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完譯』蓬萊詩集(완역 봉래시집)-楊士彦/賦, 文, 記. (부, 문, 기.)

殿策 (전책)

-수헌- 2025. 1. 29. 22:53

 

殿策 丙午庭試壯元上之下   전책 병오정시장원상지하

王若曰 士氣 國家之元脈 隨其盛衰 而興喪係焉 唐虞上世 不可尙已 秦漢而下 能培養是氣 扶植國脈者 不能培養 而反致國脈之傷者 可歷指耶 其施措得失美惡 可得詳言之歟 我朝重士氣勵士節 培養之方 非不備矣 委靡偸惰 莫此尤甚 禮義之不行 廉恥之道喪 氣節掃地 軟熟成風 士尙至此 國脈何恃 子以沖年 嗣先人艱大之業 日夜憂懼 思得善養之策 永固邦家之基 子大夫 皆有所養者 各悉著于篇  

臣對 臣聞 木之立而不枯者 以其根於土也 水之流而不涸者 以其發於源也 國家之所以治安而不危者 賴其士氣之扶持而培植之也 苟使是氣摧挫而不養 沮抑而不作 則不危之祚未亂之邦 亡無日矣 豈啻無源之水易涸 無根之木易枯哉 恭惟主上殿下 當嗣服之初 赫降明命 意在乎立天下之大本 首以養士氣培國脈爲務 可謂深得致治之要矣 明見先後之序矣 于以充之 則爲經世之道 思過半矣 臣伏讀聖策曰 士氣止詳言之歟 臣聞 天地有純剛正大之氣充塞流行者 固未嘗斯須亡也 而得其靈之最者 人也 士之於人 尤拔乎其萃者也 故傑立乎宇宙 磅礴乎古今 扶持綱紀 植立人命 丘民賴以不獸 天下賴以不夜 其在盛也 則邪不亂正 非不混是 小人道消 君子道長 國家基業 安如磐石 繫乎苞桑 其在衰也 則天否地塞 陽明陰濁之分不別 糅朱雜紫 薰香蕕臭之味莫辨 天下靡靡然入於禽獸之域 然後國家之亂亡隨之 是以 古昔帝王 莫不於是乎先之勞之 鼓舞之 振作之 彼唐虞盛世 固不可尙已 臣愚 以爲欲求士氣善養之迹 捨唐虞而何法 臣請先擧堯舜之至德 雍熙之至治 然後下陳秦漢以下之事 夫堯舜 人倫之亟也 天理之所在也 充四表而致於變 敷五敎而遜五品 故四凶旣去 元凱登庸 九官相讓於朝 九牧相遜於外 是皆所以危乎天運於不言之中 窅爾神化於不動之上 無爲而無不爲 則其所以培養士氣者 寧借於聲色政令之間哉 降及秦漢 爲君者不知培養是氣 爲臣者不知扶持是氣 凡所以籠駕一世者 偏伯之術而止耳 功業之計而止耳 寧論士氣之養不養哉 彼善於此 則漢高過魯一事 縞素一擧 猶足以立士氣倡士義 而溲溺儒冠 未遑詩書 故士氣民俗 日以至於偸靡 是養而不能者也 光武尊尙儒術 風厲天下 桐江一絲 足以鼓忠義之氣 激士林之節 而終至激濁楊淸 黨錮禍起 士林同坑 國家繼難 是養而反傷其脈也 魏晉之漬虛 隋唐之老佛 或流於無父 或入於無君 士氣之養與不養 不可議也 獨宋朝 仁厚一脈 自足以培養是氣 故眞儒蔚出 繼往開來 濂洛諸賢 學究天人 誠明理徹 是所謂不待文王而興者也 當是時也 無道率而自率 無培養而自養 終宋之世 堂堂士氣 卓犖天壤 貞臣烈士 史不絶書 合而觀之 其培養之能不能 施 措之得失美惡 昭不可掩矣 臣愚 以爲爲人上而任培養之責者 當法堯舜之無爲 而戒之以秦漢之君 爲士而當自養之任者 宜效濂洛之諸賢 