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無名子(尹愭)의 記故事

淸明日復以長律記故事 (청명일부이장률기고사) - 尹愭 (윤기)

-수헌- 2023. 3. 30. 15:48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는 앞서 소개한 청명기고사(淸明記故事)를 53세에 지었으나, 시기가 겹치는 청명과 한식의 유래를 같이 적었는데, 이 시는 일 년 뒤인 54세 때 청명절(淸明節)의 고사(故事)에 대해 따로 지어 청명의 유래를 밝히고 세시풍속을 소개하였다. 청명에 대한 고사와 옛 시인의 시를 다수 인용하다 보니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용된 원 시의 내용도 함께 이해해야 가능할 것 같다.

 

淸明日復以長律記故事 청명일부이장률기고사      尹愭 윤기 

청명일에 다시 고사를 장률로 적었다.

 

桐始華時萍始生 동시화시평시생

오동 꽃이 피어나니 부평초도 생겨나고

暮春令節是淸明 모춘령절시청명

늦은 봄의 아름다운 절기 청명이로구나

梅花風後楝花又¹ 매화풍후련화우

매화풍이 불고 난 뒤 또 연화풍이 불고

烜氏禁餘爟氏更² 훤씨금여관씨경

사훤씨 금한 불을 사관씨가 다시 피웠네

燕語鳥啼村樹老 연어조제촌수로

마을의 늙은 나무에 제비와 산새가 울고

春光湖色客船橫³ 춘광호색객선횡

봄빛과 호수 빛 속을 객선이 가로지르네

時當改火天機斡 시당개화천기알

천기가 돌아서 불을 바꿀 때가 되어서

節過藏煙物色淸 절과장연물색청

명절 지나니 연기 간직한 물색도 맑구나

紫陌紅塵嘶叱撥⁴⁾ 자맥홍진시질발

도성 길 먼지 속에 말이 시끄럽게 울고

綠楊深院聽黃鸎 록양심원청황앵

버들 짙푸른 정원엔 꾀꼬리 소리 들리네

順陽唐宋頒楡柳⁵⁾ 순양당송반유류

당송 때는 양기를 좇아 유류화를 배포하니

感物歐蘇詠粥餳⁶⁾ 감물구소영죽당

구양수와 소식은 감동하여 죽당을 읊었네

崔護奇緣題句續⁷⁾ 최호기연제구속

최호는 기이한 인연을 시로 이어 지었고

楊生樂事祭祠行⁸⁾ 양생악사제사행

양생은 사당에 제사 지내는 일을 즐겼네

闘雞堪笑明皇癖⁹⁾ 투계감소명황벽

투계를 좋아했던 당명황의 버릇이 우습고

憶友空留鄭谷情¹⁰⁾ 억우공류정곡정

벗을 그리는 정곡의 마음 부질없이 남았네

新火新茶成雅會 신화신다성아회

좋은 모임 이루어져 새 불로 햇 차 달이니

芳花芳草滿春城 방화방초만춘성

향기로운 꽃과 풀이 봄 성안에 가득하구나

石泉證夢寥師送¹¹ 석천증몽요사송

참료를 보내서 석천의 꿈을 증명하였고

白打分錢上相迎¹² 백타분전상상영

백타전은 재상이 맞이하여 나눠 주었네

一樹來禽頗作意 일수래금파작의

나무에 앉은 새들 뜻한 바를 이루었지만

千家雲騎盡揚聲 천가운기진양성

집집마다 많은 말들 소리만 날릴 뿐이네

海棠枝下黃昏怯¹³ 해당지하황혼겁

해당화 가지 아래서 날 저물까 걱정하고

翰苑燭來異數驚¹⁴⁾ 한원촉래이수경

한원에 등촉이 오니 특히 여러 번 놀랐네

臥草王公風管度 ¹⁵⁾ 와초왕공풍관도

풀밭에 누운 왕공에 바람이 피리소리 내고

分燈魏野曉窓晴¹⁶⁾ 분등위야효창청

위야가 등불 나눠오니 새벽 창이 밝아오네

人生幾看東欄雪 인생기간동란설

인생에 봄 난간의 눈을 몇 번이나 보랴만

今古難忘後世名 금고난망후세명

예나 지금이나 후세에 남길 이름 잊기 어렵네

畫閣秋千垂柳影 화각추천수류영

화려한 누각 버들 그늘에 그네를 드리우고

孤舟風雨暮潮鳴¹⁷⁾ 고주풍우모조명

외딴 배엔 비바람 치고 저녁 밀물소리 울리네

衝花繡羽思騎竹¹⁸⁾ 충화수우사기죽

고운 나비 꽃 찾을 때 죽마 타던 시절 생각나서

飛絮靑帘促倒觥¹⁹⁾ 비서청렴촉도굉

버들 솜 날리는 주막에서 급하게 술잔 기울였지

白鳥窺魚資趣適²⁰⁾ 백조규어자취적

흰 물새는 자질과 취향에 맞춰 물고기를 엿보고

老翁携稚樂升平 로옹휴치악승평

늙은이는 어린아이 손잡고 태평시절을 즐기네

芳辰惆悵臨風處²¹ 방진추창림풍처

좋은 시절에 바람맞는 곳에 있음이 서글퍼서

羡彼閑閑十畝耕 이피한한십무경

한가로이 밭에서 농사짓는 저 이가 부러워지네

 

