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곡(蓀谷)과 삼당시인(三唐詩人)

손곡(蓀谷)이달(李達)과 봉래(蓬萊)양사언(楊士彦)

-수헌- 2020. 9. 28. 18:31

봉래(蓬萊)양사언(楊士彦;1517년생)과 손곡(蓀谷)이달(李達;1539년생?)은 20세 이상, 근 한 세대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봉래는 워낙 출중한 손곡의 시재(詩才)를 존중하여 가까이하며 극진히 대하였고 심지어는 서로의 詩에 대해 평을 하는 등의 시우(詩友)로써 교류 하였다. 蓬萊가 蓀谷을 이렇게 존중하고 예우한 것은 그의 시재가 워낙 탁월하였기 때문이지만 그가 서자로 태어나 벼슬도 못하고 방랑하는데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은 봉래(蓬萊)양사언(楊士彦)과 손곡(蓀谷)이달(李達)의 관계를 볼 수 있는 시 몇 수를 올린다.

 

淮陽府簡寄楊蓬萊 회양부간기양봉래 - 李達

회양부의 봉래 양공에게 올리는 편지

十月發漢陽 시월발한양

시월에 한양을 떠나

今在交洲道 금재교주도

지금은 교주도에 있습니다

交洲雨雪多 교주우설다

교주도엔 눈비가 많아서

明發恐不早 명발공부조

내일 일찍 못 떠날까 두렵습니다

相思隔重關 상사격중관

서로 그리지만 겹친 관문에 막혀서

一夜令人老 일야영인로

하룻밤에 사람을 늙게 합니다

 

이 시는 蓀谷회양부(강원도 최북단 회양군)에 있는 蓬萊를 만나러 가면서 이미 교주도(강원도의 옛 이름)에 들어섰지만 눈비에 막혀 상봉이 늦을 것을 걱정하여 쓴 시인데 하룻밤에 늙을 만큼 서로 그리워함을 보여 준다.

 

 

九仙峯  구선봉 - 楊士彦

峯在楓岳東 與蓀谷同遊 口號對屬次之辭曰 如此得意驚句 誠不可敵已

봉재풍악동 여손곡동유 구호대속차지사왈 여차득이경구 성불가적이

구선봉은 풍악산 동쪽에 있는데 손곡과 같이 놀면서 운을 부르면 서로 답하자고 하니, 손곡이 사양하기를 이같이 놀라운 시구에는 정성껏 상대할 수 없다고 했다.

九仙何日九天中 구선하일구천중

구선이 어느 날 높은 하늘 가운데 올라

萬里來遊駕紫虹 만리내유가자홍

멀리 와서 무지개를 타고 놀았나

湖海勝區看未厭 호해승구간미염

넓은 바다 좋은 경관 볼 때마다 싫지 않아

至今離立倚長空 지금이립의장공

지금까지 속세 떠나 하늘에 의지해 서 있네

 

蓬萊 楊士彦은 회양군수로 재직할 때 蓀谷 李達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며 시를 지으며 즐겼다고 한다. 이 시도 금강산 구선봉을 노래한 시인데 손곡이 극찬하였다는 내용을 서문에 길게 적을 만큼 봉래 양사언과 손곡 이달이 시로서 서로 존중함을 잘 알 수 있다고 하겠다.

 

손곡의 재주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손곡은 젊어서부터 기방의 여자들에게 너무 빠져 지냈다.” “부모를 잘 모시지 않고 아내에게도 예를 지키지 않는다.”고 그를 놀려 댔지만 손곡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봉래 양사언이 명주를 다스리고 있을 때 손곡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허균의 아버지 허엽(許曄)에게 비방하자, 허엽이 봉래에게 편지를 보내 손곡을 다른 곳으로 보내라 권고했다.

봉래가 답을 보내왔는데

桐花夜煙落

동화야우락-밤안개 속으로 오동 꽃잎 떨어지고

海樹春雲空

해수춘운공-바닷가 나무는 봄 구름에 사라졌네.라는 훌륭한 시구를 지은 이달에게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본장 1편 별이예장 참조>

그 뒤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손곡을 비방하므로 손곡이 아래의 <상양명부>시를 지어 주고 떠나려고 하자 봉래가 깜짝 놀라 후회하고 곧 예전과 같이 대우했다고 한다. <허균의 학산초담>

 

上楊明府 상양명부 -李達

양사언 사또님께 올립니다.

 

行子去留際 행자거류제

나그네가 길 떠나고 머무는 것은

主人眉睫間 주인미첩간

집주인의 눈빛에 달려있는데

今朝失黃氣 금조실황기

오늘 아침 환한 빛이 없어졌기에

未久憶靑山 미구억청산

머지않아 청산에 갈 생각을 했습니다.

魯國爰鶋饗 노국원거향

노나라에서는 원거(爰鶋)에게 제사 지냈고

征南薏苡還 정남의이환

남쪽 정벌하고 올 때 율무를 가져왔는데

秋風蘇季子 추풍소계자

가을바람에 소계자(蘇季字)처럼

又出穆陵關 우출목릉관

목릉의 관문을 또 나서야겠습니다.

 

원거(爰鶋)-바다새의 일종, 향(饗)-잔치할, 제사 지낼 향 ; 분수에 지나친 대우를 받는 것을 말함.

옛날 魯(노)나라에 원거(爰鶋)가 날아와 머무르자 노후(魯侯)가 진귀한 음식과 음악을 연주하며 잔치를 열어줬는데 원거는 놀라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사흘 뒤에 죽었다 한다 <莊子 至樂>. 또 장문중(臧文仲)이 이 새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의이(薏苡) - 율무, 薏苡還(의이환) : 터무니없이 남의 비방을 받는 것을 말함. 後漢(후한)의 馬援(마원)이 交趾(교지)를 평정하고 돌아올 때 風疾(풍질)에 좋은 薏苡仁(의이인; 율무씨)을 여러 수레에 싣고 왔는데 그를 미워하는 자들이 금은보화를 싣고 왔다고 비방한 고사에서 유래함. (薏苡明珠;의이명주).

蘇季子 : 蘇秦(소진). 전국 시대 연나라 문후의 책사. 전국 7웅 중 가장 강한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나머지 6국이 동맹하여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책을 설파하러 6국을 돌아다녔다.

 

이 시는 손곡 이달이 눈빛만 보고도 봉래 양사언의 고민을 알아채고 너무 과분한 대접을 받았으나 다른 사람의 모함을 받아 떠나고자 한다는 내용이다.

 

 

哭楊蓬萊  곡양봉래 - 李達

양봉래 죽음에 곡하다

知是人間尸解身 지시인간시해신

무릇 인간으로 신선되어 떠날 줄 알았으니

不須惆悵浪沾巾 부수추창랑첨건

부질없이 슬퍼하여 수건을 적시지 말라.

蓬萊海上東歸路 봉래해상동귀로

봉래가 바다 위 동쪽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疑有碧桃千樹春 의유벽도천수춘

아마도 봄날의 벽도 일천 그루 있으리라.

 

尸解(시해) : 몸만 남기고 魂魄(혼백) 빠져나감, 또는 그렇게 하여 神仙(신선)으로 화하는 일.

碧桃(벽도) : 벽도화, 선경에 있다는 전설상의 복숭아나무.

 

봉래 양사언이 돌아가자 손곡 이달이 이를 슬퍼하며 지은 시. 오히려 봉래가 신선이 될 줄 알았고, 신선이 되어 돌아갔으니 슬퍼하지 말고 가는 길에 봄날 벽도가 있으리라고 축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