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元朝戱作誂諧體(원조희작조해체)

-수헌- 2021. 2. 8. 20:30

辛丑年 새해를 맞아 澹軒 李夏坤(담헌 이하곤)의 시 元朝戱作誂諧體(원조희작조해체)를 감상해 본다. 이 시는 설날 아침 장난 삼아 조해체로 짓다는 뜻으로 일곱 수가 있는데 그 시절 설날 풍속이 해학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세배를 다니며 과거 장원급제하라고 덕담하는 모습, 세배 다니며 마신 술에 취해 개울에 빠지는 모습, 설날인데도 자기 직분에 충실한 하급 관리들을 격려하는 최 첨지, 새해인데도 떡국도 끓이지 못하는 가난한 이에 대한 연민 등 당시의 시대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澹軒 李夏坤(담헌 이하곤)은 1708년(숙종 34) 진사에 올랐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인 진천에 내려가 학문과 서화(書畵)에 힘썼으며 장서가 1만 권을 헤아렸다고 한다. 문집으로는 『두타초(頭陀草)』18권이 있는데, 2,200여수의 시와 그 외 많은 서(書)와 제발, 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 제목의 元朝戱作誂諧體(원조희작조해체)는 일부 자료에서 元朝戱作誹諧體(원조희작비해체)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하였으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 고전종합 DB에는 誂諧體(조해체)로 되어있다. 誹諧體(비해체; 일부에서는 배해체로 표현)는 해학적으로 비방한다는 뜻이고, 誂諧體(조해체)는 해학적 농지거리로 쓴다는 뜻이므로 여기서는 誂諧體(조해체)로 하였다.

 

其一

 

土俗人情重歲旦 토속인정중세단

풍속에 설날 아침 인정이 더욱 많아

紛紛拜謁自成行 분분배알자성행

분주하게 스스로 세배하러 다니면서

共道新年聊獻祝 공도신년료헌축

하나같이 귀 아프게 새해 축원하는 말

今春應作壯元郞 금춘응작장원랑

올봄에는 응당 장원급제하리라.

 

其二

 

借着冠衫不稱身 차착관삼불칭신

빌려 입은 의관처럼 몸에 맞지 않아도

踉蹌扶醉走三隣 낭창포취주삼린

취하여 비틀거리며 거듭 이웃을 다니네.

狂談胡說無倫次 광담호설무륜차

신분 차례도 없이 허황된 말 함부로 하며

到處逢人索酒嗔 도처봉인색주진

사람 만나는 곳마다 왕성하게 술만 찾네.

 

其三

 

羅雀門前僕馬闐 나작문전복마전

적막하던 문 앞에 붐비는 말과 마부들

聊將薄具餉新年 요장박구향신년

간단하게 차려낸 새해 음식 즐기네.

不厭濁酒林把揔 불염탁주임파총

임 파총은 탁한 술도 싫어하지 아니하고

絶甘湯餠金生貟 절감탕병김생원

김 생원은 떡국 맛이 매우 좋다 하는구나.

 

羅雀門(나작문) : 참새 잡는 그물을 펼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찾아오는 이 하나 없어 門前이 적막한 상황. 사마천史記(사기) 汲鄭列傳論(급정열전논)에서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하규(下邽)에 살았던 ‘적공(翟公)이 정위(廷尉) 벼슬을 얻자 손님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으나 그가 면직되자 집 안팎이 얼마나 한산했는지 ‘문 앞에 참새 잡이 그물을 쳐 놓아도 될 정도(門外可設雀羅)가 됐다.’고 했다. 여기서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 문 앞에 참새 잡는 그물을 칠 정도로 쓸쓸하다’는 뜻의 ‘문가라작(門可羅雀)’이 나왔다.

把揔(파총): 오위영 등에 딸린 무관으로 종6품직의 하급 장교.

 

其四

 

好笑東家李先輩 호소동가이선배

우습구나 동쪽 집에 사는 이 선배가

醉騎黃犢落前溪 취기황독락전계

술 취해 송아지 타다 개울에 떨어졌네.

不省衣冠沾濕盡 불성의관점습진

옷과 관이 다 젖어도 깨닫지 못하고

歸來使酒敺厥妻 귀래사주구궐처

집에 와서 아내 구박하며 주정 부리네.

 

其五

 

熢燧洞內崔僉知 봉수동내최첨지

봉수동 마을 안의 최 첨지는

木紅廣帶眞大癡 목홍광대진대치

붉은 광대 두르고 정말 크게 열중하네.

自作新年賀辭道 자작신년하사도

새해 하례 인사도 스스로 마다하고

橫馳驛馬幕裨爲 횡치역마막비위

역마 타고 달리는 막비들을 위하네.

 

自作新年賀辭道 一作自作賀辭仍自詑

자작신년하사도 일작자작하사잉자이

‘새해 하례 인사도 스스로 마다하고’는 다른 작품에는 ‘스스로 으스대며 거듭 인사말 하며’로 되어 있다.

 

木紅(목홍) : 차나무 속을 끓여 우려낸 붉은 물감.

廣帶(광대) : 조선 시대에 具軍服(구군복) 차림을 할 때 두르던 띠로 홍색·녹색·남색·흑색 등이 있다.

幕裨(막비) : 감사, 유수(留守), 수사(水使), 사신(使臣)들에게 딸린 관원(무관)의 하나.

 

其六

 

終朝風雨太狂顚 종조풍우태광전

아침 내내 비바람 크고 사납게 부니

眞似時行六月天 진사시행륙월천

시절이 정말 유월 날씨 닮았구나.

七十老翁猶創覩 칠십노옹유창도

칠십 노인부터 자세히 살펴보니

今年恐未免凶年 금년공미면흉년

올해는 흉한 해 면하니 두렵지 않겠네.

 

其七

 

聞道南民似涸鱗 문도남민사후린

듣기에 남쪽 사람들 마른 물고기 같은데

幾家湯餠作年新 기가탕병작년신

새해에 떡국 끓이는 집 몇 집이나 될까.

從知酒肉朱門裡 종지주육주문리

술 고기는 벼슬아치 집안에 있음을 아는데

誰念窮閻菜色人 수념궁염채색인

가난에 누렇게 뜬 사람들 그 누가 생각할까?

 

菜色(채색) : 푸성귀의 빛깔, 굶주린 사람의 혈색 없는 누르스름한 얼굴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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