而變秦漢以下偸薄之習 則何憂乎士氣之不養 何患乎國家之不安乎 伏願殿下 留意焉 臣伏讀聖策曰 我朝止國脈何恃 我國家 內立成均四學 以立首善之地 外設州縣鄕校 以厲賓興之士 猶以爲未足 表忠旌孝 以樹風化 搜奸伐佞 以勸爲善 其所以培養之方 激厲之道 可謂備矣 奈之何士氣國尙 委靡偸惰 淊淊而不振 乃至此乎 天理悖而禮爲箕 人欲專而義爲土 氣節墜地 民習爲性 漸染成風 曠久因循 莫或變乎 士民將何所賴 國家將何所恃 是宜軫聖上宵旰之慮 而貽朝廷大臣之憂耳 臣愚 以爲此固有由也 雖有培養之名 而無培養之實也 何也 大學 賢士之所關風化之原 而師儒者 又導率之倡也 今也 受師儒之任 負導率之責者 未必盡經明行修之人也 時或塞員塡闕 當期而往 及時而退 其敎誨文字者 纔受其句讀而已 資弄其雕篆而已 是以 爲士者 亦且旅進而旅退 浮沈遊世 隨波逐浪 髫髮未別 已圖靑紫 冠弁纔加 擬窺卿相 其於性理之具 爲己之學 蔑視爲何物 瞢不知爲何事 是何等士氣也 間或有危言危行 循法守正者 則羣聚訾嗷 揚臂排斥者 如吾儒之辟老佛距楊墨也 疾之如仇讎 忌之若芒刺嗚呼 致此亦有由也 自士氣一折於戊午 再折於甲子 三折於己卯 而掃蕩盡矣 萎薾極矣 至今宗社之不亡而存者 幸矣 非祖宗默佑中仁二聖之持守繼述 世德世臣之左右輔翼 則殿下安得安一日於民上哉 臣愚 以爲爲學之道 嚴師爲難 是故 雖天子北面 而尊師所以待不臣也 以位而言 則以天子之貴 而師匹夫之賤 勢所難也 而必曰嚴師者 必如是而後 人嚴之也 人嚴其師 則師道尊矣 武王師尙父於踐祚之初 成王師周公於嗣服之始 故武王成王之德 如彼其卓卓 尙父周公之變化殷俗 如彼其易也 孔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我國雖小 肯與比乎十室之邑也 殿下苟能先得如尙父周公之賢聖 而友之師之 日與處 夜與居 朝講暮習 又得如濂洛之諸儒 以列於大學之長 其次其副 雖未盡得其大賢 而求得其賢於士之賢者 管帶其職 不拘循資 不程時月 始敎之以灑掃應對之節 終收之以格致誠正之功 繼之以悠久之勇 守之以不奪之智 則朝廷自正而四方正矣 四方正而萬民正矣 夫如是 則士氣不期養而自養 國勢不期盛而自盛矣 其餘委靡偸情之習 何足掛念於齒牙哉 洪範曰 皇建其有極 又曰 會其有極 歸其有極 乃曰 上有建極之君 則下有歸極之民也 願殿下 先建其極 孟子曰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上之風 必偃 又曰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願殿下 先謹之以好尙臣伏讀聖策曰 予以沖年 止悉著于篇 臣 山海一介之士耳 學不至於正己 智不用於時務 其於善養之策 何敢僣議 然賈誼慟哭於漢朝 劉蕡直言於唐廷 臣之精誠 雖下於二子 而願忠之志 殆有過焉 願殿下 上法乎堯舜之無爲 下戒乎秦漢 之偸靡 崇師儒而重道 謹好尙而率民 明以誠之 歸小德於大德 則將見家伊周而戶程朱 士氣盛而國脈固矣 詩曰 愷悌君子 遐不作人 作人之妙 實在於君 伏願殿下 懋哉懋哉

