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寒食(한식)

-수헌- 2021. 4. 2. 20:54

4월 5일은 식목일이자 한식(寒食)이다. 예전에는 한식이 설날, 추석, 단오와 함께 4대 명절이었으며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고 차례를 지내는 날이었는데, 요즘은 한식날은 그다지 챙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산소를 보수한다든지 할 때는 요즘도 한식날을 가려서 하는 것은 옛 풍습이 일부 남아 있는 듯하다.

한식날은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로, 대개 4월 4, 5일쯤 된다. 한식날에는 찬밥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춘추시대 진(晉) 나라의 개자추(介子推)를 추모하기 위해 생긴 풍습이라고 전해진다.

개자추는 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진(晉) 나라의 문공(文公)이 공자 시절 19년간 각국을 떠돌며 망명생활을 할 때 고락을 같이하며 그의 등극을 도왔다. 심지어 문공이 배를 곯을 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공양하였다. 그러나 문공은 즉위 후 논공행상에서 미처 개자추를 챙기지 못하였고, 이에 서운한 마음이 든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면산(綿山)으로 들어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산다. 뒤늦게 개자추를 생각한 문공이 그를 등용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으나 개자추는 응하지 않았다.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지만, 개자추는 산에서 어머니를 끌어안은 채 불에 타 죽었다. 이에 그의 죽음을 슬퍼한 문공은 면산 아래에 개자추를 기리는 사당을 지어 그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산의 이름을 개산(介山)으로 고쳐 부르게 하였고 이 날만은 불을 지피지 못하게 한데서부터 한식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날이 동짓날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었다 한다.

한식이 다가오기에 한식을 소재로 한 한시를 몇 수 소개한다.

 

寒食  한식   - 權韠  권필

권필(權韠, 1569~1612)의 자는 여장(汝章), 호는 석주(石洲)이며,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시인이다. 강화부에서 유생들을 가르쳤고, <석주집>과 한문소설 <주생전>,<위경천전>이 전해지고 있다.

 

祭罷原頭日已斜 제파원두일이사

제사 마친 들판에 이미 해는 기울고

紙錢翻處有鳴鴉 지전번처유명아

지전 날리는 곳에 갈까마귀 우네

山蹊寂寂人歸去 산혜적적인귀거

적적한 산길로 사람들은 돌아가고

雨打棠梨一樹花 우타당리일수화

팥배나무 꽃 위로 빗발이 때리네

 

寒食日省墓  한식일성묘     金忠顯  김충현  

한식날 성묘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 ~ 2006)은 국전 심사위원, 한국 서예가 협회회장, 예술원 정회원 등을 역임하고, 한글서예 보급에 앞장선 예술인이다,

 

葬親空山梩 장친공산리

어버이를 빈 산속에 장사 지내고

一年一省墓 일년일성묘

일 년에 한 번 성묘를 가네

自愧孝子心 자괴효자심

효자 마음이 부끄러워라

不如墓前樹 불여묘전수

무덤 앞의 나무만도 못 하네

 

 

寒食  한식   韓君平  한군평 (당나라 시인)

 

春城無處不飛花  춘성무처불비화

봄날 성 안에 꽃 날리지 않는 곳 없고

寒食東風御柳斜  한식동풍어류사

한식날 동풍에 궁중 버들 늘어지네

日暮漢宮傳蠟燭  일모한궁전랍촉

해 저물자 황제께서 납초를 하사하니

靑煙散入五侯家  청연산입오후가

오후가에선 푸른 연기가 흩어지네

 

傳蠟燭(전랍촉) ; 한식날 임금이 신하에게 촛불을 하사하는 일

五侯(오후) ;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후(侯)에 봉해져 국정을 농단한 다섯 명의 환관을 뜻함.

이 시는 단순히 한식날의 풍습을 묘사하기보다, 介子推(개자추)와 晉(진) 文公(문공)의 고사에 빗대 궁중의 간신배들을 풍자하고 있다. 飛花(나는 꽃잎)와 柳斜(늘어진 버들)는 간신배를 상징하고, 五侯는 황제의 비위를 맞추어 벼락출세한 소인배들을 일컫는다. 왕이 간신만 좋아한다고 탄식하는 시다.

 

 

寒食寄京師諸弟 한식기경사제제  韋應物  위응물

한식에 경사의 여러 아우에게

 

韋應物(위응물, 737~786). 중국 당(唐) 나라 때의 시인.

 

雨中禁火空齋冷  우중금화공재냉 

비가 와도 불을 금해 빈 서재는 싸늘한데

江上流鶯獨坐聽  강상유앵독좌청

강 위의 꾀꼬리 울음 홀로 듣고 앉았네.

把酒看花想諸弟  파주간화상제제

잔 잡고 꽃 보며 여러 아우들 생각하니

杜陵寒食草靑靑  두릉한식초청청

한식날 두릉에도 풀이 한창 푸르겠네.

 

襄陽路逢寒食 양양노봉한식  張說 장열

양양 길에서 한식을 맞다

 

*장열(張說, 667년 ~ 730년)은 중국 당나라 때의 재상. 자(字)는 도제(道濟) 또는 설지(說之)이다.

 

去年寒食洞庭波  거년한식동정파

지난 해 한식은 동정호에서 보냈는데

今年寒食襄陽路  금년한식양양로

금년 한식은 양양 길에서 보내는구나.

不辭着處尋山水  불사착처심산수

가는 곳 마다 산수 찾기를 마다 않으니

祗畏還家落春暮  지외환가락춘모

집으로 돌아갈 땐 봄 저물까 걱정되네.

 

寒食 한식   王禹偁 왕우칭

王禹偁(왕우칭 ; 954~1001) 북송(北宋) 시대의 학자, 시인. 자는 元之(원지)

 

今年寒食在商山  금년한식재상산

올해 한식에는 상산에서 보내는데

山裏風光亦可憐  산리풍광여가련

산속 풍경 또한 아름답기만 하네

稚子就花拈蛺蝶  치자취하점협접

아이들은 꽃으로 가서 나비를 잡고

人家依樹繫鞦韆  인가의수계추천

인가의 나무에는 그네가 매여 있네

郊原曉綠初經雨  교원효록초경우

교외 들판의 초목은 봄비에 푸르고

巷陌春陰乍禁烟  항맥춘음사금연

봄날 거리엔 밥 짓는 연기 잠시 끊겼네

副使官閑莫惆愴  부사관한막추창

부사 벼슬 한가롭다고 슬퍼하지 말라

酒錢猶有撰碑錢  주전유유찬비전

비문 지어주고받은 술값 아직 남았네

 

이 시는 왕우칭이 외지로 좌천되어 가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좌천되어 온 처지여서 도성이 그리우면서도 지금 있는 산촌 마을 풍경을 아름답게 잘 묘사하고 있다. 한식을 맞아 봄날 거리에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는 풍경에서 도성이 그립기도 하지만, 비문을 지어 주고 사례로 받은 돈이 술값은 되고도 남는데 무얼 더 바라느냐며, 한 잔 술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