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無名子(尹愭)의 記故事

上元旣以短律記故事 (상원기이단률기고사) - 尹愭 (윤기)

-수헌- 2024. 2. 17. 12:19

 

이 시는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가 대보름의 유래와 불가 고사를 함께 소개한 30운(韻)의 칠언장률이다.. 특히 대보름에 달맞이 놀이만 하고 관등(觀燈) 놀이는 초파일에 하는 우리와 달리 중국의 경우 대보름에 관등놀이를 하였는데,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등에 실린 고사를 소개하며 북송 시절 개봉부의 화려한 관등놀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上元旣以短律記故事 復申 三十韻    상원기이단률기고사 부신 삼십운     尹愭    윤기  

대보름 고사를 이미 단율로 적었기에 또 부연하여 읊었다. 30운

 

新年新月正團圓 신년신월정단원

새해 들어 처음 뜨는 달은 정말 둥글어서

佳節上元自古傳 가절상원자고전

대보름이 예로부터 좋은 명절로 전해왔네

太乙漢祠昏到晝¹ 태을한사혼도주

한나라 태을 제사는 저녁부터 낮까지 이어졌고

上陽唐宴盛無前² 상양당연성무전

당나라 상양궁 연회는 전례 없이 성대하였지

張燈流俗由來久 장등류속유래구

등불을 거는 풍속은 오랫동안 전해왔으며

出海淸光謾自娟 출해청광만자연

바다에서 솟아오는 맑은 달빛 절로 곱구나

奏樂闍維知佛力³ 주악도유지불력

다비식 주악에서 부처님의 법력을 알겠고

雨花摩喝見僧緣⁴⁾ 우화마갈견승연

마갈타국에 내린 꽃비에서 승연을 보았네

虛無梵竺何須說 허무범축하수설

부질없이 불교를 어찌 말할 수 있으랴만

照爛牙籤乍可編⁵⁾ 조란아첨사가편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니 적을 만하구나

龍走鴿旋五嶽戱⁶⁾ 룡주합선오악희

오악희에서 용이 달리고 비둘기처럼 돌고

豹丹鳳白九華燃⁷⁾ 표단봉백구화연

구화등의 표범 등은 붉고 봉황 등은 희네

常春殿上金鳧漾⁸⁾ 상춘전상금부양

상춘전 위에는 금 오리가 둥둥 떠다니고

宣德樓前寶馬鞭⁹⁾ 선덕루전보마편

선덕루 앞에서는 보마를 채찍질하였네

安福歌淸聯袂調¹⁰⁾ 안복가청련몌조

안복문에 함께 부른 맑은 노래가 조화롭고

廣陵虹駕五雲仙¹¹ 광릉홍가오운선

광릉의 오색구름 신선이 무지개 건넜네

樓棚繒綵光生結¹² 루붕증채광생결

비단으로 묶은 다락은 화려한 빛이 나고

珠玉金銀響動懸¹³ 주옥금은향동현

구슬과 금은을 매달아 흔들리며 소리 내네

妙思誰如毛順巧 묘사수여모순교

누구의 오묘한 생각이 모순처럼 교묘하나

幻才偏與葉師專 환재편여엽사전

신비한 재주가 섭선사의 반이나 따라갈까

五枝燈樹眞爲貴¹⁴⁾ 오지등수진위귀

나무처럼 세워진 오지등은 참으로 귀하고

千炬燭圍各自賢¹⁵⁾ 천거촉위각자현

둘러싼 천거촉은 각각 제가 낫다고 하네

擪笛李謩偸逸曲¹⁶⁾ 엽적이모투일곡

이모는 빼어난 피리 곡을 새겨서 훔쳤고

隨妃力士預華筵¹⁷⁾ 수비력사예화연

고역사는 양귀비 따라 화연에 참석했네

金吾放夜喧紅陌¹⁸⁾ 금오방야훤홍맥

금오에서 통금 해제하니 거리가 분주하고

璧殿吟詩對翠巓¹⁹⁾ 벽전음시대취전

광벽전에서 푸른 산 마주하고 시 읊었네

鐵鎖開時騰鼓舞²⁰⁾ 철쇄개시등고무

쇠사슬이 열리자 북을 치고 춤을 추고

