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십이월사(十二月詞) - 김삼의당(金三宜堂)

-수헌- 2021. 6. 6. 15:43

이번에는 삼의당 김씨의 십이월사(十二月詞)를 감상해 본다.

김삼의당(金三宜堂)은 조선 후기 전라도 벽촌에서 살았던 여류문인인데 그녀의 대표작인 「十二月詞」는 1월부터 12월까지 총 12 수로 지어진 세시풍속시(歲時風俗詩)이다. 조선시대 이름난 문인들은 세시를 읊는 것이 유행이었으나, 우리나라 여류문인 가운데 유일하게 1년 열두 달의 세시풍속을 한시(漢詩)로 읊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가진다. 특히 후반부에는 낭군의 출세를 기원하며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잘 표현되었다.

김삼의당(金三宜堂;1769∼1823)은 전라도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당호는 삼의당(三宜堂)이다.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에서 출생하여 같은 마을에 살던 담락당(湛樂堂) 하립(河笠,1769∼1830)과 혼인하여 남원, 진안 등지의 시골에서만 살았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여류 시인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이나 신사임당(申師任堂)처럼 당당한 사대부 명문 출신이거나, 황진이(黃眞伊), 이매창(李梅窓)처럼 기생 출신이 문명(文名)을 날리는 것이 대부분인데 김삼의당은 벽촌의 평범한 아녀자란 것이 상당히 이채롭고, 그 때문에 좋은 시적 세계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류시인이라 할 수 있다.

 

十二月詞正月上元 십이월사 정월상원

정월 대보름

 

田家此日祝西成 전가차일축서성

농가에서 이 날 가을 풍년 비는데

村社鼕鼕土鼓鳴 촌사동동토고명

마을 제사에서 둥둥 북소리 울린다

良夜城南明月下 양야성남명월하

좋은 밤 밝은 달 아래 성 남쪽에서

家家年少踏橋行 가가년소답교행

집집마다 어른 아이 다리밟기 하는구나

 

 

十二月詞二月上巳 십이월사이월상사

이월상사일 (중화절)

 

東風楊柳綠如烟 동풍양류록여연

봄바람에 버드나무 안개처럼 푸르고

曲水流觴付少年 곡수유상부소년

곡수에 띄운 술잔 머슴에게 권한다

城外紅粧多觀艶 성외홍장다관염

성 밖은 붉게 단장하여 아주 고와 보이니

欲蘭消息又前川 욕란소식우전천

또 앞 냇가의 난초 소식 기다려지네

 

이월 초하루는 中和節(중화절)이라 하여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머슴들에게 술을 권하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이 날을머슴날이라고도 한다.

 

 

十二月詞三月三日 십이월사 삼월삼일

삼월 삼짇날

 

紅錦之裳綠綺衣 홍금지상녹기의

붉은 비단 치마에 푸른 비단 저고리

城南何處踏靑歸 성남하처답청귀

성 남쪽 어디에서 답청하고 돌아오네

多情最是江南鳥 다정최시강남조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는 다정하여서

簾外雙雙也自飛 염외쌍쌍야자비

주렴 밖에서 저절로 쌍쌍이 나는 구나

 

봄이 와서 붉은 꽃 피고 푸른 풀 돋는 풍경을 붉은 비단 치마와 푸른 비단 저고리로 표현하였다.

답청(踏靑): 봄에 파릇파릇한 풀을 밟으면서 거니는 것. 삼짇날을 踏靑節(답청절)이라고도 한다.

 

十二月詞四月八日 십이월사 사월팔일

사월 초파일

 

此夜城中三萬家 차야성중삼만가

이날 밤 성 안의 삼만 가정에서

家家燈火盛繁華 가가등화성번화

집집마다 밝힌 등불 성대히 번화하네

如雲女兒傾城出 여운여아경성출

계집애들 구름처럼 성밖으로 쏟아지고

街上爭停油壁車 가상쟁정유벽거

거리에는 유벽거 다투어 멈춰 있네

 

油壁車(유벽거) : 옛날 부인들이 타는 수레로 벽에 기름칠하여 꾸민 수레를 말한다.