 

殿策¹⁾   전책

丙午庭試壯元上之下

병오년 정시(庭試)에서 장원을 하니 점수는 상(上)의 하(下)였다.

 

王若曰

임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士氣 國家之元脈 隨其盛衰 而興喪係焉

사기는 국가의 원맥이니 그 성쇠에 따라 흥망이 달려 있다.

唐虞上世 不可尙已 秦漢而下 能培養是氣 扶植國脈者 不能培養 而反致國脈之傷者 可歷指耶

당우의 상고시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진한 이하에도 이 사기를 배양했으나 국맥을 배양하는 자가 사기를 배양하지 못하고 도리어 국맥을 손상시킨 것을 역력히 지적할 수 있겠는가?

其施措得失美惡 可得詳言之歟

그것을 시행함에 잘되고 잘못된 것과 좋고 나쁜 것을 자세히 말할 수 있겠는가?

我朝重士氣勵士節 培養之方 非不備矣 委靡偸惰 莫此尤甚

우리나라는 사기를 중히 여기며 선비들의 절의를 권장했으니 배양하는 방책이 갖춰지지 않음이 없었는데, 위축되고 구차하고 게으름이 이보다 심할 수가 없다.

禮義之不行 廉恥之道喪 氣節掃地 軟熟成風 士尙至此 國脈何恃

예의가 행해지지 않고 염치의 도를 상실하여 기개와 절조는 땅을 쓴 듯이 없어지고 연약한 풍속을 이루어 선비들의 숭상하는 것이 여기까지 이르니 국맥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子以沖年 嗣先人艱大之業 日夜憂懼 思得善養之策 永固邦家之基

내가 어린 나이로 선대왕의 어려운 대업을 이어서 낮이나 밤이나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사기를 잘 배양할 계책과 나라의 기반을 다질 것을 생각했다.

子大夫 皆有所養者 各悉著于篇

대부들은 모두 소양이 있으니 각자 글로써 지어보라.

臣對

신이 대답하겠습니다.

臣聞 木之立而不枯者 以其根於土也 水之流而不涸者 以其發於源也

신이 들으니 서 있는 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은 흙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요, 흐르는 물이 마르지 않는 것은 수원이 있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國家之所以治安而不危者 賴其士氣之扶持而培植之也

나라가 편안하게 다스려져서 위태롭지 않은 것은 사기를 붙들어 지키며 북돋우기 때문입니다.

苟使是氣摧挫而不養 沮抑而不作 則不危之祚未亂之邦 亡無日矣

진실로 사기가 꺾여 길러지지 않고 억제하여 진작시키지 못한다면 위태롭지 않은 왕조와 혼란스럽지 않은 나라도 며칠 안 가서 망할 것입니다.

豈啻無源之水易涸 無根之木易枯哉

어찌 수원이 없는 물만 쉽게 마르고 뿌리 없는 나무만 쉽게 시들 뿐이겠습니까?

恭惟主上殿下 當嗣服之初 赫降明命 意在乎立天下之大本 首以養士氣培國脈爲務 可謂深得致治之要矣 明見先後之序矣

삼가 생각건대 주상전하께서 보위를 계승하시던 처음에 밝은 명을 빛나게 내리시어 뜻을 천하의 대본을 세우는 데 두어, 먼저 사기를 기르고 국맥을 배양하는 것으로 힘을 쓰셨으니, 민심을 얻는 다스림을 중요시하고 선후의 순서를 분명히 보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于以充之 則爲經世之道 思過半矣

이런 것을 채워 나가면 곧 세상을 다스리는 도는 반 이상 터득하였다고 생각합니다.

臣伏讀聖策曰 士氣止詳言之歟

신이 엎드려 전하의 시책문을 읽고 사기를 상세히 말하는 데서 그친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臣聞 天地有純剛正大之氣充塞流行者 固未嘗斯須亡也 而得其靈之最者 人也 士之於人 尤拔乎其萃者也

신이 듣건대 천지에 순수하게 강직하고 바르고 큰 기운이 있어 충만하게 흘러가는 것은 모름지기 망하여 없어진 바가 일찍이 없었으며, 그 가운데 사기의 영을 얻은 자가 사람이요, 선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빼어난 사기가 모인 자입니다.

故傑立乎宇宙 磅礴乎古今 扶持綱紀 植立人命 丘民賴以不獸 天下賴以不夜

그리하여 우주 속에서 우뚝 서고 고금에 기세가 가장 성대하여 기강을 유지하고 사람이 받은 천명을 세워서 백성들이 의지해 짐승처럼 되지 않고 천하가 의지하여 어두워지지 아니합니다.

其在盛也 則邪不亂正 非不混是 小人道消 君子道長 國家基業 安如磐石 繫乎苞桑²⁾

사기가 왕성하면 곧 간사한 사람이 정직한 사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나쁜 자가 옳은 자를 혼탁하게 하지 못하며 소인의 도는 사라지고 군자의 도가 자라서 국가의 기업이 반석처럼 편안하고 뽕나무 줄기에 매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其在衰也 則天否地塞 陽明陰濁之分不別 糅朱雜紫³⁾ 薰香蕕臭之味莫辨

사기가 쇠하게 되면 천지의 운이 막혀서 밝은 양기와 흐린 음기가 분별되지 않고 주색과 자색이 뒤섞여서 향기로운 냄새와 누린 냄새의 맛을 분별할 수 없게 되어

天下靡靡然入於禽獸之域 然後國家之亂亡隨之

천하가 점점 짐승이 사는 지역으로 빠지게 되니 이러한 뒤에 국가의 난망이 따르게 됩니다.

是以 古昔帝王 莫不於是乎先之勞之 鼓舞之 振作之 彼唐虞盛世 固不可尙已

그래서 옛날의 제왕들은 이를 먼저 힘쓰고 고무시키고 진작시키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요순의 성세도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臣愚 以爲欲求士氣善養之迹 捨唐虞而何法

어리석은 신이 생각건대 사기를 잘 배양한 자취를 찾으려고 한다면 요순을 버리고 어디서 모범을 찾겠습니까?

