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田家四時 (전가사시) - 金克己 (김극기)

-수헌- 2023. 8. 28. 17:43

田家四時   전가사시      金克己   김극기  

 

歲月風轉燭 세월풍전촉

세월은 바람에 펄럭이는 촛불 같아

田家苦知促 전가고지촉

농가는 바쁠 것을 알고 애쓰는구나

索綯如隔晨 색도여격신

지붕 덮을 새끼 꼰 게 어제 같은데

春事起耕耨 춘사기경누

밭 갈고 김을 매며 봄 일 시작하네

負耒歸東阜 부뢰귀동부

쟁기를 짊어지고 동 쪽 들로 나가니

林間路詰曲 림간로힐곡

숲 사이로 난 길이 구불구불하구나

野鳥記農候 야조기농후

들새들이 농사철을 기억하고 있어서

飛鳴催播穀 비명최파곡

날면서 울어 씨 뿌리기를 재촉하네

饁婦繞田頭 엽부요전두

밭머리에 아낙네가 들밥을 내오는데

芒鞋才受足 망혜재수족

짚신은 낡아서 겨우 발에 걸렸구나

稚子尋筍蕨 치자심순궐

어린아이는 죽순과 고사리를 찾아서

提筐向暄谷 제광향훤곡

바구니 들고 따뜻한 골짜기로 가네

遲日杏花紅 지일행화홍

해는 길어지고 살구꽃 붉게 피었고

暖風舊葉綠 난풍구엽록

따뜻한 바람 불어와 잎들도 푸르네

甘雨亦如期 감우역여기

단비도 또한 때를 맞추어 내려서

夜來勻霡霂 야래균맥목

밤이 오면 가랑비가 두루 적시겠지

莫辭東作勤 막사동작근

봄 농사일 힘들다고 말하지 마시게

勞力在吾力 노력재오력

힘써 일하기는 오직 내 힘에 달렸네

 

彤雲射晶光 동운사정광

붉은 구름에 밝은 빛이 비치고

赤日淹晷度 적일엄귀도

붉은 태양의 그림자가 길어졌네

田居近南訛 전거근남와

전원생활에 남와가 가까이 오니

榾榾無曉暮 골골무효모

일하는데 새벽 밤이 따로 없구나

農夫爭荷鋤 농부쟁하서

농부들은 다투어서 호미를 메고

徧野已雲布 편야이운포

들판에 이미 구름처럼 깔렸구나

唯有看屋翁 유유간옥옹

오직 집 지키고 있는 늙은이는

頂絲白於鷺 정사백어로

머리털이 백로보다 더 희구나

客來方進饌 객래방진찬

손님이 오니 음식을 내어 오는데

窮不待珍貝 궁불대진패

궁하여 맛난 음식 바랄 수 없으나

野果與園蔬 야과여원소

들판의 과일들과 밭의 푸성귀들은

皆由親種樹 개유친종수

모두 친히 씨 뿌리고 가꾼 것이네

客去收殘尊 객거수잔존

손님이 떠나고 남은 상을 거둘 때

嬌兒帶老姥 교아대로모

할머니는 예쁜 아이를 업고 있구나

器聲逐晩風 기성축만풍

그릇 소리는 저녁 바람을 타고서

吹落西家去 취락서가거

불어와 이웃집까지 가서 들려오니

隣翁念餘瀝 린옹념여력

이웃 늙은이는 남은 술이 생각나서

一徑穿夕霧 일경천석무

저녁 안개 뚫고 오솔길을 오는구나

 

