嶺南樓와 密陽

밀양 영남루(密陽嶺南樓)의 국보(國寶)지정.

-수헌- 2023. 12. 30. 17:12

밀양 영남루(密陽嶺南樓)가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와 함께 국보(國寶)로 지정되었다. 평양의 부벽루(浮碧樓), 진주의 촉석루(矗石樓)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각의 하나인 영남루(嶺南樓)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36년 5월 보물로 처음 지정됐다가 1955년 6월에는 국보로 승격됐지만, 1962년 문화재보호법 시행으로 다시 보물로 변경했다가 이번에 60년 만에 다시 국보로 승격 관리되게 되었다.

영남루(嶺南樓)는 부벽루(浮碧樓), 촉석루(矗石樓)를 비롯한 다른 누각들이 본루(本樓)만 있는 반면 본루(本樓) 양 옆에 능파각(凌波閣)과 침류각(枕流閣)을 양 날개처럼 익루(翼樓)로  거느리고 있으며, 이 익루(翼樓)들이 본루(本樓)인 영남루와 함께 경사지에 맞게 적절히 배치되어 조형미가 매우 뛰어나며 주변 경관과도 잘 어우러져 독보적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이러한 경관과 조형미로 수많은 명사들이 시문을 남겨서 조선 선조 때에는 영남루에 걸린 시판(詩板)이 300개에 달했다고 전하나 지금은 열두 개만 남았다. 특히 하늘 , 앞 , 가 , 연기 , 대자리 을 쓰고 있는 영남루 제영시(題詠詩)는 영남루를 방문한 문사라면 거의 모두가 차운하여 필자가 확인한 차운시(次韻詩)만도 133편에 달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133편의 차운시는 이 블로그의 嶺南樓次韻詩(영남루차운시) 카테고리에 소개하였다.〉

영남루(嶺南樓)가 국보로 지정됨으로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문화유산으로 보존 관리에 더욱 매진해야겠고, 일반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는 바램이다.

 

題密陽嶺南樓   제밀양영남루     沈守慶   심수경  

밀양 영남루에서 짓다

 

多少樓臺讓一頭 다소루대양일두

다소의 누대들이 으뜸이 되길 양보하니

天敎此地擅風流 천교차지천풍류

하늘이 이 땅의 풍류를 주관하게 했네

登臨但覺胸襟爽 등림단각흉금상

올라보니 가슴속이 시원해짐을 깨닫고

却被江山挽我留 각피강산만아류

도리어 강산이 나를 머무르게 하는구나

凭欄終日覺擡頭 빙란종일각대두

종일 난간에 기대 머리를 들고 깨달으니

千嶂回環一水流 천장회환일수류

물줄기가 천길 높은 산을 돌아 흐르네

今古幾人題品去 금고기인제품거

예부터 지금까지 몇 사람이 품평하고 갔는지

壁間懸板迹空留 벽간현판적공류

벽 사이 현판이 부질없이 자취를 남겼네

 

*심수경(沈守慶,1516∼1599) : 조선시대 경기도관찰사, 대사헌,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희안(希顔), 호는 청천당(聽天堂).

 

 

登嶺南樓   등영남루     黃在英   황재영 

영남루에 올라

 

大嶺之南七十州 대령지남칠십주

큰 고개의 남쪽 칠십 개 고을에서

江山有數此高樓 강산유수차고루

이 높은 누각이 강산에서 빼어났구나

居民尙說千年刹 거민상설천년찰

주민들은 아직 천년 사찰이라 하는데

過客還疑六月秋 과객환의륙월추

과객은 유월의 가을인가 의심스럽네

栗藪行人都歷歷 율수행인도력력

밤나무 숲을 지나가는 사람 역력하고

萊洲歸帆劇悠悠 래주귀범극유유

내주로 돌아가는 돛단배가 한가롭구나

如何未了登臨樂 여하미료등림악

어찌 올라서 다 즐기지를 못했는데

我㒒催程立渡頭 아복최정립도두

노복이 나루터에서 갈 길을 재촉하나

 

※有數(유수) : 몇몇을 손꼽을 만큼 두드러지거나 훌륭함.

 

※居民尙說千年刹(거민상설천년찰) : 영남루는 원래 신라시대에 세워진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의 부속 누각이었는데, 고려시대에 절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있었던 것을 공민왕 때 누각을 새로 짓고 절의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다.

 

※六月秋(유월추) : 유월정하추(六月亭下秋)에서 온 말로 정자에 오르니 유월인데도 가을처럼 시원하다는 의미이다. 추구집(推句集)에 오야등전주 유월정하추(五夜燈前晝 六月亭下秋)라는 구절이 있다.

 

*황재영(黃在英,1835-1883) : 조선 말기의 학자. 자는 응호(應頀), 호는 대계(大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