臣請先擧堯舜之至德 雍熙之至治 然後下陳秦漢以下之事

신은 청컨대 우선 요순의 지극한 덕과 빛나게 잘 다스린 것을 들고, 그다음에 진한 이하의 일을 진술하겠습니다.

夫堯舜 人倫之亟也 天理之所在也

무릇 요순은 인륜에 있어 지극하였고, 하늘의 이치가 있습니다.

充四表而致於變 敷五敎而遜五品⁴⁾ 故四凶旣去⁵⁾ 元凱登庸⁶⁾

사방에 충만한 덕이 지극하게 변화시켜 오교를 베풀고 오품을 순화시키니 사흉이 제거되고 원개가 등용되며,

九官相讓於朝⁷⁾ 九牧相遜於外⁷⁾ 是皆所以危乎天運於不言之中 窅爾神化於不動之上 無爲而無不爲

구관은 조정에서 서로 사양하고 구목은 외방에서 서로 겸손했으니 이는 모두 말하지 않는 가운데 위태로운 천운을 움직이지 않아도 신화를 깊이 스미게 하여 하는 일이 없어도 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則其所以培養士氣者 寧借於聲色政令之間哉

그런즉 사기를 배양하는 자가 어찌 정사의 명을 빌어서 소리를 내고 얼굴빛에 나타내겠습니까?

降及秦漢 爲君者不知培養是氣 爲臣者不知扶持是氣

진나라 한나라 시대에 내려와서는 제왕이 된 자도 이 사기를 배양할 줄을 모르고 신하가 된 자도 이 사기를 붙들어 유지할 줄을 몰랐습니다.

凡所以籠駕一世者 偏伯之術而止耳 功業之計而止耳 寧論士氣之養不養哉

무릇 한 세상을 다스리는 것도 편백의 술책에 그칠 뿐이요 업적을 나타내는 일에 그칠 뿐이니 어찌 사기를 배양하고 배양하지 못한 것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彼善於此 則漢高過魯一事⁸⁾ 縞素一擧⁹⁾ 猶足以立士氣倡士義

저 사람이 이 사람보다는 낫다고 할 수는 있으니 곧 한 고조가 노나라의 땅을 지날 때 있었던 일과 상복을 입은 일은 족히 사기를 세우고 선비다운 의리를 제창했다고 할 수 있지만,

而溲溺儒冠¹⁰⁾ 未遑詩書 故士氣民俗 日以至於偸靡 是養而不能者也

유관에다 오줌을 누고 시서에는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와 민속이 날마다 경박하여졌으니 이는 배양도 못하는 자입니다.

光武尊尙儒術 風厲天下 桐江一絲¹¹⁾ 足以鼓忠義之氣 激士林之節

광무제는 유술을 높여 숭상하고 천하를 교화시켜 잘 다스렸으며 동강의 낚싯줄은 충의의 기운을 고취 시키고 사림의 절의를 격려했지만,

而終至激濁揚淸 黨錮禍起¹²⁾ 士林同坑 國家繼難 是養而反傷其脈也

끝내는 탁류가 맑은 물까지도 흐리게 하여 당고의 화가 일어나 사림이 구덩이에 묻히고 국가도 유지하기 어려웠으니 이는 사기를 배양했다기보다는 도리어 국맥을 상하게 한 것입니다.

魏晉之淸虛 隋唐之老佛 或流於無父 或入於無君 士氣之養與不養 不可議也

위진 시대의 청담과 허무를 숭상하던 일과 수당 시대의 노자와 석가의 가르침은 혹 무부무군(無父無君)의 도에 흘러 들어갔으니 사기를 기르고 기르지 못한 것을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獨宋朝 仁厚一脈 自足以培養是氣 故眞儒蔚出 繼往開來

오직 송나라 조정의 어질고 후덕한 일맥이 사기를 배양했기 때문에 참된 유학자가 배출되어 지난날 성현의 도를 잇고 미래의 학자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濂洛諸賢¹³⁾ 學究天人 誠明理徹 是所謂不待文王而興者也¹⁴⁾

염락의 여러 학자들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명을 연구하고 성과 이의 이치를 밝혔으니, 이들이 곧 문왕을 기다리지 않고 흥기한 사람들입니다.

