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鐘街觀燈 종가관등

-수헌- 2021. 5. 18. 18:41

부처님 오신 날

내일 19일은 음력 4월 8일로 부처님 오신 날!

4월 초파일 연등회는 사실 천여 년을 이어온 축제이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의 도성 문안 출입을 금할 정도로 불교를 억압했지만, 연등회만큼은 순수한 민속 풍속으로 여겨 허용했다고 한다. 단지 신라시대나 고려조에서는 나라에서 주관하였다면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민간 축제로 바뀌었다는 게 다를 뿐이다. 조선시대 당시 서울에서 이 연등회를 구경하는 것은 남산 꽃구경, 마포 뱃놀이 등과 함께 '한양의 10대 볼거리(漢都十景)' 중 하나였다고 하는데, 최근 이 연등회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 이제 세계인의 축제이자 구경거리가 되었다.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사찰의 풍경을 읊은 시는 많이 썼지만 초파일의 의미나 부처님에 대한 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단지 명사들이 한양 종로에서 연등회를 구경하며 지은 시는 몇 수 찾을 수 있어 감상해 보고자 한다. 이 시들은 종가관등(鐘街觀燈)이라는 시제로 같은 압운(押韻; 家. 霞, 花, 狖, 漏)으로 지어진 차운시(次韻詩)의 형태로 되어 있다.

 

鐘街觀燈 종가관등  - 徐居正 서거정

종로 거리의 연등 구경

 

長安城中百萬家 장안성중백만가

한양성 안 백만호 집집마다

一夜燃燈明似霞 일야연등명사하

밤중에 등불 켜서 노을처럼 밝히니

三千世界珊瑚樹 삼천세계산호수

삼천세계는 산호수처럼 아름답고

二十四橋芙蓉花 이십사교부용화

이십사교의 연꽃처럼 화려하구나

東街西市白如晝 동가서시백여주

동쪽 거리 서편 저자 대낮처럼 밝고

兒童驚走疾於狖 아동경주질어유

아이들 원숭이처럼 재빨리 내닫네

星斗闌干爛不收 성두란간란불수

북두성 기울도록 난간 등불 거두지 않고

黃金樓前催曉漏 황금루전최효루

황금루 앞 물시계가 새벽을 재촉하네.

※三千世界(삼천세계)는 불교에서 한없이 넓은 세상, 광대한 우주를 이르는 말로 三千大千世界(삼천대천세계)라고도 함.

二十四橋(이십사교): 중국의 양주(楊洲)에 화려한 이십사교가 있는데 화려함을 빗대 표현하였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세종~성종대의 최고 지성이라 일컫는 문인이다. 그는 학문의 영역도 매우 넓어 천문(天文) · 지리(地理) · 의약(醫藥) · 복서(卜筮) · 성명(性命) · 풍수(風水)에까지 통달하였으며, 문장에 일가를 이루고, 특히 시(詩)에 능하였다.

 

鐘街觀燈 종가관등 -  李承召 이승소

 

無盡燈然無盡家 무진등연무진가

끝없는 집들에 끝없는 등불 켜지니

紅光相射如流霞 홍광상사여류하

붉은빛을 비춰 흐르는 노을 같네

玉繩低垂明月珠 옥승저수명월주

옥승의 명월주가 낮게 드리운 듯

瓊枝幻出玲瓏花 경지환출영롱화

옥 가지에서 영롱한 꽃들 피어나네

照破昏衢作明晝 조파혼구작명주

어두운 종로 네거리 비춰 대낮처럼 밝히니

觀者喜躍如躁狖 관자희약여조유

구경꾼들 신이 나 원숭이처럼 날뛰네

九街歌吹樂昇平 구가가취락승평

온 거리에 노래 가락 태평을 즐기느라

不覺鍾傳五更漏 불각종전오경루

새벽 오경 바라 치는 줄도 모르는구나

 

玉繩(옥승) : 별의 이름. 북두(北斗) 제5성의 북쪽에 있는 천을(天乙)과 태을(太乙)의 두 소성(小星)을 일컬음

明月珠(명월주) : 밤에 광채(光彩)를 발하는 야광주의 별칭. 불교에서는 월정주(月精珠), 명월마니(明月摩尼), 월정마니(月精摩尼)라고도 한다.

 

이승소(李承召, 1422~1484)는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나 조선 초기의 문재이며 정치가이다. 서거정·신숙주·강희맹 등과 친했고, 특히 문장으로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鐘街觀燈 종가관등 -  姜希孟 강희맹

 

恒星髣髴墮千家 항성방불타천가

큰 별들이 흡사 수많은 집에 내려온 듯

黃昏處處籠紅霞 황혼처처롱홍하

황혼이 진 곳곳에 등불이 붉은 노을 같네

長竿裊裊綵索飛 장간뇨뇨채색비

긴 장대에 날리는 비단 줄은 간드러지고

珠樹繁開金粟花 주수번개금속화

구슬 나무에는 온통 월계화가 피었네

山河大地變白晝 산하대지변백주

산하와 대지가 대낮처럼 변하니

歌鼓競沸人如狖 가고경불인여유

북과 노래 겨루는 사람들 원숭이 같네

齊聲爭唱佛誕夕 제성쟁창불탄석

소리 모아 다투어 석가탄신 노래하고,

奔波不覺已殘漏 분파불각이잔루

물결처럼 내달리며 날새는 줄 모르네

 

金粟(금속) : 월계수의 다른 이름으로 꽃이 노란(金) 조(粟)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졌다.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은 조선 전기의 대 문장가이다. 그의 친 형인 강희안(姜希顔)과 함께 형제 문장가로 명망이 높았다.

창원 성주사 대웅전 법당앞의 연등과 관불식단
창원 성주사 스님과 신도들의 탑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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