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李仲和挹淸亭 (이중화읍청정) - 許筠 (허균)

-수헌- 2023. 9. 1. 11:37

李仲和挹淸亭 四時呼韻    이중화읍청정 사시호운       許筠   허균  

이중화의 읍청정에서  사계절의 운을 부르다

 

春 춘

燕飛芳榭落花香 연비방사락화향

제비 나는 정자의 지는 꽃이 향기로워

閑脫紗巾晝夢長 한탈사건주몽장

사건 벗고 한가로이 길게 낮 꿈을 꾸네

蝶粉未滋收頰暈 접분미자수협훈

나비분이 불지 않아 볼연지도 지워지고

鵝黃初褪拭宮粧 아황초퇴식궁장

아황주에 궁녀의 화장이 닦여지는구나

溪生錦浪侵蘭艇 계생금랑침란정

시내에 비단 물결 일어 난정을 침노하고

簾繞爐煙鎖竹床 염요로연쇄죽상

죽상을 두른 주렴이 화로 연기 가두었네

九十日春都是夢 구십일춘도시몽

구십 일 봄날은 모두가 꿈이어서

更將詩酒答年光 경장시주답년광

다시금 시와 술로 연광에 답하네

 

夏 하

小池晴漲碧荷香 소지청창벽하향

맑은 못물 넘실대고 푸른 연 향기로운데

綿羽調笙趁日長 면우조생진일장

생황을 불며 면우를 쫓으니 날이 길구나

修竹帶煙呈粉籜 수죽대연정분탁

안개를 두른 긴 대는 분탁을 드러내고

石榴含露妬紅粧 석류함로투홍장

이슬 머금은 석류는 붉은 단장 시샘하네

齊紈却暑搖羅幕 제환각서요라막

더위 물리치는 부채는 비단 장막 흔들고

湘簟迎寒透象床 상점영한투상상

대자리와 상아평상을 통하여 한기를 맞네

溪上會拚河朔飮 계상회변하삭음

시냇가에 모여 앉아 하삭음을 즐기자니

鄴園沈李倍輝光 업원침리배휘광

업원의 침리가 갑절로 빛이 나는구나

 

秋 추

千頃排雲稻正香 천경배운도정향

천 이랑에 구름처럼 늘어선 벼가 향기롭고

石稜湍減岸沙長 석릉단감안사장

바위 모서리에 물은 줄고 언덕모래 길구나

黃花已作三秋意 황화이작삼추의

누런 국화는 이미 가을의 정취를 이루었고

錦葉渾成百寶粧 금엽혼성백보장

단풍잎은 뒤섞여 온갖 보배로 단장하였네

閑引芳樽傾黍釀 한인방준경서양

한가로이 술독을 당겨 기장 술을 기울이고

更呼華月照藜床 경호화월조려상

다시금 고운 달을 불러 여상을 비추게 하네

一年佳興西成後 일년가흥서성후

한해의 좋은 흥취는 가을 뒤에 일어나는데

歎老何須惜暮光 탄로하수석모광

어찌 늙음을 한탄하여 저무는 빛을 아낄까

 

冬 동

羔酒初溫斗帳香 고주초온두장향

고주가 따뜻해져서 두장에 향기 풍기고

燭花垂壁淚偏長 촉화수벽루편장

벽에 걸린 촛불의 촛농이 길어지는구나

寒豪檜頂瓊瓊屑 한호회정경경설

강추위에 회나무 위엔 눈가루가 덮이고

凍合梅眉落粉粧 동합매미락분장

얼어붙은 매화꽃은 분단장에 빠졌구나

瓦釜引泉煎豆粥 와부인천전두죽

옹기솥에 샘물 길러 팥죽을 끓이면서

地爐添火暖匡床 지로첨화난광상

구들에 불을 지펴 광상을 덥히는구나

紬衾不用藏婆鐵 주금불용장파철

명주 이불에 감춰둔 파철을 쓸 일 없네

左挾朝雲右孟光 좌협조운우맹광

좌우에 조운과 맹광을 끼고 있으니

 

※鵝黃(아황) : 아황주(鵝黃酒). 아황은 거위새끼를 말하는데 거위새끼의 색이 노랗기 때문에 노랗게 잘 익은 술을 아황주라 한다.

 

※年光(연광) : 변하는 사철의 경치.

 

※粉籜(분탁) : 죽순(竹筍)의 껍질에 생기는 흰 가루를 말한다.

 

※齊紈(제환) : 제환(齊紈)은 원래 제나라에서 생산되는 비단이라는 뜻이나 보통 둥근 부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河朔飮(하삭음) : 무더운 여름철에 피서(避暑)하는 술자리를 뜻하는 말. 후한(後漢) 말에 광록대부 유송(劉松)이 하삭(河朔)으로 원소(袁紹)의 군대를 위무하러 가서 원소의 자제들과 삼복더위에 술자리를 벌여 즐긴 고사에서 온 말이다.

 

※沈李(침리) : 부과침리(浮瓜沈李)에서 온 말로 여름철의 우아한 노님을 말한다. 위 문제(魏文帝)가 오질(吳質)에게 준 글에서 ‘단 오이를 맑은 샘에 띄우고 붉은 오얏을 찬물에 담근다.〔浮甘瓜於淸泉, 沈朱李於寒水.〕’라는 구절에서 유래한다.

 

※藜床(여상) : 명아주를 엮어 만든 상탑(牀榻)으로 보통 간소한 좌탑(坐榻)을 말한다.

 

※羔酒(고주) : 고주(羔酒)는 고아주(羔兒酒)를 말하는데, 고아주(羔兒酒)는 송나라 때 새끼 양을 잡아 고아서 만든 물로 빚은 술 이름으로 흔히 양고주(羊羔酒)라 부른다. 사람을 살찌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처방으로 쓰였다. 송나라의 학자 송기(宋祈)가 눈 오는 밤에 기생에게 종이를 들게 하고 당서(唐書)의 초고(草稿)를 쓰면서, 전날 당 태위(唐太衛)의 집에 있었던 기생에게 ‘네가 당 태위 집에 있을 때도 이런 풍치가 있었느냐’ 하니 기생이 '당 태위는 무인이므로 이런 운치는 모르고 눈 오는 날 소금장(銷金帳) 아래서 고아주(羔兒酒)를 마시며 노래를 즐기는 취미는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斗帳(두장) : 작은 휘장. 말[斗]을 덮을 정도로 작다 하여 이렇게 일컫는다. 신불을 안치한 감(龕) 등의 앞에 걸어놓은 장막을 일컫기도 한다.

 

※左挾朝雲右孟光(좌협조운우맹광) : 조운(朝雲)은 후위(後魏) 때 하간왕(河間王)의 기녀 이름인데, 그녀는 매우 총민하여 가무에 능하였고, 맹광은 후한(後漢) 때 양홍(梁鴻)의 아내로서 얼굴은 추했으나 부덕이 훌륭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