當是時也 無道率而自率 無培養而自養 終宋之世 堂堂士氣 卓犖天壤 貞臣烈士 史不絶書

이때를 당해서 이끄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이끌고 배양하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배양 되었으니 송나라가 끝나도록 당당한 사기가 온천지에 가득하여 충신과 열사들이 역사책에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合而觀之 其培養之能不能 施措之得失美惡 昭不可掩矣

모두 종합해 보면 그 배양을 할 수 있고 없고, 시행함에 있어서의 득실과 좋고 나쁨은 분명해 숨길 수도 없습니다.

臣愚 以爲爲人上而任培養之責者 當法堯舜之無爲 而戒之以秦漢之君

어리석은 신이 생각하기를 백성의 임금이 되어 배양의 책임을 진 사람은 마땅히 요순의 무위를 법으로 하고 진한의 임금으로 경계할 것이며,

爲士而當自養之任者 宜效濂洛之諸賢 而變秦漢以下偸薄之習 則何憂乎士氣之不養 何患乎國家之不安乎

선비가 되어 마땅히 스스로 배양할 책임이 있는 사람은 마땅히 염락의 여러 현인을 본받고, 진한 이래의 투박한 풍습을 변화시킨다면 어찌 사기가 배양되지 않음을 걱정하며 국가가 불안하게 됨을 걱정하겠습니까?

伏願殿下 留意焉

삼가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臣伏讀聖策曰 我朝止國脈何恃 我國家 內立成均四學 以立首善之地 外設州縣鄕校

신이 엎드려 전하의 시책문을 읽으니 말씀하시기를 ‘우리나라의 국맥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안으로는 성균관과 사학을 세워서 천하의 모범이 되는 곳으로 만들고, 밖으로는 각 고을에 향교를 세워서,

以厲賓興之士 猶以爲未足 表忠旌孝 以樹風化 搜奸伐佞 以勸爲善 其所以培養之方 激厲之道 可謂備矣

관리로 뽑을 선비들을 가르치면서도 오히려 부족하여 정려를 세워서 충의를 기리고 교화의 풍습을 권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찾아 벌하며 선한 일을 하도록 권장하니 사기를 배양하는 방법과 격려하는 도는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奈之何士氣國尙 委靡偸惰 淊淊而不振 乃至此乎

어찌하여 나라에서 숭상하는 사기가 위축되고 구차해져서 모든 것이 진척되지 않고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까?

天理悖而禮爲箕¹⁵⁾ 人欲專而義爲土 氣節墜地 民習爲性 漸染成風 曠久因循 莫或變乎

천리가 어그러지면, 예의는 하찮은 것이 되고, 인욕에만 전념하니 의는 흙이 되어 기절이 땅에 떨어지고 백성들이 익혀 성품이 되어 점점 풍속을 물들여서 오래도록 그대로 순환하며 변함이 없어질 것입니다.

士民將何所賴 國家將何所恃 是宜軫聖上宵旰之慮 而貽朝廷大臣之憂耳

사민들은 장차 어디에 의지하며, 국가는 장차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이는 마땅히 전하께서 아침저녁으로 염려하셔야 하고 조정 대신들이 걱정해야 할 일입니다.

臣愚 以爲此固有由也

어리석은 신이 생각건대 이것은 진실로 이유가 있습니다.

雖有培養之名 而無培養之實也 何也 大學 賢士之所關風化之原 而師儒者 又導率之倡也

비록 배양한다는 명분만 있고 배양하는 실체는 없으니 어찌합니까? 태학은 현사들이 학업을 닦는 곳이요 교화의 원천이며, 선비가 스승이니 또 이끌고 인도해야 합니다.

今也 受師儒之任 負導率之責者 未必盡經明行修之人也

지금 스승의 임무를 받고 지도하는 책임을 진 사람은 대개 경전에 밝고 행실이 잘 닦아진 사람이 아닙니다.

時或塞員塡闕 當期而往 及時而退 其敎誨文字者 纔受其句讀而已 資弄其雕篆而已

때로는 혹 결원이 된 자리나 채우고, 기한을 채워 때가 되면 물러가고, 그 문자를 가르치는 것도 겨우 글 읽는 법이나 받아들이게 할 뿐이요, 문장의 문구를 다듬고 희롱할 뿐입니다.

是以 爲士者 亦且旅進而旅退 浮沈遊世 隨波逐浪 髫髮未別 已圖靑紫 冠弁纔加 擬窺卿相

이 때문에 선비라는 자들도 함께 나아가고 함께 물러나며, 세상을 떠돌며 물결 따라 살아감에 더꺼머리도 면하지 못했는데, 이미 높은 벼슬을 도모하고 관을 겨우 쓰게 되면 경상을 엿보려 합니다.

