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山居四時 (산거사시) - 徐居正 (서거정)

-수헌- 2023. 3. 23. 15:57

山居四時 산거사시      徐居正 서거정 

 

用諸賢韻 書貴公子精舍 五首 용제현운 서귀공자정사 오수

여러 현인들의 운을 사용하여 지어서 귀공자의 정사에 쓰다. 5수

 

天低尺五有靑山 천저척오유청산

하늘아래 가까운 곳에 푸른 산이 있으니

山與桃源伯仲間 산여도원백중간

산이 무릉도원과 더불어 백중의 형세구나

泉石何年初卜地 천석하년초복지

어느 해에 산수 좋은 곳에 처음 터 잡으니

風雲多暇便開顔 풍운다가편개안

풍운처럼 여가가 많아 편안하게 웃음짓네

落花流水心先到 낙화류수심선도

꽃 떨어져 흐르는 물에 맘이 먼저 이르고

疊嶂輕霞夢自關 첩장경하몽자관

가벼운 놀 꿈꾸며 겹 봉우리 스스로 닫네

好是籃輿日來往 호시람여일래왕

남여 타고 날마다 내왕하니 정말 좋아서

詩成取次破天慳 시성취차파천간

하늘의 신비를 파헤치니 시가 이루어지네

 

※尺五(척오) : 한자 다섯 치라는 뜻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를 말한다. 또 대궐(大闕)과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는 의미로 왕의 친척이나 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가 어울리는 듯하다.

※泉石(천석) : 물과 돌이 어우러진 자연의 경치.

 

 

兩山靑送繞閑扉 양산청송요한비

두 산의 푸른빛은 한가한 사립문을 감싸고

石徑蒼苔車馬稀 석경창태차마희

거마도 드문 자갈길엔 푸른 이끼가 끼었네

小雨絲絲靑筍長 소우사사청순장

부슬부슬 내린 가랑비에 푸른 죽순 자라고

光風泛泛紫蘭猗 광풍범범자란의

따사로운 바람 가득하니 난초도 아름답네

錦鳩深樹花初遍 금구심수화초편

비둘기 우는 깊은 숲엔 꽃이 피기 시작하고

晴燕池塘絮又飛 청연지당서우비

제비 나는 못 둑에는 버들개지도 나는구나

靜裏有時尋藥圃 정리유시심약포

고요함 속에 때때로 약초밭을 찾기도 하고

園中滿意種仙芝 원중만의종선지

정원 안에는 선경의 영초도 마음껏 심었네

 

 

芙蓉積翠冪濛籠 부용적취멱몽롱

푸른빛이 쌓여서 연꽃을 희미하게 덮였으니

人在蓬瀛第幾重 인재봉영제기중

사람은 삼신산 몇째 봉우리에 있는 것일까

簾幕暑催梅子雨 렴막서최매자우

주렴밖엔 더위를 재촉하는 매자우가 내리고

衣巾香濕藕花風 의건향습우화풍

연꽃 바람이 불어와 의관에 향기가 스미네

供吟階竹檀欒碧 공음계죽단란벽

단란하고 푸른 뜨락의 대를 공손히 읊으니

照眼山榴自在紅 조안산류자재홍

산의 석류는 저절로 붉어져서 눈에 비치네

翫世何曾管簪紱 완세하증관잠불

어찌 일찍이 벼슬을 하며 세상을 즐겼으니

北窓高枕鬢醒鬆 북창고침빈성송

북창에 베개 높이 베니 귀밑털이 선선하네

 

※蓬瀛(봉영) : 蓬莱(봉래)와 瀛州(영주). 선경(仙境)을 이름. 중국 전설에서 방장산(方丈山)과 더불어 삼신산으로 불린다.

※梅子雨(매자우) : 매실(梅實)이 익어 갈 무렵인 음력 4월경에 내리는 비를 말함.

※檀欒(단란) : 단란(檀欒)은 보기 좋은 모양을 말하는 것으로, 대나무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모양을 형용한 말이다.

※簪紱(잠불) : 벼슬아치가 쓰는 관(冠)에 꽂는 비녀와 인끈. 전하여 고위 관리, 또는 벼슬아치를 이르는 말.

