었다.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사찰의 풍경을 읊은 시는 많이 썼지만 초파일의 의미나 부처님에 대한 시는 찾아..

初夏卽事 초하즉사 - 서거정(徐居正)

벌써 5월에 접어들어 5일이면 어린이날 이면서 절기상으로는 입하(立夏)에 해당한다. 여름은 다른 계절에 비해 시인 묵객들의 대접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꽃피고 새해가 열리는 봄, 낙엽 지고 오곡 풍성한 가을, 한해가 저물고 세월이 가는 겨울은 노래의 소재로 적합하지만, 유독 여름은 덥고 지루한 장마에 노래할 흥취가 덜했나 보다. 그러나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은 다른 문사(文士)들에 비해 여름을 주제로 한 시가 많이 남아 있다. 사가 서거정의 여름 시 중에서 초하즉사(初夏卽事)라는 시 한 편 감상해 본다. 이 시는 초여름의 편안한 생활을 읊은 것으로 작자의 여유로운 생활태도를 그대로 잘 드러내 주며, 내용도 평이한 편이다. 初夏卽事 초하즉사 서거정(徐居正) 초여름 날 즉석에서 짓다 濃陰寂寂小樓西 농음적..

寒食(한식)

4월 5일은 식목일이자 한식(寒食)이다. 예전에는 한식이 설날, 추석, 단오와 함께 4대 명절이었으며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고 차례를 지내는 날이었는데, 요즘은 한식날은 그다지 챙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산소를 보수한다든지 할 때는 요즘도 한식날을 가려서 하는 것은 옛 풍습이 일부 남아 있는 듯하다. 한식날은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로, 대개 4월 4, 5일쯤 된다. 한식날에는 찬밥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춘추시대 진(晉) 나라의 개자추(介子推)를 추모하기 위해 생긴 풍습이라고 전해진다. 개자추는 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진(晉) 나라의 문공(文公)이 공자 시절 19년간 각국을 떠돌며 망명생활을 할 때 고락을 같이하며 그의 등극을 도왔다. 심지어 문공이 배를 곯을 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

淸明(청명) - 杜牧(두목) 外

벌써 4월로 접어들고 이번 일요일 4월 4일은 청명절이다. 청명절은 본격적으로 봄꽃이 개화하기 시작하는 때인데, 특히 살구꽃이 핀 풍경은 더욱 화사한 봄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번 주말에도 비 예보가 있는데 예전에도 이 시기에는 비가 잦았나 보다. 오늘은 당나라 말기 두목(杜牧)이 지은 청명(淸明)을 감상해 본다. 杜牧(두목 ; 803 ~ 853)의 당나라 말기 사람으로 자는 목지(牧之), 호는 번천(樊川)인데, 우리나라에선 두목이라는 이름보다는 두목지(杜牧之)로 많이 널리 알려져 있다. 작품이 두보(杜甫)와 비슷하다 하여 소두(小杜)로 불린다. 淸明(청명) 杜牧(두목) 淸明時節雨紛紛 청명시절우분분 청명절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니 路上行人欲斷魂 노상행인욕단혼 길 가는 나그네 넋을 잃을 것 같네 借問酒家何處在..

정월 대보름

오늘 정월 대보름날을 맞아 대보름 민속을 상기시키는 한시 2수를 감상해 본다. 대보름날은 특히 상원일(上元日)이라고도 한다. 예전 농경시대에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을 명절로 삼아 쉬며 즐기다가, 보름이 되면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연날리기 등 대보름 민속놀이로 마무리하고, 보름이 지나면 다시 본격적인 농사일에 복귀하였다. 이 민속놀이 중 달집 태우기는 지방 민속행사로 마을 공동체에서 근근이 명맥을 이어 왔으나(이마저도 최근 몇 년간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요즘에 와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못하고 있지만....), 쥐불놀이와 연 날리기는 이제 대보름 민속놀이로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연날리기는 도시에서는 고층건물 등 장소 때문에, 시골에서는 아이가 없어 사라진 실정이다. 원래 연날리기..

元朝戱作誂諧體(원조희작조해체)

辛丑年 새해를 맞아 澹軒 李夏坤(담헌 이하곤)의 시 元朝戱作誂諧體(원조희작조해체)를 감상해 본다. 이 시는 설날 아침 장난 삼아 조해체로 짓다는 뜻으로 일곱 수가 있는데 그 시절 설날 풍속이 해학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세배를 다니며 과거 장원급제하라고 덕담하는 모습, 세배 다니며 마신 술에 취해 개울에 빠지는 모습, 설날인데도 자기 직분에 충실한 하급 관리들을 격려하는 최 첨지, 새해인데도 떡국도 끓이지 못하는 가난한 이에 대한 연민 등 당시의 시대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澹軒 李夏坤(담헌 이하곤)은 1708년(숙종 34) 진사에 올랐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인 진천에 내려가 학문과 서화(書畵)에 힘썼으며 장서가 1만 권을 헤아렸다고 한다. 문집으로는 『두타초(頭陀草)』18권이 있는데,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