銀花合處匝風煙 은화합처잡풍연

은 꽃 같은 등이 모인 곳에 연기 감도네

下元更與中元並²¹ 하원경여중원병

하원과 함께 다시 중원에도 아울러서

三夜仍兼五夜連²¹ 삼야잉겸오야련

삼원의 세 밤 모두 닷새를 연이어 놀았네

揷戶楊枝風自楚²² 삽호양지풍자초

버드나무 가지 꽂는 풍속 초나라에서 비롯되고

祠門膏粥俗通燕²³ 사문고죽속통연

고죽으로 문에 제사하는 것은 연나라 풍속이네

火蛾迎氣資祈頌²⁴⁾ 화아영기자기송

화아아 만들어 봄기운 맞으며 재물을 기원하고

麵蠒帖官驗後先²⁵⁾ 면견첩관험후선

면견에 벼슬 이름 써넣고 관직의 선후 점쳤네

樓上柑傳邀貴戚²⁶⁾ 루상감전요귀척

등루에서 귀척들을 초대하여 황감을 나눠주고

街頭䭔賣賭銀錢²⁷⁾ 가두퇴매도은전

거리에서는 떡도 팔고 돈 걸고 내기도 했었네

開城鎭蜀張籌勝²⁸⁾ 개성진촉장주승

장영은 뛰어난 지혜로 성문 열어두고 다스렸고

宴客奪關狄凱旋² 연객탈관적개선

적청은 객들이 연회할 때 곤륜관 뺏고 개선했네

惡少感恩寧犯法 악소감은녕범법

무뢰배들도 은혜에 감동하니 어찌 법을 범할까

伶人戱聖幸繩愆³⁰⁾ 영인희성행승건

광대는 임금의 행복과 승건을 바라며 놀았네

風流罪過傾油劾³¹ 풍류죄과경유핵

기름 낭비하고 풍류를 즐긴 죄로 탄핵받았고

鯁直言辭諫浙篇³² 경직언사간절편

강직한 언사의 글로 절등 사는 일을 간하였네

蠶室有神禱細細³³ 잠실유신도세세

잠실의 신에게 간절하게 누에 농사를 빌었고

漁陽肆志鼓淵淵³⁴⁾ 어양사지고연연

어양의 방자한 반란에 북소리가 둥둥 울렸네

王兒機警尋家返³⁵⁾ 왕아기경심가반

총명한 왕양민의 아들은 집을 찾아 돌아왔고

楊老詼諧得卜顚³⁶⁾ 양로회해득복전

익살스런 양정수는 좋은 점괘 얻고 기뻐했네

誰見紫姑傳好事³⁷⁾ 수견자고전호사

어느 호사가가 보았는지 측신 얘기 전해오고

爭裁花蝶樂逢年³⁸⁾ 쟁재화접악봉년

다투어 꽃과 나비를 만들어 새해맞이 즐겼네

龍燈鶴燄詞頗妙³⁹⁾ 용등학염사파묘

용등과 학염의 시구는 매우 오묘하였고

鳳輦鰲山句最姸⁴⁰⁾ 봉련오산구최연

봉련과 오산의 글귀는 가장 아름다웠네

酒罷使君情感舊¹ 주파사군정감구

사군의 술자리가 끝나자 옛 감회에 젖었고

奴鞭公主勢熏天² 노편공주세훈천

공주를 채찍질한 종복의 위세 하늘 찔렀네

蔡因同樂揄揚盡³ 채인동악유양진

채양은 황제의 여민동락을 찬양해 칭찬받고

李是善人寵諭宣⁴⁴⁾ 이시선인총유선

이방은 선인이어서 태종이 총애를 베풀었네

詠俗石湖煩不厭⁴⁵⁾ 영속석호번불염

풍속을 읊은 범석호는 번거로움 싫어 않았고

望京商隱興遙牽⁴⁶⁾ 망경상은흥요견

상은은 경사를 바라보며 멀리서 흥을 이끌었네

秦蘇和韻斯奇矣⁴⁷⁾ 진소화운사기의

소동파의 시에 차운한 진소유의 시는 뛰어나고

貧富留題尙喟然⁴⁸⁾ 빈부류제상위연

빈가와 부가를 대비해 지은 글에 탄식이 나네

獨我東方惟翫月 독아동방유완월

동방의 우리나라는 그저 달구경만 즐기며

踏橋探勝馬羣穿 답교탐승마군천

승경 찾는 말 탄 사람들 답교 인파 뚫고 가네

 

※太乙漢祠昏到晝(태을한사혼도주)¹ : 사기(史記) 악서(樂書)에 ‘한나라에서는 대보름에 태을(太乙)에 제사 지내는데 저녁 무렵에 지내어 날 밝을 때까지 이어졌다.〔漢家祀太乙 以昏時祀 到明〕’고 하였다. 태을은 태일(太一)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고대 사상에서 천지 만물의 근원이나 우주의 본체, 우주를 주재하는 신이라고도 한다.