※北窓高枕(북창고침) : 진나라 때의 도잠(陶潛)이 어느 여름날에 청풍이 불어오는 북쪽 창 아래에 누워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스스로 희황(羲皇) 이전 시대 사람으로 여겨진다고 했던 데서 온 말로 한가로이 지냄을 말한다.

 

 

梧桐老雨覺秋深 오동로우각추심

오동 고목에 비 내려 깊은 가을을 깨닫고

攪起登山臨水心 교기등산림수심

산수 찾아가고 싶은 마음 절로 일어나네

鱠下宮盤南澗玉 회하궁반남간옥

궁반에 담겨 나온 회는 남쪽시내 귀물이요

香分客袖洞庭金 향분객수동정금

나그네 소매 속의 동정금은 향기를 나누네

黃花雅興風吹帽 황화아흥풍취모

국화에 고아한 흥취 일고 모자에 바람 불고

歸雁高情月滿琴 귀안고정월만금

귀안의 높은 뜻에 거문고에 달빛 가득하네

渺我從來多野興 묘아종래다야흥

못난 나는 전부터 촌스런 흥취가 많았으니

芒鞋布襪擬相尋 망혜포말의상심

짚신에 베 버선 신고 찾는 흉내 내고 싶네

 

※洞庭金(동정금) : 동정산(洞庭山)에서 나는 황금색 감귤(柑橘)을 의미한다.

※黃花雅興風吹帽(황화아흥풍취모) : 황화(黃花)는 국화(菊花)를 말하며, 풍취모(風吹帽)는 맹가낙모(孟嘉落帽)의 고사를 말한다. 진(晉) 나라 때 맹가(孟嘉)가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으로 있을 때, 한번은 중양일(重陽日)에 환온이 용산(龍山)에서 연회(宴會)를 베풀어 막료(幕僚)들이 다 모여서 술을 마시며 한창 즐겁게 놀았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서 맹가의 모자가 날아갔으나 맹가는 그것도 알지 못한 채 풍류(風流)를 한껏 발휘했던 고사를 말한다.

※歸雁高情月滿琴(귀안고정월만금) : 귀안은 가을에 남으로 날아오는 기러기를 말하며, 가을 달빛 아래 기러기 소리 들으며 거문고를 타는 정경을 표현하였다.

※芒鞋布襪(망혜포말) : 두보(杜甫)의 시에, ‘약야계여, 운문사여. 나만 홀로 어이해 속세에 묻혀 있나, 짚신과 베 버선 차림이 이제부터 시작일세.〔若耶溪 雲門寺 吾獨胡爲在泥滓 靑鞋布襪從此始〕’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산수(山水) 속에서 유유자적함을 의미한다.

 

 

松窓終日遠潮喧 송창종일원조훤

송창에서 온 종일 멀리 조수 소리 들으며

只喚梅花作比鄰 지환매화작비린

오로지 매화를 불러서 이웃과 견주어 보네

淰淰山雲寒欲凍 심심산운한욕동

산의 어지러운 구름은 차갑게 얼려고 해도

溫溫燈火盎如春 온온등화앙여춘

등불의 따스한 온기가 봄날처럼 가득하네

氷泉鑿落迷銀界 빙천착락미은계

얼음 뚫고 떨어진 샘물은 은계를 미혹하고

雪樹槎牙糝玉塵 설수사아삼옥진

눈 덮인 나무에는 옥 먼지가 얽히고설켰네

坐穩團蒲燒榾柮 좌온단포소골돌

단포에 편안히 앉아 등걸불 지피고 있으면

安心是藥足頤神 안심시약족이신

안심이 곧 약이라 심신 수양이 넉넉하겠네

 

※槎牙(사아) : 나무의 벤 자리에서 나오는 싹. 가지가 얽히고설킨 모양.

※團蒲(단포) : 부들로 짠 방석을 말한다. 출가한 수행자들이 참선할 때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 좌구(坐具)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安心是藥(안심시약) : 소식(蘇軾)의 시 병중유조탑원(病中遊祖塔院)에, ‘병 때문에 한가함 얻음이 자못 나쁘지 않으니, 안심하는 게 약이요 다른 방법이 없구나.〔因病得閒殊不惡 安心是藥更無方〕’ 한 것을 인용하였다.

※頤神(이신) : 정신을 수양하다. 마음을 보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