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次臨風樓紀四時 (차임풍루기사시) - 黃俊良 (황준량)

-수헌- 2023. 9. 6. 22:40

次臨風樓紀四時   차임풍루기사시      黃俊良   황준량 

임풍루에서 사시를 기술한 시에 차운하다

 

陽和一點自東來 양화일점자동래

한 점 화창한 봄기운이 동쪽으로부터 와서

登眺風欄亦快哉 등조풍란역쾌재

바람 부는 난간에 올라 보니 매우 상쾌하네

少女花張紅錦障 소녀화장홍금장

소녀는 꽃을 붉은 비단 장막처럼 벌려놓고

王孫草織碧雲堆 왕손초직벽운퇴

왕손초는 엮여 구름처럼 높이 푸르게 쌓였네

綺羅勝事移金谷 기라승사이금곡

비단처럼 좋은 경치는 금곡원을 옮긴 듯하고

賓主吟懷壓玉臺 빈주음회압옥대

손과 주인이 회포를 읊으니 옥대를 압도하네

誰識遨頭憂處樂 수식오두우처악

태수도 근심 속에서 즐겼음을 누가 알겠는가

芳辰聊復倒霞杯 방진료부도하배

꽃피는 계절 지는 노을에 다시 술잔 즐기네

 

懶吟佳句破神慳 나음가구파신간

신이 숨긴 비경을 좋은 구절로 게을리 읊으며

晩倚疏櫺永日閒 만의소령영일한

저물녘에 트인 창에 기대니 긴 날이 한가롭네

襟受涼颸來北陸 금수량시래북륙

옷깃은 북륙에서 오는 시원한 바람 받아들이고

簾通爽氣近西山 염통상기근서산

주렴을 통해 부근 서산의 상쾌한 바람이 드네

赤瑛盤薦氷桃爛 적영반천빙도란

붉은 옥쟁반으로 무르익은 복숭아를 올리고

紫玉簫攢淚竹斑 자옥소찬루죽반

누죽반을 뚫어서 자옥소를 만들어 불었네

彈送飛鴻塵事少 탄송비홍진사소

연주하며 기러기 보낼 일 속세에는 드무니

不須麾客閉淸關 불수휘객폐청관

모름지기 청관을 닫고 나그네 부르지 말게

 

凄凄霜露泬寥天 처처상로혈요천

차가운 서리가 텅 빈 하늘에서 뿜어 나오고

四野黃雲喜有生 사야황운희유생

사방 들판의 황금물결에 즐거움이 생겨나네

錦樹金英明客眼 금수금영명객안

노랗게 물든 숲은 나그네의 눈을 밝게 하고

銀絲玉膾薦賓筵 은사옥회천빈연

은실 같은 좋은 회는 손님 연회에 올랐네

倻岑木落呈眞面 야잠목락정진면

낙엽 진 가야산 봉우리 진면목이 드러나고

洛水波寒捲綠煙 낙수파한권록연

푸른 안개가 걷힌 낙동강은 물결이 차구나

對月酣觴騷興動 대월감상소흥동

달을 마주하고 술 마시니 시흥이 일어나니

風流遠勝竹林賢 풍류원승죽림현

풍류는 먼 옛날의 죽림칠현보다 낫구나

 

歸藏底處見玄功 귀장저처견현공

깊은 곳에 숨어 돌아가 큰 공력을 나타내어

剗地氷霜凍太空 잔지빙상동태공

얼음 서리가 땅을 깎고 하늘을 차갑게 하네

雪後光輝添霽月 설후광휘첨제월

눈 온 뒤의 밝은 빛은 개인 달빛에 더하고

梅邊消息動香風 매변소식동향풍

매화 주변 봄소식은 향기로운 바람 일으키네

騎驢不用吟橋上 기려불용음교상

나귀 타고 다리 위에서 시를 읊을 필요 없고

放棹何須入剡中 방도하수입섬중

어찌 노를 저어 꼭 섬중에 들어가야만 할까

凝對玉峯寒次骨 응대옥봉한차골

옥봉 마주하고 엉긴 추위가 뼛속에 이어지니

煖斟羔酒與君同 난짐고주여군동

따뜻한 양고기와 술을 그대와 함께 마시리라

 

※臨風樓(임풍루) : 경북 성주(星州) 객관(客館) 북쪽에 있는 누각.

 

※金谷(금곡) : 진(晉) 나라 석숭(石崇)의 별장이 있는 금곡원(金谷園)을 가리키는데, 석숭은 이곳에서 빈객을 모아 시부(詩賦)를 짓고 술을 마시며 놀았다 한다.

 

※遨頭(오두) : 고을 수령을 말한다. 송(宋) 나라 때 두자미(杜子美)의 초당(草堂) 안의 창랑정(滄浪亭)에서 태수(太守)가 놀며 잔치를 벌였는데, 이때 온 고을 사람들이 나와서 보면서 태수를 놀이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오두(遨頭)라고 하였다 한다.

 

※紫玉簫(자옥소) : 자죽(紫竹)으로 만든 퉁소를 말한다. 예전에는 자죽(紫竹)을 베어 퉁소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퉁소의 대명사가 되었다.

 

※淚竹斑(루죽반) : 소상반죽(瀟湘斑竹)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좋은 대나무를 말한다. 소상반죽(瀟湘斑竹)은 순 임금의 서거 소식을 들은 두 비(妃)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상수(湘水) 가에서 서로 붙들고 슬피 울다가 강에 몸을 던져 순임금의 뒤를 따랐다. 이때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 강가의 대나무에 뿌렸는데 그것은 피눈물이 되어 대나무 마디마디에 얼룩이 지더니 그때부터 상포(湘浦)의 대는 모두 얼룩대가 되었다고 하며, 소상반죽(瀟湘斑竹)이라 하여 최고급의 대로 친다.

 

※彈送飛鴻塵事少(탄송비홍진사소) : 송비홍(送飛鴻)은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낸다는 뜻인데, 위진시대(魏晉時代)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인 혜강(嵇康)의 시에 ‘눈으로는 돌아가는 기러기를 전송하고 손으로는 오현금을 탄다. [目送歸鴻 手揮五絃]’라는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귀홍(歸鴻) 또는 귀안(歸雁)은 시문(詩文)에서 대개 귀향(歸鄕)의 뜻으로 쓰인다.

 

※騎驢不用吟橋上(기려불용음교상) : 당(唐) 나라 때 재상(宰相) 정계(鄭綮)는 시(詩)를 잘 지었는데, 어떤 사람이 정계에게 ‘상국(相國)은 요즘에 새로운 시를 짓는가?’라고 묻자, 정계(鄭綮)가 시흥(詩興)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바람 불고 눈 오는 날 나귀를 타고 패교 위를 거닐 때에 [詩思在灞橋風雪中驢子上] 일어난다’고 한 고사에서 인용한 말이다.

 

※放棹何須入剡中(방도하수입섬중) : 섬중(剡中)은 절강성(浙江省) 회계현(會稽縣)의 산음(山陰) 땅이다. 그곳에 대안도(戴安道)라는 선비가 살았는데, 진(晉) 나라 때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휘지(王徽之)가 눈이 내리는 밤 흥에 겨워 친구인 대안도(戴安道)가 생각나서 눈을 맞아 가며 배를 저어 찾아갔다가 그의 문전에서 다시 되돌아왔는데, 그 이유를 묻자 ‘흥이 일어 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가는 것이다. [乘興而行 興盡而返]’고 하였다 한다.

 

*황준량(黃俊良,1517~1563) : 조선전기 신녕현감, 단양군수, 성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중거(仲擧), 호는 금계(錦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