 

※上陽唐宴盛無前(상양당연성무전)² : 당 현종(唐玄宗)이 동도(東都)에 있을 때 정월 대보름에 상양궁으로 가니 궁문에서 궁전까지 횃불을 크게 밝혀 침전 뜨락까지 끊이지 않고 연결되었고, 가설 누대를 설치하여 채색 등불을 걸고 금은과 보옥을 걸어두어 바람이 불면 화려한 모습과 영롱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고 한다. 상양궁(上陽宮)은 당 고종이 낙양(洛陽)에 지은 궁전이다.

 

※奏樂闍維知佛力(주악도유지불력)³ : 도유(闍維)는 화장(火葬)을 일컫는 불교 용어로, 도비(闍毗) 또는 다비(茶毘)라고도 한다. 열반경(涅槃經)에 ‘(정월 대보름에) 부처의 다비식을 하였다. 다비식이 끝나자 사리를 수습하여 금상 위에다 두었다. 천인이 꽃비를 흩날리고 주악이 성에 가득하였으며, 12리에 걸쳐 걸음걸음마다 등불이 걸려 있었다.’ 하였다.

 

※摩喝(마갈)⁴⁾ : 마갈(摩喝)은 고대인도의 왕국인 마갈타 국(摩喝陀國)을 말한다. 부처님이 이 나라 니련선하(尼蓮禪河)가에서 성도(成道)했다고 한다. 서역기(西域記)에 ‘마갈타 국에서 정월 대보름에 승려와 일반 사람들이 운집하여 부처님의 사리를 구경하니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하였다.

 

※照爛牙籤乍可編(조란아첨사가편)⁵⁾ : 아첨(牙籤)은 상아로 만든 책갈피이니, 아첨(牙籤)이 환하게 비친다 [照爛]함은 문헌에 자세히 기록되었음을 의미한다.

 

※龍走鴿旋五嶽戱(용주합선오악희)⁶⁾ : 오악희(五嶽戱)는 오악관(五嶽觀)에서의 연희라는 뜻이다. 북송의 수도 개봉(開封)에서는 정월 초이레부터 등을 달 가설장치를 만드는데, 폭포가 흘러내리는 형상을 만들고 그 좌우의 문에 용이 노는 모양〔戱龍之狀〕을 만들어 단다. 또 14일이 되면 황제가 오악관 영상지(迎祥池)에 행차하여 신하들과 연회를 베푸는데, 임금의 수레가 등불로 장식한 등산(燈山)에 들어서면 수레가 등산을 거꾸로 빙 돌아가면서 구경하는데, 이것을 발합선(鵓鴿旋)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오악희(五嶽戱)에 등룡(燈龍)이 달리는 듯한 형상이 있고, 그것을 구경하는 임금의 행차가 비둘기가 선회하듯이 거꾸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豹丹鳳白九華燃(표단봉백구화연)⁷⁾ : 한나라 때에는 정월 대보름 저녁에 남산에 구화등을 걸어 그 빛이 백 리를 밝혔다고 한다. 구화등(九華燈)은 제왕(帝王)의 궁전에 있는 찬란한 등(燈)으로 한무제(漢武帝)가 서왕모(西王母)를 위해 밝혔다는 등이다. 구미등(九微燈), 구광등(九光燈)이라고도 한다.

 

※常春殿上金鳧漾(상춘전상금부양)⁸⁾ : 당 현종이 정월 대보름 밤에 상춘전에서 연회를 열 때, 황금빛 오리 모양의 금부등(金鳧燈), 은빛 제비 모양의 은연등(銀燕燈)을 물에 띄웠다고 한다.