註)

※梅花風,楝花風(매화풍,연화풍)¹ : 소한(小寒)부터 곡우(穀雨) 사이에 분다는 24번 화신풍(花信風) 중의 하나. 매화풍은 소한시기에 맨 처음 부는 화신풍이고, 연화풍은 곡우시기에 부는 마지막 화신풍으로 이후로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온다고 한다.

 

※烜氏,爟氏(훤씨,관씨)² : 사훤(司烜)과 사관(司爟)을 말하며 둘 다 옛날 불을 다스리는 관직이다. 사훤은 중춘(中春)에 목탁으로 나라 안에 불을 금(禁)하는 정령(政令)을 내고, 사관은 청명(淸明)에 느릅나무와 버드나무로 불을 일으켜서 근신(近臣)과 척리(戚里) 등에게 청명화(淸明火)를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春光湖色客船橫(춘광호색객선횡)³ : 두보의 시 청명 2수(淸明 二首)에 ‘아침에 새 불씨 받아 새 연기 피어오르고, 봄 풍광 호수 물빛에 객선이 산뜻하네. [朝來新火起新煙 湖色春光淨客船]’라고 한 것을 원용하였다.

 

※紫陌紅塵嘶叱撥(자맥홍진시질발)⁴⁾ : 자맥(紫陌)은 도회지 주변의 도로라는 뜻으로 번잡한 속세를 말하며, 질발(叱撥)은 홍질발(紅叱撥)로 명마(名馬)의 이름이다. 당 나라 때의 시인 위장(韋莊)의 시 장안청명에 ‘도성의 길에는 홍질발이 시끄럽게 울고.[紫陌亂嘶紅叱撥]’라는 구절이 나온다.

 

※楡柳(유류)⁵⁾ : 유류화(楡柳火). 당나라 궁중에서는 청명일에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서 불씨를 얻어 근신(近臣)에게 하사하였는데, 이를 유류화라 한다.

 

※感物歐蘇詠粥餳(감물구소영죽당)⁶⁾ : 歐는 송나라 시인 구양수(歐陽脩), 蘇는 소식(蘇軾)을 말한다. 구양수의 시 청명사신화(清明賜新火)에 ‘병 깊으니 당락 죽 차가운 게 시름겹고, 맑은 향기 나는 새 촛불 연기 사랑스럽네.〔多病正愁餳粥冷 淸香但愛蠟煙新〕’라는 구절이 있고, 또 소식의 시에 “불은 식어 묽은 당락과 뻑뻑한 살구 죽을 푸른 치마 흰 소매 차림으로 밭가에서 먹네.〔火冷餳稀杏粥稠 青裙縞袂餉田頭〕‘라는 구절이 있다. 당락은 조청의 일종이다.

 

※崔護(최호)⁷⁾ : 최호는 당나라 박릉(博陵) 사람인데, 청명일에 성남(城南)으로 혼자 놀러 갔다가 목이 말라 어느 촌가에서 아름다운 여인에게 물을 얻어먹었다. 다음 해 청명 날에 다시 찾아가니 문이 잠겨 있어 ‘지난해 오늘 이 문 안에는, 사람 얼굴과 복숭아꽃이 서로 비춰 붉었는데, 사람은 간 곳 알 수 없고, 복숭아꽃만 예전처럼 동풍에 웃고 있네. [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東風]’라는 시를 써서 대문에 붙였다. 이후로 남녀가 정을 나누고 헤어진 뒤 옛일을 추념하는 뜻의 인면도화(人面桃花)란 단어가 생겼다고 한다.

 

※楊生(양생)⁸⁾ : 양생은 당나라의 시인 양거원(楊巨源)이다. 그의 시 ‘청명일 후토사에서 전철을 보내다〔淸明日后土祠送田徹〕’에 ‘좋은 절기에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불을 붙이고, 오동나무에는 오늘 꽃이 피었네. 제사 지내러 가느라 아름다운 말 멍에 묶고, 교외에 놀이 가느라 수레에 향기 품었네. [楡柳芳辰火 梧桐今日花 祭祠結雲綺 遊陌擁香車]라는 구절이 있다.

 

※당명황(唐明皇)⁹⁾ : 당나라의 6대 황제인 현종(玄宗)의 별칭이다. 옛날에는 청명절에 투계(鬪鷄)를 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당 명황(唐明皇)이 청명절 투계를 좋아하여 즉위한 뒤에 좋은 수탉 천여 마리를 계방(鷄坊)에서 길렀다 한다.