其於性理之具 爲己之學 蔑視爲何物 瞢不知爲何事 是何等士氣也

성리를 갖추거나 위기지학에 대하여는 무슨 일이냐고 멸시하며 무슨 일인 줄도 모르니 이것이 무슨 사기입니까?

間或有危言危行 循法守正者 則羣聚訾嗷 揚臂排斥者 如吾儒之辟老佛距楊墨也¹⁶⁾ 疾之如仇讎 忌之若芒刺嗚呼 致此亦有由也

간혹 말과 행동을 두려워하며 법을 따르고 바른 도리를 지키는 자를 여럿이 모여 헐뜯고 욕하며 어깨를 걷고 배척하기를 마치 우리 유자가 노자와 부처를 배척하고 양자와 묵자를 막는 것과 같이 미워하기를 원수같이 하고 싫어하기를 가시와 같이하니 이 또한 이유가 있습니다.

自士氣一折於戊午 再折於甲子 三折於己卯 而掃蕩盡矣 萎薾極矣

사기가 한 번 무오년에 꺾인 때부터 갑자년에 두 번 꺾이고 기묘년에 세 번째로 꺾여 모두 사라져 버리고 위축됨이 극에 이르렀습니다.

至今宗社之不亡而存者 幸矣 非祖宗默佑中仁二聖之持守繼述 世德世臣之左右輔翼 則殿下安得安一日於民上哉

지금까지 종사가 망하지 않고 보존된 일만도 다행한 일입니다. 조종께서 묵묵히 중종 인종 두 임금이 유지해 지키도록 도와주고 대대로 덕 있는 신하들이 좌우에서 보필하지 않았다면 전하께서 어찌 하루라도 편안히 백성 위에 계실 수 있었겠습니까?

臣愚 以爲爲學之道 嚴師爲難

어리석은 신이 생각건대 학문을 하는 도는 엄한 스승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是故 雖天子北面 而尊師所以待不臣也

이 때문에 비록 천자라도 북면을 하고 스승을 신하로 여기지 않고 높여 대우하는 까닭입니다.

以位而言 則以天子之貴 而師匹夫之賤 勢所難也 而必曰嚴師者 必如是而後 人嚴之也 人嚴其師 則師道尊矣

지위로 말하면 천자의 귀한 몸으로 천한 필부에게 스승으로 예우하는 일은 형편상 어려운 바이지만, 반드시 스승은 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반드시 이렇게 한 뒤에라야 사람들이 스승을 엄하게 여기기 때문이요 사람들이 스승을 엄히 여기면 사도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武王師尙父於踐祚之初 成王師周公於嗣服之始 故武王成王之德 如彼其卓卓 尙父周公之變化殷俗 如彼其易也

주 무왕은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상보(강태공)를 스승으로 했고, 성왕은 왕위를 계승하면서부터 주공을 스승으로 했기 때문에 무왕과 성왕의 덕이 저와 같이 높았고, 상보와 주공이 은나라의 풍속을 변화시키는 것이 저와같이 쉬웠습니다.

孔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我國雖小 肯與比乎十室之邑也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십여 호쯤 되는 작은 고을에도 반드시 나처럼 진실하고 믿음직한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으니, 우리나라가 비록 작으나 어찌 십여 호쯤 되는 작은 고을에 비할 수 있습니까?

殿下苟能先得如尙父周公之賢聖 而友之師之 日與處 夜與居 朝講暮習 又得如濂洛之諸儒 以列於大學之長 其次其副 雖未盡得其大賢 而求得其賢於士之賢者 管帶其職 不拘循資 不程時月

전하께서 진실로 먼저 상보나 주공 같은 성현을 얻어서 그를 벗이나 스승으로 삼고, 밤낮으로 함께 거처하면서 아침저녁으로 강습하고, 또 염락의 유학자 같은 사람을 얻어 태학의 장(長)으로 두고 그 아랫사람은 비록 모두 대현을 얻지 못하더라도 선비들 가운데 다른 사람보다 어진 자를 얻어서 그 직책을 갖게 하고 품계에 구애하지 말며 기한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始敎之以灑掃應對之節¹⁷⁾ 終收之以格致誠正之功¹⁸⁾ 繼之以悠久之勇 守之以不奪之智 則朝廷自正而四方正矣 四方正而萬民正矣

그리하여 처음에는 쇄소응대의 예절부터 가르치고 끝에는 격치성정의 공에 이르게 하여 유구한 용기를 잇도록 하고, 학문의 지혜를 뺏기지 않고 지키게 하면 조정이 스스로 바르게 되고 사방이 바르게 되며, 사방이 바르게 되면 만민이 바르게 될 것입니다.