 

※宣德樓前寶馬鞭(선덕루전보마편)⁹⁾ : 북송(北宋) 시대에 정월 대보름이 되면 궁궐 내의 선덕루(宣德樓) 앞에 가설 누대를 세우고 그 앞에 수천 개의 등을 달았는데, 이 화려하고 몽환적인 장면을 남송(南宋)의 시인 신기질(辛棄疾)이 시로 읊어 ‘봄바람 불제 밤에 천 그루의 나무에 꽃이 피고……보마와 화려한 수레의 향기가 거리에 가득하네.〔東風夜放花千樹……寶馬雕車香滿路〕’라고 한 데서 인용하였다.

 

※安福歌淸聯袂調(안복가청련몌조)¹⁰⁾ : 당 예종(唐睿宗)이 안복문에 행차하여 등불을 구경할 때 문장에 능한 조사(朝士)에게 답청가(踏靑歌)를 지어 부르게 하니, 그 노랫소리가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련몌(聯袂)는 옷소매가 잇달다 라는 뜻으로 손잡고, 함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廣陵虹駕五雲仙(광릉홍가오운선)¹¹ : 당나라 때에는 대보름에 다리밟기가 성했는데, 정월 대보름에 당 현종이 관등놀이가 가장 화려한 곳이 어디냐고 묻자, 섭선사(葉仙士)가 광릉(廣陵)이라고 대답하였다. 현종이 광릉의 관등놀이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자, 섭선사가 잠깐 사이에 무지개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현종이 이 무지개다리에 올라 순식간에 광릉에 도착하여 관등놀이를 구경했다고 한다. 이 전설이 다리밟기의 기원이라 한다.

 

※樓棚繒綵光生結(누붕증채광생결)¹² : 개봉에서는 대보름에 등산(燈山)에서 선덕문(宣徳門)까지 큰 거리에 누대가 약 백여 장쯤 우뚝하였는데, 안에다 높이 수십 장 되는 긴 장대 두 개를 설치한 다음 비단으로 갖가지 모습의 인물 형상을 만들어 다락에다 묶어놓았다. 이 때문에 바람이 불면 흡사 신선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고 한다.

 

※珠玉金銀響動懸(주옥금은향동현)¹³ : 당 현종 때의 장인(匠人) 모순(毛順)은 비단을 묶어 등루 20칸을 만들었는데, 높이가 무려 150장이나 되었다. 거기에다 주옥과 금은을 매달아 놓으니, 바람이 불기만 하면 쟁그랑쟁그랑 소리를 냈다 한다.

 

※五枝燈樹眞爲貴(오지등수진위귀)¹⁴⁾ : 정월 대보름에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함양궁(咸陽宮)에서 등을 걸고 연회를 열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특색 있는 것이 청옥(靑玉)으로 된 오지등(五枝燈)이었다고 한다. 오지등(五枝燈)은 높이가 7척 5촌에, 아래는 교룡(蛟龍)이 감고 입에 등을 물고 있었다. 등불을 켜면 비늘이 모두 움직이고 많은 별이 방안에 가득 찬 듯 밝았다 한다.

 

※千炬燭圍各自賢(천거촉위각자현)¹⁵⁾ : 천거촉(千炬燭)은 천 개의 등과 횃불인데, 꼭 천 개가 아니더라도 수없이 많은 등과 횃불이라는 의미이다. 그 천거촉(千炬燭)이 제각각 자신이 가장 멋있다고 뽐내는듯하다는 의미이다.

 

※擪笛李謩偸逸曲(엽적이모투일곡)¹⁶⁾ : 당 현종(唐玄宗)이 대보름 전날 밤에 상양궁에 행차하여 새로 지은 곡조를 연주하였다. 다음날 미복 차림으로 노닐다가 서루 위에서 연주하는 피리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 곡이 다름 아닌 간밤에 연주했던 새로 지은 악곡이었다. 피리를 부는 자를 잡아서 물었더니, 전날 밤 천진교(天津橋)에서 달구경을 하다가 궁중에서 연주하는 악곡을 듣고 그 소리가 좋아서 손톱으로 악보를 따라 새겼다고 대답하였다. 이 사람이 바로 이모(李謩)였다.

 

※隨妃力士預華筵(수비력사예화연)¹⁷⁾ : 고역사(高力士)는 당 현종 때 총애를 받던 환관이다. 화려한 연회[華筵]는 앞의 주 ¹¹의 광릉의 관등놀이를 구경한 것을 말한다.