鴻雁已肅肅 홍안이숙숙

어느새 기러기는 훨훨 날아오고

蟪蛄仍啾啾 혜고잉추추

귀뚜라미 처량하게 울어대는구나

田夫知時節 전부지시절

농부는 시절이 되었음을 잘 알고

銍艾始報秋 질애시보추

곡식을 거둬들여 가을에 보답하네

四隣動寒杵 사린동한저

사방에서 처량하게 절구질을 하니

通夕聲未休 통석성미휴

저녁 내내 절구 소리 그치지 않네

晨興炊玊粒 신흥취숙립

새벽에 일어나 입쌀로 밥 지으니

溢甑氣浮浮 일증기부부

시루에 김이 넘쳐 피어오르는구나

紫栗落紅樹 자률락홍수

단풍사이로 자줏빛 밤이 떨어지고

朱鱗鉤碧流 주린구벽류

푸른 물에서 붉은 물고기를 낚네

白瓶酌杜酒 백병작두주

흰 항아리에 담근 두주를 따라서

邀客更相酬 요객경상수

손님을 맞아서 서로 주고받으니

外貌雖陋促 외모수루촉

겉모습은 비록 추하고 군색하지만

中情尙綢繆 중정상주무

마음속의 정은 오히려 꼼꼼하구나

酒闌起相送 주란기상송

술이 다해 일어나 전송하려 하니

顔色還百憂 안색환백우

얼굴빛에 온갖 근심이 돌아오네

官租急星火 관조급성화

관청의 세금 독촉이 성화같으니

聚室須預謀 취실수예모

집 안에 모여서 미리 의논하네

苟可趁公費 구가진공비

진실로 공납은 바치는 게 옳으니

私廬安肯留 사려안긍류

어찌 사삿집에 남겨 둘 수 있을까

何時得卓魯 하시득탁로

어느 때에나 탁무나 노공을 만나서

却作差科頭 각작차과두

오히려 가장 먼저 세금을 바쳐볼까

 

竹徑趁溪開 죽경진계개

대숲 길은 시냇물 따라 열려 있고

茅廬依崦結 모려의엄결

초가집은 언덕을 의지해 서 있네

窮冬墐北戶 궁동근북호

한겨울 북쪽 창을 흙으로 막는 건

意欲防風雪 의욕방풍설 .

바람과 눈을 막으려는 뜻이라네

尙能知傲寒 상능지오한

그래도 추위를 겁내지 않았기에

鷹犬出遊獵 응견출유렵

매와 개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네

馳騁狐兔場 치빙호토장

여우 토끼 쫓아 사냥터를 달리다

短衣涴流血 단의완류혈

짧은 옷에 피가 흘러 묻었구나

還家四隣喜 환가사린희

집으로 돌아오니 온 이웃이 기뻐하며

促坐爭哺啜 촉좌쟁포철

모여 앉아 다투듯이 나누어 먹었네

茹毛何足怪 여모하족괴

날고기를 먹는다고 무엇이 이상하랴

居處壯巢穴 거처장소혈

거처하고 있는 곳이 소굴과 같은데

晶熒枯枿火 정형고얼화

마른 그루터기에다 불을 붙여 밝히니

滿室互明滅 만실호명멸

온 방안이 밝았다 어두웠다 하는구나

兩股亂赬豆 양고란정두

다리 사이 널린 붉은 팥이 어지러우니

襟裾從破裂 금거종파렬

마음이 옷자락처럼 찢어지는구나

布衾擁衆兒 포금옹중아

베 이불 덮고 아이들 안고 누우니

窮若將雛鴨 궁약장추압

궁하기는 새끼 낀 오리와 같구나

竟夜眼不得 경야안부득

밤이 다하도록 눈을 붙이지 못하고

農談逮明發 농담체명발

농사 이야기에 날이 밝아 오는구나

 

※索綯(색도) : 새끼를 꼬아 지붕을 올린다는 뜻.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 편(七月篇)에 ‘낮에는 띠풀을 베고 밤에는 새끼를 꼬아서 서둘러 지붕을 올려야 비로소 백곡을 파종하네. [晝爾于茅 宵爾索綯 亟其乘屋 其始播百穀]’에서 온 말로 겨울을 잘 보내고 봄을 대비한다는 의미이다.

 

※南訛(남와) : 염제(炎帝)에 속한 여름철 담당 불의 신으로 경작(耕作) 또는 권농(勸農)의 일을 맡는다.

 

※銍艾(질애) : 질(銍)과 애(艾)는 모두 벼를 베는 짧은 낫이나 풀 등을 베는 농기구의 의미와 ‘베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곡식을 거두어들인다는 의미이다.

 

※杜酒(두주) : 자기 집에서 빚은 박주(薄酒).

 

※綢繆(주무) : 빈틈없이 자세하고 꼼꼼하게 미리 준비함.

 

※卓魯(탁노) : 한(漢)의 순리(循吏)인 탁무(卓茂)와 노공(魯恭). 탁무(卓茂)는 후한 때 밀현(密縣)의 현령으로 공정한 정사를 펼쳤으며, 노공(魯恭)은 후한 때 중모현령(中牟縣令)이었는데, 덕화로 다스려 해충마저 중모현中牟縣)에는 침범하지 않았다 한다.

 

※茹毛(여모) : 여모의피(茹毛衣皮)에서 온 말로, 짐승의 고기를 날것으로 먹는다는 뜻. 여모의피(茹毛衣皮)는 짐승의 고기를 날것으로 먹고 털가죽으로 옷을 해 입는다는 뜻으로, 예전의 미개한 생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김극기(金克己, 1150경~1204경): 고려 명종 때의 시인. 호는 노봉(老峰). 농민반란이 계속 일어나던 시대에 핍박받던 농민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노래한 농민시(農民詩)의 개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