夫如是 則士氣不期養而自養 國勢不期盛而自盛矣

무릇 이같이 하면 사기가 배양됨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절로 배양되고, 국세가 성대하기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절로 성대해질 것입니다.

其餘委靡偸情之習 何足掛念於齒牙哉

그리되면 나머지 위축되고 구차한 관습은 어찌 입으로 염려하겠습니까?

洪範曰¹⁹⁾ 皇建其有極 又曰 會其有極 歸其有極

홍범에 이르기를 ‘임금은 극진한 덕의 표준을 세우라’고 했고, 또 이르기를, ‘극진한 표준이 있는 곳으로 모이고, 극진한 표준이 있는 곳으로 인심이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乃曰 上有建極之君 則下有歸極之民也 願殿下 先建其極

다시 말하면 위에 덕의 표준이 되는 임금이 있으면 그 아래에는 덕의 표준이 되는 곳으로 돌아가는 백성이 있는 것이니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극진한 덕의 표준을 세우소서.

孟子曰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上之風 必偃 又曰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願殿下 先謹之以好

맹자가 이르기를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으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풀이 쓰러진다.’고 했고, 또 이르기를 ‘위에서 좋아하는 자가 있으면 아래에서는 더 심하게 좋아하는 자 있다.’고 했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먼저 삼가 사기를 배양하기를 좋아하고 숭상하소서.

尙臣伏讀聖策曰 予以沖年 止悉著于篇

신은 엎드려 시책문에 이르신 ‘내가 어린 나이로 선인의 어려운 왕업을 이었다는 곳으로부터 글로써 써 보라’는 곳까지 읽고 말씀드립니다.

臣 山海一介之士耳 學不至於正己 智不用於時務 其於善養之策 何敢僣議

신은 시골의 한갓 선비입니다. 배움이 몸을 바르게 하는 데도 이르지 못하고, 지혜가 시무를 해결하는 데도 쓰이지 못하니 사기를 배양하는 계책에 어찌 감히 찬양하고 의논드릴 수 있겠습니까?

然賈誼慟哭於漢朝²⁰⁾ 劉蕡直言於唐廷²¹⁾ 臣之精誠 雖下於二子 而願忠之志 殆有過焉

그러나 가의가 한 나라 조정에서 통곡했고 유분은 당나라 조정에서 직간했으니, 신의 정성이 비록 두 사람만은 못 하지만 충성을 원하는 뜻은 오히려 더합니다.

願殿下 上法乎堯舜之無爲 下戒乎秦漢之偸靡 崇師儒而重道 謹好尙而率民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위로 요순의 하는 일이 없어도 되는 것을 본받고 아래로 진한시대의 경박하고 사치함을 경계하여 스승을 높이고 유도를 중히 여기며 삼가 유술을 숭상하여 백성을 인도하소서.

明以誠之 歸小德於大德 則將見家伊周而戶程朱 士氣盛而國脈固矣

밝은 정성으로 소덕이 대덕으로 돌아가게 하면 장차 집집마다 이윤 주공 같은 사람이 나고, 정자 주자 같은 사람이 나는 것을 보고 사기가 성해지고 국맥이 굳건하게 될 것입니다.

詩曰 愷悌君子 遐不作人 作人之妙 實在於君

시경에 이르기를‘덕이 있는 군자여, 어찌 사람을 잘 쓰지 않는가.’ 했으니, 사람을 쓰는 묘책은 실제로 임금에게 있습니다.

伏願殿下 懋哉懋哉

엎드려 원하옵건대 힘쓰고 힘쓰소서.

 

※전책(殿策)¹⁾ : 과거시험 과목의 하나로, 임금이 직접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물으면 그에 대한 대책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苞桑(포상)²⁾ : 뽕나무는 뿌리가 단단하여 잘 뽑히지 않는다. 따라서 이렇게 단단한 곳에 어떤 물건을 매어 두면 아무리 폭풍이 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위태하지 않다는 말이다.

※朱紫(주자)³⁾ : 주는 정색(正色)으로 정(正)을, 자는 간색(間色)으로 사(邪)를 표현한다. 따라서 정(正)과 사(邪)가 뒤섞였다는 의미이다. 맹자(孟子)는 진심 하(盡心下)에 ‘자가 주를 혼동시키는 것을 미워한다.’ 하였으니 다.