 

※金吾放夜喧紅陌(금오방야훤홍맥)¹⁸⁾ : 대보름 밤에는 의금부[金吾]에서 야간 통금을 해제하는데, 이것을 방야(放夜)라고 한다. 정월 대보름을 노래한 소미도(蘇味道)의 시에 ‘금오에서 야금을 하지 않으니, 옥루를 재촉할 것 없네.〔金吾不禁夜 玉漏莫相催〕’ 하였다.

 

※璧殿吟詩對翠巓(벽전음시대취전)¹⁹⁾ : 남북조 시대에도 대보름 밤 행사가 성대하게 펼쳐져 진 후주(陳後主)가 광벽전에서 연회를 열고 놀면서 ‘광벽전 연회에서 먼 산의 등을 읊다. [宴光璧殿詠遙山燈]라는 시를 지었다. 푸른 산은 바로 멀리 보이는 산등(山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鐵鎖開時騰鼓舞(철쇄개시등고무)²⁰⁾ : 궁문을 막았던 쇠사슬이 열리고 궁 안의 관등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구경꾼들이 북 치고 춤추며 흥겨웠다는 의미이다. 소미도의 시 원소(元宵)에 ‘화수에 은화가 모였고, 성교에 쇠사슬이 열렸네. 〔火樹銀花合 星橋鐵鎖開〕’라고 하였다.

 

※下元更與中元並(하원경여중원병) 三夜仍兼五夜連(삼야잉겸오야련)²¹ : 하원(下元)은 10월 15일이고, 중원(中元)은 7월 15일이다. 대보름인 상원과 백중절인 중원, 그리고 하원을 삼원(三元)이라 하는데, 도교의 전설에 삼원제(三元帝)가 있어, 상원제(上元帝)는 하늘을 주관하고, 중원제(中元帝)는 땅을 주관하고, 하원제(下元帝)는 물을 주관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세 날을 경축하여 연 닷새 동안 밤새 잔치를 연다고 한다.

 

※揷戶楊枝風自楚(삽호양지풍자초)²² :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정월 대보름이 되면 대문에 제사를 지내는데, 먼저 ‘버드나무 가지를 문에 꽂는다.〔先以楊柳枝挿門〕’라고 하였는데, 이는 한 해 동안 비가 순조롭기를 빌거나 액을 씻는 행사이다.

 

※祠門膏粥俗通燕(사문고죽속통연)²³ : 고죽은 쌀과 콩으로 죽을 쑤고 거기에 기름을 첨가한 죽이다. 옥촉보전(玉燭寳典)에 정월 대보름에 ‘콩죽을 쑤어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대문에다 제사한다.〔作豆糜 加油膏其上 以祠門戶〕’ 하였다.

 

※火蛾迎氣資祈頌(화아영기자기송)²⁴⁾ : 정월 대보름에 부녀자들이 색종이로 풀벌레나 호랑나비 모양으로 만든 장식물을 화아아(火蛾兒)라고 한다. 이것을 머리에 꽂으면서 봄을 기다리던 풍속이 있었다. 화아아는 줄여서 아아(蛾兒), 또는 요아(鬧蛾)라고도 부른다.

 

※麵蠒帖官驗後先(면견첩관험후선)²⁵⁾ : 견(繭)은 면견(麵繭)을 말한다. 밀가루로 만든 고치란 뜻인데, 만두나 춘권(春卷)과 비슷한 음식의 일종이다. 정월 대보름에 장안(長安)의 부귀한 집에서는 면견을 만들어 고기로 소를 넣어 먹는데, 이를 탐관견(探官繭)이라고도 한다. 면견 속에 온갖 벼슬 이름을 적어 넣고, 자제들이 면견을 골라잡아 먹을 때 그 속에 적혀 있는 관직이름을 가지고 각각 자신의 벼슬을 점치는 풍속이 있다. 이러한 풍속을 복견(卜繭) 또는 견복(繭卜)이라고도 한다.

 

※傳柑(전감)²⁶⁾ : 북송(北宋) 때 정월 대보름 밤에 궁중에서 근신(近臣)들에게 연회를 베풀어줄 때 귀척(貴戚)과 궁인(宮人)들이 감귤을 서로 선물로 주던 풍습이 있었다. 소식(蘇軾)의 시 상원시음루상(上元侍飮樓上)에 ‘돌아오니 등잔불 한 점 가물거리고, 그나마 아내에게 전해줄 황감이 있구나.〔歸來一點殘燈在 猶有傳柑遺細君〕.라는 구절이 있다.  

