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田家雜謠 (전가잡요) - 鄭宗魯 (정종로)

-수헌- 2023. 3. 15. 11:50


田家雜謠  전가잡요      鄭宗魯  정종로    

東風正月凍猶堅  동풍정월동유견
정월은 동풍 불어도 여전히 단단히 얼어서  
寂寂三鄰總似眠  적적삼린총사면
온 이웃이 모두 잠든 것처럼 적적하구나 
北里上農耕獨早  북리상농경독조
북쪽 마을 상농은 홀로 일찍 밭을 갈려고   
健牛先試向陽田  건우선시향양전
튼튼한 소 몰고 볕드는 밭에 먼저 가 보네 

忽聞布穀舍南啼  홀문포곡사남제
갑자기 남쪽에서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듣고  
忙擲腰間半織鞋  망척요간반직혜
반쯤 짜던 허리춤의 짚신을 급히 내던지네 
二月春耕時已晏  이월춘경시이안
이월은 봄밭 갈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으니  
叱牛催向水西堤  질우최향수서제
소를 꾸짖어 재촉하여 물 서쪽 둑을 향하네 

三月平田翠麥齊  삼월평전취맥제
삼월 들판의 밭엔 푸른 보리 가지런한데  
就中開畝細行犂  취중개무세행리
가운데 이랑을 타서 세세하게 밭을 가네 
色色播耰宜土種  색색파우의토종
토양에 맞는 갖가지 씨를 뿌려 흙을 덮고  
隨成隨穫約箕妻  수성수확약기처
자라는 대로 거두겠노라 아내와 약속하네   

打麥仍賖酒數甁  타맥잉사주수병
보리타작하고 나서 외상 술 몇 병 사 와서   
槐陰環坐語村丁  괴음환좌어촌정
장정들 홰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하는 말이 
且須及此登場飮  차수급차등장음
마땅히 타작마당에서 술 마셔야 하겠지만   
明日輸官未必贏  명일수관미필영
내일 관에 보내면 반드시 남은 게 없으리 

鋤來長畝共齊頭  서래장무공제두
긴 이랑에 머리 나란히 함께 김매러 와서  
手勢高低不暫休  수세고저불잠휴
높고 낮은 손놀림을 잠시도 쉬지 않네
且向目前思盡草  차향목전사진초
또 눈앞의 잡초 모두 없앨 생각하느라   
一心無暇念登秋  일심무가념등추
가을 풍년을 생각할 마음의 겨를도 없네   

野翁耘罷饁田頭  야옹운파엽전두
농부가 김 다 매고 밭 근처서 들밥 먹으며   
亭午槐陰共坐休  정오괴음공좌휴
한낮에 홰나무 그늘에서 함께 앉아서 쉬네  
每日飽湌徵租遠  매일포찬징조원
날마다 배불리 먹고 세금 거두는 날은 머니  
自言逢夏勝逢秋  자언봉하승봉추
여름살이가 가을살이보다 낫다고들 말하네  

田頭掬水洗鉏頭  전두국수세서두
밭머리에서 물을 움켜서 호미 머리 씻으니 
六月耘功得早休  유월운공득조휴
유월의 김매는 일을 일찍 마칠 수 있구나  
人力但敎農力盡  인력단교농력진
인력은 다만 농사에 힘 다하게 할 뿐이고  
任他時序自成秋  임타시서자성추
절로 자라고 익는 것은 때와 절서에 맡겼네 

綠秧畦畔麥田頭  록앙휴반맥전두
모가 푸른 논두렁과 보리밭 머리에서 
日午村翁共坐休  일오촌옹공좌휴
한낮 마을 노인들 함께 앉아 쉬는구나   
年事一場閒占罷  년사일장한점파
한가히 한바탕 농사일 점치고 난 뒤에
笑言豐儉判中秋  소언풍검판중추
흉풍은 중추에 판가름 난다 웃으며 말하네  