 

十二月詞五月端午 십이월사오월단오

오월 단오

 

黄梅細雨濕輕煙 황매세우습경연

가느다란 장맛비 옅은 안개 적시고

簾外幽禽喚晝眠 염외유금환주면

주렴 밖 멀리서 새가 낮잠 깨우네

擾亂東鄰多如盤 요란동린다여반

동녘 마을 요란하게 많은 사람 모여서

綠楊陰裏送鞦韆 독양음리송추천

푸른 버들 그늘 아래 그네를 타는구나

 

 

十二月詞六月流頭 십이월사 유월유두

유월 유두

 

歌酒誰家惡少年 가주수가악소년

어느 집 악소년들 술 마시고 노래하며

三三五五向林泉 삼삼오오향임천

삼삼오오 짝지어 숲과 물을 향해 가네

城南野水淸如煙 성남야수청여연

성 남쪽 들판 물은 안개처럼 맑아서

兒女流頭爭且姸 아녀유두쟁차연

소녀들 고와지고자 또 머리를 감네

 

十二月詞 七月七夕 십이월사 칠월칠석

칠월 칠석

 

金井梧桐一葉秋 금정오동일엽추

아름다운 우물가 가을 오동잎 한 잎

水晶簾外碧波流 수정염외벽파류

수정 주렴 바깥엔 푸른 물결 흐르네

天上相逢今夜半 천상상봉금야반

하늘엔 오늘 밤에 견우직녀 만나는데

玉窓何事獨深愁 옥창하사독심수

옥창에는 어인 일로 홀로 시름 깊은가

 

※玉窓(옥창) : 규수의 방이나 집을 묘사하는 아름답게 장식한 창을 의미한다. ‘紗窓(사창)’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十二月詞八月八日 십이월사 팔월팔일

팔월 한가위

 

西疇簑笠已成仙 서주사립이성선

서쪽 밭의 허수아비 이미 신선 되었고

新釀家家賀得年 신양가가하득년

집집마다 새 술 빚어 풍년을 축하 하네

誰識紗窓寂廖處 수식사창적료처

사창이 이리 적막한 곳임을 그 누가 알까

蟲聲月色摠愁邊 충성월색총수변

벌레소리 달빛도 모두 설움에 가깝네

 

紗窓(사창) : 얇고 성기게 짠 비단으로 바른 창문. 예전에, 규방(閨房)의 창문을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옥창)

 

 

十二月詞 九月九日 십이월사 구월구일

구월 구일

 

秋晩東籬菊有黃 추만동리국유황

가을 저물어 울 밑에 누런 국화가 피어

薄言採採不盈筐 박언채채불영광

말없이 따도 따도 광주리에 차지 않네

爲誰酌彼盃中物 위수작피배중물

누굴 위해 저 술잔 속에 술을 따르랴

好送佳辰莫我傷 호송가신막아상

좋은 날 잘 보내고 내 맘 상하게 하지 마오

 

 

十二月詞十月望日 십이월사 십월망일

시월 보름

 

秋事前村已滌場 추사전촌이척장

앞 마을 가을일은 이미 끝이 나고

東家速舅殺羔羊 동가속구살고양

동편 집의 시아버지 양을 잡으셨네

郎君不到重門掩 낭군부도중문엄

낭군은 오지 않고 중문은 닫혔는데

蟋蟀何心入我牀 실솔하심입아상

귀뚜라미 무슨 심사로 내 침상에 드는가

 

※滌場(척장) : 마당을 씻는다는 뜻으로 가을걷이와 타작이 모두 끝났다는 뜻.

 

十二月詞 十一月冬至 십이월사 십일월동지

십일월 동짓날

 

葭管灰飛日至南 가관회비일지남

갈대 재 날리고 해는 정남에 이르렀는데

梅花消息問前簷 매화소식문전첨

처마 끝에서 매화 꽃 소식 물어 본다

龍墀何處躋冠冕 용지하처제관면

임의 벼슬은 궁중 층계 어디쯤에 올라서

聖壽爭呼萬歲三 성수쟁호만세삼

임금님 만세삼창 다투어 부를까요

 

※葭管灰飛(가관회비) : 옛날에는 동짓날 가부(葭莩; 갈대 잎 속의 작은 막)를 태워 그 재를 율관(律管; 음악에서 율여를 측정하기 위한 관)에 넣어 그 날리는 모습[葭管灰飛]을 보고 그해의 기후를 점쳤다고 한다.

冠冕(관면) : 옛날 임금이나 관리가 쓰던 모자로 벼슬하는 것을 뜻함.

 

 

十二月詞 十二月臘日 십이월사 십이월납일

섣달 납일

 

歲色紗窓已暮云 세색사창이모운

사창에 세월은 이미 저물었다 하니

一年佳節度紛紛 일년가절도분분

일 년 좋은 시절 어지럽게 지나네

滿床風雪寒無寢 만상풍설한무침

침상에서 눈바람에 추워 잠 못 이루며

裁繡郎衣到夜分 재수낭의도야분

낭군 옷 지어 수놓으며 밤을 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