 

※街頭䭔賣賭銀錢(가두퇴매도은전)²⁷⁾ : 북송(北宋) 개봉부(開封府)에서는 대보름날 차양을 치고 거기에 등불을 걸어 일종의 가판대를 설치하고, 여기에서 매화와 나비 모양 등 온갖 장식품과 떡과 죽 등 각종 먹을거리도 팔았다고 한다.

 

※開城鎭蜀張籌勝(개성진촉장주승)²⁸⁾ : 장(張)은 송(宋) 나라 사람 장영(張詠)으로, 촉 지방에 두 번 부임하여 진무(鎭撫)하였는데, 처음에 부임하여 엄하게 대하여 백성들을 교화시키고, 두 번째 부임해서는 관대하게 다스렸다고 한다. 고을을 다스리는 방략이 뛰어나 도둑이 없어 성문을 열고 있을 정도였다는 의미이다.

 

※宴客奪關狄凱旋(연객탈관적개선)² : 적(狄)은 송 인종(宋仁宗) 때의 명장 적청(狄青)이다. 광서(廣西)의 농지고(儂智髙)가 난을 일으켰을 때 이를 토벌하러 갔다. 당시 농지고는 곤륜관(崑崙關)을 지키고 있었다. 적청이 빈주(賓州)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정월 대보름이었다. 적청이 등불을 크게 내걸고 휘하의 장수 및 종군관(從軍官)들과 연회를 하였다. 연회도중 잠시 자리를 비웠다. 연회 자리의 객들이 새벽이 되도록 물러가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적청이 곤륜관을 야습(夜襲)하여 빼앗았다고 한다.

 

※伶人戱聖幸繩愆(영인희성행승건)³⁰⁾ : 영인(伶人)은 악공과 광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정월 대보름에 광대들이 황제 앞에서 연희를 펼치며, 임금에게 허물을 고치고 선정을 베풀어달라는 내용의 연극을 공연했다는 의미이다. 승건(繩愆)은 잘못을 바로잡다는 뜻이다.

 

※風流罪過傾油劾(풍류죄과경유핵)³¹ : 송나라 때 태사(太師) 채경(蔡京)이 정월 대보름을 맞았으나 사흘 연속 비가 내려 나가 놀 수 없다가 17일에 비가 그치자 등불을 내걸려고 하였다. 이때 아전이 와서 장안(長安)의 태부(太府)에서 해마다 등불을 달 때 소비하는 기름이 너무 많아서 이제 이곳에는 기름이 바닥나서 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채 태사가 그래도 등불을 걸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성 안 창고에 비축해 둔 기름이 많지만 법률상 함부로 쓸 수 없다고 일러주었다. 채 태사가 명을 내려 그 기름을 가져다 쓰게 하였는데, 결국 이 일 때문에 전운사(轉運使)에게 탄핵을 받았다.

 

※鯁直言辭諫浙篇(경직언사간절편)³² : 중국 절강(浙江)에서 만든 등(燈)은 화려하기로 유명한데 이를 절등(浙燈)이라 한다. 송 신종(宋神宗)이 정월 상원(上元)에 관등(觀燈) 행사를 위하여 절강 지방에 명을 내려 등(燈) 4천여 개를 사게 하였는데, 화려한 등을 많이 바치라고 강요하면서 강제로 싸게 구입하고 사매(私買)를 금지하였다. 이에 소식(蘇軾)이 간매절등장(諫買浙燈狀)이라는 글을 올려 직간하였다.

 

※蠶室有神禱細細(잠실유신도세세)³³ : 정월 대보름 밤에 잠신(蠶神)이 진 씨(陳氏)의 집에 내려와 ‘나는 누에의 신〔蠶神〕이다. 나를 위해 잠실(蠶室)을 짓고 제사를 지내면, 누에 농사가 백 배는 잘 되도록 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민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잠실에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漁陽肆志鼓淵淵(어양사지고연연)³⁴⁾ : 어양은 안록산(安祿山)이 20만 대군으로 반란을 일으켰던 곳이다. 12월에 수도를 함락하고 이듬해 정월에 성무황제(聖武皇帝)라고 칭하면서 국호를 연(燕)으로 고쳤는데,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 이때의 상황을 ‘어양의 북소리가 땅을 울리며 다가오자, 예상우의곡 즐기던 임금 놀라셨다네. 〔漁陽鼙鼓動地來 驚破霓裳羽衣曲〕’라고 하였다.

