嶺南樓와 密陽

次樓板二十韻 (차루판이십운) - 金玏 (김륵)

-수헌- 2024. 1. 21. 12:21

次樓板二十韻 呈藥峯    차루판이십운 정약봉     金玏    김륵  

영남루 판상의 이십 운을 차운하여 약봉에게 드리다.

 

行當槐夏歷梧秋 행당괴하력오추

초여름 괴하부터 초가을 오추까지 다니며

踏盡南中數十州 답진남중수십주

남방의 수십 고을 땅을 두루 밟았더니

萬里山河皆屬漢 만리산하개속한

만 리의 산하는 모두가 한나라 땅이고

千年文物悉從周 천년문물실종주

천 년 문물은 모두 주나라를 따랐구나

 

凝川壯冠三韓國 응천장관삼한국

응천의 장대함은 삼한국에서 으뜸이고

府伯榮超萬戶侯 부백영초만호후

부사의 영예는 만호후를 뛰어넘는구나

天始陶基須鬼力 천시도기수귀력

하늘이 신령한 힘으로 기틀을 닦았지만

地能興産豈人謀 지능흥산기인모

어찌 사람의 꾀로 땅에 산물이 일어나나

 

靑郊欲斷連孤堞 청교욕단연고첩

푸른 들판 외진 성가퀴는 끊어지려 하고

翠峽將低接畵樓 취협장저접화루

푸른 골짜기에 그림 같은 누각 내려앉았네

潭惜西傾留浦口 담석서경류포구

못물은 서쪽으로 흐르기 싫어 포구에 머물고

嶽嫌南缺起峰頭 악혐남결기봉두

산은 남으로 이지러지기 싫어 봉우리 세웠네

 

香烟裊裊飄金瑣 향연뇨뇨표금쇄

향연은 금가루가 바람에 날리듯 하늘거리고

仙佩摐摐響玉璆 선패창창향옥구

선인의 노리개 옥소리가 울리듯 찰랑거리네

月色盈虧天地老 월색영휴천지로

달빛이 찼다 기울어졌다 하며 천지도 늙고

風光變化歲時遒 풍광변화세시주

세시가 다가오니 풍광도 변하는구나

 

楚雲纔結纖娥醉 초운재결섬아취

잠시 미녀에 취하여 초나라 구름과 맺었고

秦鳳初飛寶曲稠 진봉초비보곡조

진의 봉황이 날아오르니 보곡이 고르구나

孤跡自多冠舃住 고적자다관석주

관석으로 머문 곳에는 발자취만 외로운데

一生猶幸夢魂酬 일생유행몽혼수

일생이 꿈속에서나마 보상받아 다행이구나

 

遐觀眞覺孱身遠 하관진각잔신원

멀리서 보니 나약한 몸이 멀어짐을 깨닫고

高出尤知世界浮 고출우지세계부

높은데 나가 세계가 덧없음을 더욱 알았네

露顆登盤朝可飣 노과등반조가정

아침이면 이슬 맞은 과일을 올릴 수 있고

霜麟入手夜猶舟 상린입수야유주

물고기를 잡으려고 오히려 밤에 배 띄우네

 

雲移靈嶽隨玄鶴 운이령악수현학

영산에 움직이는 구름 따라 검은 학이 날고

霧聚神潭老翠虯 무취신담노취규

안개 낀 신령한 못의 푸른 규룡이 늙었구나

鷗鷺一盟留極浦 구로일맹류극포

갈매기와 백로는 약속한 듯 포구 끝에 머물고

菱荷數唱隔芳洲 릉하수창격방주

마름 연꽃 따는 노래가 모래톱 저편에서 나네

 

乘風始喜抛塵累 승풍시희포진루

바람 타고 속세 굴레 던지니 기쁨이 시작되고

餐玉還愁足病疣 찬옥환수족병우

옥을 먹으니 병우의 근본인 시름도 물러가네

人傑望符今皀蓋 인걸망부금급개

인걸은 이제 급개와 부합되기를 바라니

天恩命賜舊丹丘 천은명사구단구

천은으로 명을 내려 옛 단구를 내렸구나

 

文章本自無心取 문장본자무심취

文章은 본래 뜻이 없어도 스스로 얻게 되고

爵祿元非有意求 작록원비유의구

벼슬과 녹은 원래 뜻대로 구할 수가 없다네

薄質幸蒙垂意問 박질행몽수의문

자질이 얕은데도 뜻을 묻는 행운을 입었는데

風痾還愧稱情遊 풍아환괴칭정유

병든 몸을 정유라 칭하니 도리어 부끄럽네

 

催歸夜鳥猶煩怨 최귀야조유번원

돌아가길 재촉하는 밤 새소리 오히려 귀찮고

欲老秋蟬强噪啾 욕로추선강조추

시끄럽게 우는 매미소리에 가을도 짙어가네

若入西城人事出 약입서성인사출

만약 도성에 들어가 일을 마치고 나온다면

平生遊賞負江流 평생유상부강류

평생을 강물에 의지하여 놀면서 감상하리라

 

※藥峯(약봉) : 이 시를 지을 당시 밀양 부사였고, 김륵(金玏)과는 동문수학한 약봉 김극일(藥峯 金克一)을 말한다.

 

※槐夏歷梧秋(괴하력오추) : 괴하(槐夏)는 회나무 꽃이 피고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가 있는 음력 사월의 별칭이고, 오추(梧秋)는 오동잎이 지는 가을이라는 뜻으로, 음력 칠월의 별칭이다.

 

※凝川(응천) : 경상남도 밀양의 옛 지명이다.

 

※府伯榮超萬戶侯(부백영초만호후) : 여기서 부백(府伯)은 약봉 김극일(藥峯 金克一)을 말한다.

 

※楚雲纔結纖娥醉(초운재결섬아취) :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유래가 된 초회왕(楚懷王)의 고사를 인용한 듯하다. 초회왕(楚懷王)이 고당(高唐)에서 낮잠을 잘 때 한 여인이 찾아와 하룻밤을 잤는데, 아침에 떠나면서 ‘저는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이면 비가 되는데, 아침이면 양대(陽臺)에 있습니다.’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이에서 유래하여 남녀의 정교(情交)를 구름과 비와 나누는 정(情)이라 하여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고 한다.

 

※皀蓋(급개) : 한(漢) 나라 때 이천 석 관원에게 부여된 의장(儀狀)으로, 태수(太守)를 말한다.

 

※丹丘(단구) : 신선이 사는 곳.

 

*金玏(김륵, 1540~1616) : 조선 중기 경상우도관찰사 이조참판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호는 백암(栢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