西郊秋色一時黃  서교추색일시황
서쪽 교외 가을빛이 일시에 누렇게 되니  
催喚鄰翁早滌場  최환린옹조척장
이웃 노인이 불러 빨리 추수하라 재촉하네  
小雨前宵來甲子  소우전소래갑자
갑자일인 지난밤에 가랑비 조금 내렸으니 
穀如生角奈飢腸  곡여생각내기장
벼에 싹이 나서 배를 굶주리면 어찌하나 

刈來新稻雜靑黃  예래신도잡청황
새로 베어 온 벼가 푸른고 누런 것이 섞여서   
土銼艱蒸又曬場  토좌간증우쇄장
흙 가마에 찌기 어려워 다시 햇볕에다 말리네 
催飯丈人休叱婦  최반장인휴질부
어른에게 서둘러 밥 드리라 아내 꾸짖지 마오  
與君同是苦飢腸  여군동시고기장
그대와 마찬가지로 배가 고파 괴로울 테니 

稻似金丹粒粒黃  도사금단립립황
벼는 알알이 황금빛으로 마치 금단 같으니
喚兒攜帚細收場  환아휴추세수장
아이 불러 수곡장을 꼼꼼히 비로 쓸라하네  
丁寧莫遣山禽啄  정녕막견산금탁
정녕코 산새들이 쪼아 먹게 하진 말아야지   
未必山禽入餓腸  미필산금입아장
산새가 꼭 굶주린 배에 들어오지는 않으니  

編茅覆屋怕風飄  편모복옥파풍표
바람에 날릴까 두려워 띠를 엮어 지붕을 덮고  
綯索重重十字交  도색중중십자교
새끼 꼬아 열십자로 겹겹이 교차시켜 묶었네  
却有老烏探鷇巧  각유로오탐구교
문득 늙은 까마귀가 교묘히 찾아 새끼 먹이려고 
啄成千孔不曾饒  탁성천공불증요
천 구멍 쪼아 만들고도 일찍이 배부른 적 없네 

負薪穿雪汗霑腮  부신천설한점시 
뺨에 땀이 흥건하게 땔나무 지고 눈길 뚫고서  
去賣何村得米迴  거매하촌득미회
어느 마을에 가서 팔아서 쌀을 구해 돌아올까  
向夕不炊甘自餓  향석불취감자아
저녁때 밥 못해 굶주려도 스스로 달게 여김은  
明朝擬薦歲時盃  명조의천세시배
다음 날 아침에 세시 술잔을 올리려 해서였네  

※三鄰(삼린) : 한 마을의 이웃을 의미한다. 백호집에 의하면 여덟 가구가 린이 되고, 삼 린이 붕이 되고, 삼 붕이 리가 되고, 오 리가 읍이 된다고 하였다. [八家爲隣, 三隣爲朋, 三朋爲里, 五里爲邑]

※上農(상농) : 농사를 대규모로 짓는 농부 또는 농가. 농사를 잘 짓는 농부.

※滌場(척장) : 타작마당을 치운다는 뜻으로 추수를 마침을 의미한다. 시경(詩經) 칠월(七月)에 ‘9월에 된서리 내리고 10월에 타작마당 치우네. [九月肅霜, 十月滌場.]’라는 구절이 있다.

※小雨前宵來甲子(소우전소래갑자) : 조선 숙종 때 홍만선(洪萬選)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입추 후의 첫 번째 갑자일[秋上甲]에 비가 오면 벼이삭에서 싹이 난다. [秋上甲雨, 禾頭生角.]’라고 하였다. 이는 초가을에 비가 오면 벼에 싹이 나서 흉년이 든다는 말이다.

※金丹(금단) : 신선이 만든다는 장생불사의 환약.

*정종로(鄭宗魯,1738~1816) : 조선후기 입재집 소대명신언행록 등을 저술한 학자. 자는 사앙(士仰), 호는 입재(立齋) 무적옹(無適翁).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성리학 연구와 강학 저술에 전념하였으며,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