 

※王兒機警尋家返(왕아기경심가반)³⁵⁾ : 왕아(王兒)는 신종(神宗) 때에 왕양민(王襄敏) 소(韶)의 아들 채(宷)를 말하는데, 그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개봉의 대보름 관등놀이를 나갔다가 인파에 휩쓸려 길을 잃었다. 귀한 옷을 입은 채(宷)를 도적이 납치하였으나,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도적 일당의 소굴을 황제에게 말하여 개봉의 도적을 소탕할 수 있었다고 한다.

 

※楊老詼諧得卜顚(양로회해득복전)³⁶⁾ : 양로(楊老)는 송나라 시인 양만리(楊萬里)를 말한다. 양만리의 호는 정수(廷秀)이다. 주 ²⁵⁾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면견(麵繭)으로 관직의 운을 점치는 풍속이 있는데, 양정수(楊廷秀)의 시 대보름밤…〔上元夜…〕에 ‘면견으로 친 점이 맞지 않을 줄 뻔히 알지만, 취중에 좋은 점괘 얻고 미칠 듯 기뻐하네. [心知蠒卜未必然 醉中得卜喜欲癲〕’라고 한 것을 말한다.

 

※紫姑(자고)³⁷⁾ : 자고(紫姑)는 변소 귀신[廁神]을 말한다. 당나라 때 하미(何媚;紫女)라는 여인이 미모가 뛰어나고 현명하여 자사(刺史)인 이경(李景)의 첩이 되었는데, 정실부인인 조 씨(曹氏)의 시기를 받아 늘 측간(廁間) 청소하는 일을 하다가 정월 보름날 이경(李景)이 출타한 틈에 측간에서 살해되어 귀신이 되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를 변소 귀신[廁神]이라 부르고, 그 신이 영험하다 하여 그가 죽은 1월 15일 날 측간에 제사를 지내고 한해 모든 일의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爭裁花蝶樂逢年(쟁재화접악봉년)³⁸⁾ : 오중(吳中) 지방에서는 빨리 봄이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정월 대보름 밤에 비단으로 꽃 모양과 나비 모양의 장식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나가 놀며, 비단 꽃에 나비가 날아오기를 기다리는 풍습이 있었다.

 

※龍燈鶴燄詞頗妙(용등학염사파묘)³⁹⁾ : 용등(龍燈)은 용처럼 만든 등을 말이고, 학염(鶴燄)은 학처럼 만든 촛대를 말한다. 북송의 명사 하영공(夏英公)의 시에 ‘보방의 밝은 달빛에 용등은 담담하고, 자관의 미풍에 학염은 평안했네.〔寶坊月皎龍燈淡 紫館風微鶴燄平〕’라고 한 구절을 말한다.

 

※鳳輦鰲山句最姸(봉련오산구최연)⁴⁰⁾ : 정월 대보름 밤에 응제시(應製試)를 지을 때 봉황과 자라의 고사만을 사용하여 시를 짓기로 했는데, 왕우옥(王禹玉)이 관등놀이에 걸린 등의 모양을 보고 ‘두 마리 봉황이 구름 속에서 옥황상제의 수레를 모시고 내려오고, 여섯 마리 자라가 바다에서 산을 메고 온다.〔雙鳳雲中扶輦下 六鰲海上駕山來〕’라고 읊었다.

 

※酒罷使君情感舊(주파사군정감구)¹ : 소식(蘇軾)이 폄적되어 강호에 있을 때 사군(使君)이 연 주연(酒宴)에 참가하였는데, 술자리가 끝나자 옛 감회에 젖어 궁궐에서 임금을 모시며 보낸 보름밤과 중산부(中山府)에서 앓아누워서 보낸 대 보름밤을 회상하며 ‘사군의 술자리 끝나자, 퉁소 소리 북소리 송릉으로 흘러가네.〔使君置酒罷 簫鼔轉松陵〕’라는 시를 남겼다. 사군(使君)은 임금의 명을 받들어 가거나 온 사신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奴鞭公主勢熏天(노편공주세훈천)² : 당나라 때 정월 대보름에 양귀비(楊貴妃)의 오라비인 양국충(楊國忠) 집안의 다섯 형제가 관등놀이를 나갔다가 광녕 공주(廣寧公主)의 수행원과 다투게 되었다. 이때 양 씨 집안의 종복이 감히 공주의 옷에 채찍질을 하여 공주가 말에서 떨어진 일이 있었다. 이때는 양국충을 필두로 한 양 씨의 세력이 극성을 구가하던 시기였으므로, 이런 방자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蔡因同樂揄揚盡(채인동악유양진)³ : 채(蔡)는 송나라 때의 문인 채양(蔡襄)이다. 북송 인종(仁宗)이 정월 14일에 어루(御樓)에서 ‘선화여민동락(宣和與民同樂)’이란 글씨를 크게 써놓고, ‘내가 놀기를 좋아하여 여기 온 것이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즐기는 것을 보러 왔을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보름날 채양(蔡襄)이 어루연(御樓宴)에서 응제시(應製詩)를 지을 때 이 말을 가지고 ‘임금님이 노는 것은 삼원 밤이기 때문이 아니라, 즐기는 일이 도리어 만백성의 마음과 함께 하기 위해서라네.〔宸遊不爲三元夜 樂事還同萬衆心〕”라고 읊은 것을 말한다.

