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정월 대보름

-수헌- 2021. 2. 26. 12:20

오늘 정월 대보름날을 맞아 대보름 민속을 상기시키는 한시 2수를 감상해 본다.  대보름날은 특히 상원일(上元日)이라고도 한다.  예전 농경시대에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을 명절로 삼아 쉬며 즐기다가, 보름이 되면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연날리기 등 대보름 민속놀이로 마무리하고, 보름이 지나면 다시 본격적인 농사일에 복귀하였다. 이 민속놀이 중 달집 태우기는 지방 민속행사로 마을 공동체에서 근근이 명맥을 이어 왔으나(이마저도 최근 몇 년간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요즘에 와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못하고 있지만....), 쥐불놀이와 연 날리기는 이제 대보름 민속놀이로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연날리기는 도시에서는 고층건물 등 장소 때문에, 시골에서는 아이가 없어 사라진 실정이다. 원래 연날리기는 정초에 시작해서 정월 대보름날까지만 하고, 대보름 이후에는 일체 연을 날리지 못하게 했다. 대보름이 되면 연에다‘액(厄)’이나‘송액(送厄)’‘송액영복(送厄迎福)’등을 써서 멀리 날려 보내서 온 집안의 재앙을 연이 죄다 싣고 날아가게 하는데, 계속하여 연을 날리면 재앙이 줄곧 집에 머무르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1788년(정조 12년)에 無名子(무명자) 尹愭(윤기)라는 사람이 서울의 대보름 풍속을 읊은 시를 감상해 본다.

[尹愭(윤기; 1741~1826)는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로써, 자는 경부(敬夫), 호는 無名子(무명자)이다. 1773(영조49)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20여 년간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벼슬이 호조참의에까지 이르렀다. 저서로 <무명자집>20권 20책이 있다. ]

 

<정월 대보름(上元)> 중에서

 

上元名節又晴天 상원명절우청천

대보름 명절에 하늘 또한 맑게 개니

村巷遊嬉摠可憐 촌항유희총가린

골목마다 즐거운 놀이가 벌어지네

賣暑相呼馳竹馬 매서상호치죽마

서로 불러 더위 팔며 죽마 타고 달리고

消災暗祝放絲鳶 소재암축방사연

액막이 기원하며 연을 날려 보내누나

 

종이연 - 松江(송강) 鄭澈(정철)

 

우리 집 모든 액을 네 혼자 다 맡아서

인간에 지지 말고 야수에 걸렸다가

비 오고 바람 분 날이어든 자연 소멸하여라.

 

이 시조는 대보름 연을 소재로 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시조다. 민간에 떠돌던 이 시조를 그의 제자 석주(石洲) 권필(權鞸: 1569-1612)이 아래와 같이 다시 한시로 번역을 하였다.

[권필(權鞸;1569년~1612년): 조선 선조 때 문인. 자 汝章(여장). 호 石洲(석주). 李安訥(이안눌)과 함께 二才(이재)로 불리었고, 시에 전념하느라 과거를 미루었으며, 童蒙敎官(동몽교관), 製述官(제술관)을 지냈다. 문집으로 石洲集(석주집) 4책이 있다. ]

 

飜俗傳紙鳶歌 번속전지연가 權鞸 권필

민간에 전하는 ‘종이 연’ 노래를 번역함.

 

我家諸厄爾帶去 아가제액이대거

우리 집 모든 재앙을 네가 몽땅 싣고 가서

不落人家掛野樹 불락인가괘야수

인가에 떨어지지 말고 들판 나무에 걸렸다가

只應春天風雨時 지응춘천풍우시

봄이 와서 바람 불고 비가 내릴 때쯤에는

自然消滅無尋處 자연소멸무심처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저절로 소멸해 버려라

 

보름날 연을 날려 보낼 때는 연이 남의 집에 떨어지지 않도록 각별하게 조심을 했다. 자칫 남의 집에 떨어지게 되면, 우리 집 재앙을 그 집에서 대신 받게 된다는 민간 속설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시에서도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코로나 19로 힘든 올해 정월 대보름날에는 연을 날려 보내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에다 써 함께 날려 보내서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조기 종식시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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