※五敎(오교) 五品(오품)⁴⁾ : 오륜(五倫)을 이르는 말. 오륜(五倫)의 등급, 곧 오륜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四凶(사흉)⁵⁾ : 제순(帝舜) 시절의 흉악한 네 사람. 순(舜)과 같은 어진 인물도 이들을 추방했다. 곧 공공(共工) 환두(驩兜) 삼묘(三苗) 곤(鯤)을 말한다.

※元凱(원개)⁶⁾ : 팔원(八元)과 팔개八(凱)를 말한다. 팔원은 고신씨(高辛氏)의 아들 팔 형제를 말하고, 팔개는 고양씨(高陽氏)의 아들 팔 형제를 말하는데, 이들은 모두 재주가 많았다고 한다.

※九官(구관) 九牧(구목)⁷⁾ : 구관(九官)은 제순(帝舜)이 임명한 아홉 명의 대신을 말하고, 구목(九牧)은 구주(州)의 장(長)을 말한다.

※漢高過魯一事(한고과노일사)⁸⁾ : 한고조(高祖)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노(魯)나라의 땅을 지나면서 공자의 사당에 대뢰(大牢)로 제사를 지낸 일을 말한다.

※縞素一擧(호소일거)⁹⁾ : 항우(項羽)가 초회왕(楚懷王)을 강남에 내쫓아 죽이자 한고조가 상복(喪服)을 입어준 일을 말한다.

※溲溺儒冠(수뇨유관)¹⁰: 한고조(漢高祖)의 장수 역이기(酈食其)란 사람이 고조의 부하 기사(騎士)에게 청탁해 고조를 만나려 하니, 기사의 말이 ‘패공(沛公)은 유술(儒術)을 좋아하지 않아 유관(儒冠)을 쓴 사람이 찾아오면 갓을 벗겨 그 속에 오줌을 눈다.’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桐江一絲(동강일사)¹¹⁾ : 동강은 한(漢)나라 광무제(武帝)의 젊었을 때 친구인 엄광(嚴光)이 낚시를 하던 곳이다. 엄광은 광무제가 황제가 되자 불러 벼슬을 준다고 했으나, 나아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 밭을 갈고 동강에서 낚시를 하며 숨어 살았다.

※黨錮禍起(당고화기)¹²⁾ : 후한(後漢) 말기 영제(靈帝) 때 진번(陳蕃) 이응(李膺) 등이 환관들의 전횡을 막고자 모의하다가 누설되어 백여 명이 살해된 사건.

※濂洛諸賢(염락제현)¹³⁾ : 송대(宋代) 성리학(性理學)의 주요 학파인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와 낙양(洛陽)의 정호(程顥) 정이(程頤)를 말한다.

※不待文王而興者(부대문왕이흥자)¹⁴⁾ : 맹자(孟子) 진심(盡心)에 나오는 말로, 평범한 사람들은 문왕과 같은 훌륭한 통치자가 나와야 교화에 힘입어 선행을 하려고 분발하지만, 뛰어난 선비는 훌륭한 통치자가 나오지 않더라도 분발해 세상을 교화시키는 일을 한다는 말이다.

※爲箕(위기)¹⁵⁾ : 키를 만든다는 의미.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훌륭한 궁인(弓人)의 아들은 반드시 키 만드는 법부터 배운다. 〔良弓之子 必學爲箕〕’ 한 데서 온 말로 하찮은 것이란 의미이다.

※楊墨(양묵)¹⁶⁾ : 전국시대 사상가인 양자(楊子)와 묵자(墨子)를 말한다.

※灑掃應對(쇄소응대)¹⁷⁾ : 물을 뿌려 쓸고 응대한다는 뜻으로, 집 안팎을 깨끗이 거두고 웃어른의 부름이나 물음에 응하여 상대함을 이르는 말.

※格致誠正(격치성정)¹⁸⁾ : 증자(曾子)가 지었다는 대학(大學)의 팔조목(八條目) 가운데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盛意) 정심(正心)을 말한다.

※洪範(홍범)¹⁹⁾ : 우(禹)임금이 요순(堯舜) 이래의 사상을 정리해 집성한 법전. 정치 도덕의 기본 법칙이다.

※賈誼(가의)²⁰⁾ : 중국 한대(漢代) 정치개혁의 제창자이자 시인. 총명하여 나이 20세에 박사(博士)가 되었다. 양회왕(梁懷王)의 태부(太傅)로 있을 때 상소를 올려 통곡하고 탄식할 만한 일을 지적한 것은 유명하다.

※劉蕡(유분)²¹⁾ : 당(唐)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 과거시험에서 환관(宦官)의 폐해로 종묘사직이 위급하다고 직필하여 시험관들이 충심에 탄복하면서도 환관의 후환이 두려워 벼슬을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