 

※鄭谷(정곡)¹⁰⁾ : 당 나라 때의 시인. 그의 시 여행 중 시골집에 묵다 [旅寓村舍]에 ‘촌락에 청명절 다가오니, 그네에 계집아이 타고 있네. 흐린 봄날 버들 솜 날리고, 어두운 밤에 배꽃이 보이네. 흰 새는 어망을 엿보고, 푸른 깃발 걸려 술집인 줄 알겠네. 은거한 삶이 스스로에 맞다 해도, 사귀는 벗은 화려한 서울에 있네. [村落清明近 秋千稚女誇 春陰方柳絮 月黑見梨花 白鳥窺魚網 青帘認酒家 幽棲雖自適 交友在京華]’라고 하였다.

 

※石泉證夢寥師送(석천증몽요사송)¹¹ : 소식(蘇軾)이 황주 태수(黄州太守)로 있을 때 꿈속에서 서불사(西佛寺)의 선승 참료(參寥)를 만나 시를 주고받았는데, 깨고 나자 ‘한식과 청명 모두 지나니, 석천과 홰나무 불씨 일시에 새롭네 [寒食淸明都過了 石泉槐火一時新]’라는 두 구절만 기억났다. 7년 뒤 소식이 항주 태수를 지낼 때 참료가 지과사(智果寺)에 머물렀는데, 한식 다음날 소식이 찾아오니 그곳에 바위가 갈리진 틈으로 솟아나는 돌샘[石泉]이 있었다. 이 석천수를 길어 차를 달이니, 이전에 꿈속에서 읊었던 시구(詩句)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白打錢(백타전)¹² : 백타(白打)는 옛날 청명절의 풍속인 제기차기 놀이릏 말하며, 백타전(白打錢)은 제기차기 놀이에서 이긴 사람에게 상으로 내리는 돈을 말한다. 당나라 시인 위장(韋莊)의 시 장안청명(長安淸明)에 ‘내궁에서 처음으로 청명화를 내리고, 상상은 한가로이 백타전을 나누어 주네. [内宮初賜清明火 上相閒分白打錢]’라는 구절이 있다.

 

※海棠枝下黃昏怯(해당지하황혼겁)¹³ : 송나라 왕안석의 시 금중춘한(禁中春寒)에 ‘이미 홑옷으로 바꿔 입었는데 불을 금하니, 해당화 아래에서 날 저물까 걱정이네. [已著單衣猶禁火 海棠花下怯黄昏]’라고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翰苑(한원)¹⁴⁾ : 예전에 한림원이나 예문관을 예스럽게 이르던 말.

 

※臥草王公風管度(와초왕공풍관도)¹⁵⁾ : 왕안석의 시 청명(清明)에 ‘사람과 긴 술병이 방초에 누웠는데, 바람은 피리소리 내며 푸른 가지 사이로 부네. [人與長缾臥芳草 風將急管度青枝]’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다.

 

※分燈魏野曉窓晴(분등위야효창청)¹⁶⁾ : 북송의 시인 위야(魏野)의 시 청명(淸明)에 ‘어제 이웃 노인에게 새 불 빌려다가, 새벽 창가에 나누어 독서 등을 밝히노라. [昨日隣翁乞新火 曉窓分與讀書燈]’라고 한 데서 인용하였다.

 

※孤舟風雨暮潮鳴(고주풍우모조명)¹⁷⁾ : 소식의 시 회중만박독두(淮中晩泊犢頭)에 ‘저물녘 옛 사당 아래 외로운 배 정박하니, 강 가득 비바람 쳐 조수가 일어나네. [晩泊孤舟古祠下 滿川風雨看潮生]’라고 한 것을 인용한 표현이다.

 

※衝花繡羽(충화수우)¹⁸⁾ : 날개가 아름다운 새 또는 나비가 꽃 사이를 누빈다는 뜻인데, 두보의 시 청명 2수에 ‘꽃을 탐하는 저 고운 새는 즐겁기만 한데, 나는 죽마 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구나. [繡羽衝花他自得 紅顔騎竹我無緣]’라고 하였다.

 

※飛絮靑帘促倒觥(비서청렴촉도굉)¹⁹⁾ : 앞의 주 ¹⁰⁾번 정곡의 시 여우촌사(旅寓村舍)에서 인용하였다.

 

※白鳥窺魚資趣適(백조규어자취적)²⁰⁾ : 역시 앞의 정곡의 시 여우촌사(旅寓村舍)의 백조규어망(白鳥窺魚網)에서 인용하였다.

 

※芳辰(방진)²¹ : 좋은 시절, 흔히 봄날을 말하며 꽃이 활짝 피는 음력 3월을 뜻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