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和佔畢齋田隱四時韻 (화점필재전은사시운) - 閔遇洙 (민우수)

-수헌- 2023. 8. 17. 16:32

和佔畢齋田隱四時韻   화점필재전은사시운     閔遇洙   민우수  

점필재의 전은사시에 화운하다

 

谷風日日融餘雪 곡풍일일융여설

골바람이 날마다 불어 남은 눈을 녹이니

野燒放綠新春節 야소방록신춘절

푸른 풀 돋고 들이 불타듯 한 새 봄일세

向陽花木總麤俗 향양화목총추속

볕을 향한 꽃과 나무 모두 속되고 거친데

獨有瓊枝韻超絶 독유경지운초절

오직 매화 가지만이 운치가 빼어나구나

 

其二 두 번째

處士孤山不出家 처사고산불출가

처사는 고산에서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愛看籬落枝橫斜 애간리락지횡사

울타리에 늘어진 가지만 즐겨 바라보네

問君何事立如癡 문군하사립여치

그대 무슨 일로 바보처럼 섰는지 물으니

爲齅檀心香不邪 위후단심향불사

붉은 꽃의 좋은 향을 맡기 위해서라네

 

<唐人梅詩曰 醉齅立如癡 당인매시왈 취후립여치

당나라 시인이 쓴 매화 시에 ‘향에 취해 바보처럼 서 있네. [醉齅立如癡]’라고 하였다. >

 

<右 梅坡春色 우 매파춘색

이상은 매화 언덕의 봄기운이다.>

 

其三 세 번째

赤日當天烈如燬 적일당천렬여훼

붉은 해가 세차게 불타듯 하늘에 떴어도

山人肝膈淸如水 산인간격청여수

산속 은자의 가슴속은 맑기가 물과 같네

有時髮根凉飈入 유시발근량표입

때로는 머리카락에 시원한 바람 불어오니

滿庭蒼玉長孫子 만정창옥장손자

뜰에 가득 푸른 대나무에 손자가 자라네

 

其四 네 번째

此君節操誰更當 차군절조수경당

차군의 절조를 누가 다시 비길 수 있을까

主人北窓卧羲皇 주인북창와희황

주인은 북창아래 희황상인처럼 누워있네

世間喜得知心友 세간희득지심우

기쁘게도 세간에서 지기를 얻었기에

盡日相看倚胡床 진일상간의호상

호상에 기대앉아 종일토록 바라보네

 

<右 竹窓夏風 우 죽창하풍

이상은 대나무 창에 부는 여름 바람이다.>

 

其五 다섯 번째

碧天萬里纖翳滅 벽천만리섬예멸

만 리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으니

皛皛金波滿庭月 효효금파만정월

맑은 금빛 달빛이 온 뜰에 가득하구나

下堂緩踏黃花影 하당완답황화영

마루 아래 국화 그림자 천천히 밟으니

露浥衣巾香透骨 노읍의건향투골

이슬이 의건 적시고 향이 뼈에 스미네

 

其六 여섯 번째

皓月寒英一秋光 호월한영일추광

밝은 달과 싸늘한 꽃이 모두 가을빛이니

淸泠夜氣超凡常 청령야기초범상

맑고 서늘한 밤기운이 평소를 뛰어넘네

好是忘言自認得 호시망언자인득

얻었음을 알고 나면 말은 잊는 게 옳은데

何必裁詩滿錦囊 하필재시만금낭

어찌 반드시 시를 지어서 금낭을 채우리

 

<右 菊庭秋月 우 국정추월

이상은 국화 핀 정원의 가을 달빛이다.>

 

其七 일곱 번째

雪霜貿貿群陰閉 설상무무군음폐

흩날리는 눈서리가 천지를 음기로 덮으니

蕭森落木歸根柢 소삼락목귀근저

스산한 나뭇잎도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네

驗得隆冬後凋節 험득륭동후조절

한겨울에야 늦게 시드는 절조를 알게 되니

挺然不受北風厲 정연불수북풍려

빼어남이 북풍의 괴롭힘도 받지 않는구나

 

其八 여덟 번째

巽二滕六紛合離 손이등륙분합리

바람과 눈이 어지럽게 휘몰아치는데도

蒼髯更帶瓊瑤姿 창염경대경요자

푸른 솔은 다시 옥 같은 자태 지녔네

掬取輕明瀹山茗 국취경명약산명

맑은 눈 한 움큼으로 산 차를 끓이니

如飮沆瀣淸心脾 여음항해청심비

밤이슬 마신 듯이 심신이 깨끗해지네

 

<右 松臺冬雪 우 송대동설

이상은 송대 겨울의 눈이다.>

 

※處士(처사) : 송나라 때의 처사 임포(林逋)를 가리킨다. 그는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세상에 나가지 않은 채 매화를 가꾸고 학을 기르면서 독신으로 살았다 한다.

 

※肝膈(간격) : 가슴속의 간(肝)이라는 의미로 속마음이나 마음속을 의미한다.

 

※蒼玉長孫子(창옥장손자) : 창옥(蒼玉)은 푸른 옥이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깨끗하고 푸른 대나무를 의미한다. 손자(孫子)는 손자는 대나무 마디에 생겨나는 새 가지를 말한다. 송(宋) 나라 시인 범성대(范成大)의 시에 ‘마름은 여전히 수척한데, 대나무 손자는 얼마나 자랐는가? [菱母尙能瘦, 竹孫如許長]’라는 구절이 있다.

 

※此君(차군) : 이 사람이라는 뜻이나, 대[竹]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왕휘지(王徽之)가 대나무를 무척 좋아하여 ‘하루도 차군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何可一日無此君.]’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羲皇(희황) : 희황상인(羲皇上人). 복희씨 이전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세상일을 잊고 한가하고 편안히 숨어 사는 사람을 이르는 말. 도연명(陶淵明)의 시에 “오뉴월에 북창 아래 누워서 시원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희황상인’이라 이른다. [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纖翳(섬예) : 아주 작은 티끌이나 장애물을 의미하는데 문학적으로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의 뜻으로 쓰인다.

 

※忘言自認得(망언자인득) : 장자, 외물 편(莊子, 外物篇)에 나오는 득의이망언(得意而忘言)에서 온 말로 뜻을 얻고 나면 그것을 설명했던 말은 필요가 없어 잊게 된다는 뜻이다.

 

※後凋節(후조절) : 공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이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巽二滕六(손이등륙) : 손이(巽二)는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고 등육(滕六)은 눈을 관장하는 신이다.

 

*민우수(閔遇洙, 1694~1756) : 조선후기 성균관좨주, 세자찬선, 원손보양관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자는 사원(士元), 호는 정암(貞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