 

※李是善人寵諭宣(이시선인총유선)⁴⁴⁾ : 송 태종(宋太宗)이 대보름날 누각에 행차했을 때, 사공(司空)을 지낸 뒤 벼슬을 내놓고 집으로 물러가 있던 이방(李昉)을 안여(安輿)에다 모셔오게 하여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직접 어준(御尊)에다 술을 따라주고 안주를 내려주었다. 이어서 근시(近侍)에게 ‘이방은 선인(善人)이요 군자(君子)라 할 만하다. 나를 섬기며 두 차례 중서성에 있으면서 남을 해롭게 한 일이 없었으니, 오늘 이 대접은 당연하다.’ 하고 시를 지어 내려주었다.

 

※詠俗石湖煩不厭(영속석호번불염)⁴⁵⁾ : 석호(石湖)는 중국 남송(南宋) 때의 시인 범성대(范成大)의 호이다. 그는 상원 밤의 풍속을 여러 편의 시로 남겼는데, 특히 ‘상원기오하절물배해체 32운(上元紀呉下節物俳諧體三十二韻)’의 장편고시를 통해 대보름의 풍속을 자세히 읊고, 주석을 통해 상세하게 내용을 밝혀놓기도 했다.

 

※望京商隱興遙牽(망경상은흥요견)⁴⁶⁾ :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경도원석(京都元夕)이란 시에서 정월 대보름 밤에 서울 거리를 회상하며 “달빛 아래 등산은 온 도성에 가득하고, 보배로 덮은 향기로운 수레가 거리에 넘쳐나겠지. 몸은 한가로워도 중흥의 성대함을 보지 못하고서, 부끄럽게도 시골 사람들 따라 자고신 굿이나 하고 있네.〔月色燈山滿帝都 香車寶蓋隘通衢 身閒不睹中興盛 羞逐鄉人賽紫姑〕”라고 읊었다.

 

※秦蘇和韻斯奇矣(진소화운사기의)⁴⁷⁾ : 진소유(秦少游)는 소식(蘇軾)의 제자 진관(秦觀)을 말한다. 그가 소식(蘇軾)의 상원루(上元樓)란 시에 차운하여 대보름 밤의 화려한 풍경을 읊었다.

 

※貧富留題尙喟然(빈부류제상위연)⁴⁸⁾ : 북송시대 복주(福州) 출신으로 국자직강(國子直講)을 지낸 진열(陳烈)은, 당시 복주태수(福州太守)인 유근(劉瑾)이 백성들을 수탈하며, 원소절(原宵節;정월 대보름)을 맞아 빈부에 관계없이 등롱(燈籠)을 10개씩 바치도록 한 것을 보고 누각의 문에 걸린 큰 등롱에다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적어 부조리한 현실을 규탄하였다 한다.

富家一碗燈 (부가일완등) 부잣집에서 마련한 등불 하나는

太倉一粒粟 (태창일립속) 창고 안 좁쌀 한 톨에 불과하나

貧家一碗燈 (빈가일완등) 가난한 집은 등불 하나 때문에

父子相聚哭 (부자상취곡) 부자가 함께 모여서 통곡한다네

風流太守知不知 (풍류태수지부지) 풍류만 탐하는 태수는 아는가 모르는가

惟恨笙歌無妙曲 (유한생가무묘곡) 오직 풍악만 있고 묘곡이 없어 한스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