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砧村四時 (침촌사시) - 李稷 (이직)

-수헌- 2023. 6. 24. 20:34

砧村四時   침촌사시      李稷 이직 

침촌의 사계절

 

春 봄

靑帝司元化 청제사원화

봄의 신령이 천지의 조화를 맡아서

和風有大功 화풍유대공

따뜻한 바람으로 큰 공을 이루었네

草抽新葉綠 초추신엽록

풀들은 새잎이 푸르게 돋아 나오고

花綻舊枝紅 화탄구지홍

꽃봉오리는 옛 가지에 붉게 터지네

燕雀營巢急 연작영소급

제비 참새들은 집을 짓느라 바쁘고

菑畬俶載同 치여숙재동

묵은 밭과 새 밭을 함께 경작하네

物皆欣得所 물개흔득소

만물이 모두 제자리를 얻어 기쁜데

長嘯任途窮 장소임도궁

맡은 길이 막혀 길게 한숨만 짓네

 

夏 여름

小樓雖僻陋 소루수벽루

작은 누대가 비록 궁벽한 곳이지만

亦足避炎蒸 역족피염증

무더위를 피하기는 오히려 족하구나

風至竹聲爽 풍지죽성상

바람 불어오니 대숲 소리 상쾌하고

月明松影澄 월명송영징

밝은 달빛에 솔 그림자 맑기도 하네

才疏違聖代 재소위성대

재주 모자라 태평성세에 맞지 않고

計拙少親朋 계졸소친붕

계책도 서툴러서 친한 벗도 없구나

時祭儀多缺 시제의다결

사귈 때도 예의에 부족함이 많으면

誰憐舊伐氷 수련구벌빙

그 누가 옛 명문가를 불쌍히 여길까

 

秋 가을

不眠坐長夜 불면좌장야

긴 밤을 잠 못 이루고 앉아 있으니

金氣透衣輕 금기투의경

가을 공기가 얇은 옷에 스며드네

照壁蟾蜍影 조벽섬서영

달그림자가 울타리를 비추어 주고

緣階蟋蟀聲 연계실솔성

섬돌 가장자리엔 귀뚜라미가 우네

雲飛天宇淨 운비천우정

하늘을 날아가는 구름도 깨끗하고

露冷蕙香淸 노냉혜향청

이슬은 차고 혜초 향기는 맑구나

老我何思慮 노아하사려

늙어가는 내가 무엇을 근심할까

唯應順利貞 유응순리정

오직 순리대로 곧은 것을 따르리

 

冬 겨울

萬彙俱衰息 만휘구쇠식

만물이 모두 쇠하여 쉬고 있으니

無非返本根 무비반본근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은 게 없네

不愁身漸老 불수신점로

점점 늙어 가는 몸을 근심치 않고

唯欲道終聞 유욕도종문

오직 도를 이루어 깨닫고자 하네

傅楫川氷合 부즙천빙합

부열의 노도 시내가 얼어 버렸고

袁門朔雪繁 원문삭설번

원안의 집에는 눈만 쌓여 있구나

遙憐古賢哲 요련고현철

옛날의 성현들을 어여삐 여기시니

畎畝未忘君 견무미망군

초야에서도 임금을 잊지 않았네

 

※砧村(침촌) : 침촌(砧村)은 형재(亨齋) 이직(李稷)의 고향인 경북 성주의 침곡(砧谷) 마을을 말한다. 한 때 형재(亨齋) 이직(李稷)이 귀양살이를 한 곳이기도 하다.

 

※伐氷(벌빙) : 벌빙지가(伐氷之家)에서 온 말로, 옛날 얼음을 캐서 재어놓은 집을 말하나 전하여 아주 세력이 높은 명문가를 말한다.

 

※蟾蜍(섬서) : 섬서(蟾蜍;두꺼비)는 달을 의미한다. 옛날 예(羿)가 서왕모에게서 불사약(不死藥)을 얻어 오자, 예의 처인 항아가 이를 훔쳐 먹고 달 속의 광한전으로 들어가서 몸을 숨겨 두꺼비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傅楫川氷合(부즙천빙합) : 傅楫(부즙)은 은(殷) 나라 때의 명재상 부열(傅說)의 노[楫]라는 뜻이다. 은(殷) 나라의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얻고는 ‘내가 큰 시내를 건넌다면 너를 배의 노로 삼겠다. [若濟巨川 用汝 作舟楫]’라고 하며 기뻐했다고 한다. <書經 說命上> 여기에서는 부열(傅說)의 노[楫]도 내[川]가 얼어붙어 소용없다는 뜻이니, 부열 같은 명재상이 쓰이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袁門朔雪繁(원문삭설번) : 원(袁)은 한(漢) 나라 때 현사(賢士) 원안(安袁)을 말한다. 낙양(洛陽)에 큰 눈이 내려 모두 눈을 쓸고 나와서 먹을 것을 구하러 돌아다니는데, 유독 원안의 집 앞에만 눈이 쌓여 있었다. 현령이 원안이 죽은 줄 알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원안이 누워 있었다. 현령이 원안에게 어찌 나와서 먹을 것을 구하지 않느냐고 묻자, 원안은 ‘큰 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고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였다. 이에 현령은 원안을 어진 사람이라고 여겨 효렴(孝廉)으로 천거하였다. 〈후한서(後漢書) 원안전(袁安傳)〉 이 구절은 원안처럼 어진이가 아직 등용되지 못함을 비판한 말이다.

 

*이직(李稷,1362~1431) : 조선전기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우정(虞庭), 호는 형재(亨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