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敬次老先生山居四時 (경차노선생산거사시) - 鄭宗魯 (정종로)

-수헌- 2023. 2. 23. 15:47

敬次老先生山居四時各四吟共十六絶韻 경차로선생산거사시각사음공십륙절운     鄭宗魯 정종로

노선생께서 산중 살이 사계절을 각각 네 수씩 읊은 모두 십육 수의 절구시를 공경히 차운하다

<※ 노선생(老先生)은 퇴계(退溪)를 말한다>

 

春 봄

朝 아침

雪消初旭照窓明 설소초욱조창명

눈이 녹고 아침 햇살이 창문에 밝게 비치니

無數春禽得氣鳴 무수춘금득기명

수많은 새들이 봄기운을 받아 지저귀는구나

曉露漸晞晴靄捲 효로점희청애권

날 개어 새벽이슬 점차 마르고 안개 걷히니

向陽芳綠滿庭生 향양방록만정생

볕을 향해 푸른 방초가 뜰에 가득 자라나네

 

晝 낮

煙空藹藹日行遲 연공애애일행지

안개가 하늘에 자욱하고 해는 더디게 가니

沂上春風好振衣 기상춘풍호진의

기수에서 봄바람에 옷을 털기가 딱 좋구나

多少耦耕原野輩 다소우경원야배

들에서는 짝지어 밭을 갈던 많은 사람들이

及晡方始策牛歸 급포방시책우귀

해질 무렵 되어 소 몰고 돌아오기 시작하네

 

※沂上春風好振衣 (기상춘풍호진의) : 공자(孔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각 자신들의 뜻을 말하라 하였을 때, 모두 자기의 정치적 포부를 이야기하는데 증점(曾點)만 ‘늦은 봄에 봄옷이 완성되면 대여섯 명 어른, 예닐곱 아이들을 데리고 기수(沂水)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 가서 바람 쐬고서 시를 읊다가 돌아오겠다.’ 한 말을 유독 칭찬하였다는 고사(故事)가 있다.

 

暮 저녁

躍月溪魚飽雨薇 약월계어포우미

월계에 물고기 뛰고 고사리 비 흠뻑 맞으니

夕廚烹煮足充飢 석주팽자족충기

저녁에 요리하여 주린 배 채우기에 족하네

最憐一帶炊煙色 최련일대취연색

가장 사랑스러운 한줄기 밥 짓는 연기 색이

解接山顔碧不違 해접산안벽불위

산자락과 만나 푸른 산과 하나가 되는구나

 

夜 밤

溪花山月照西東 계화산월조서동

개울의 꽃과 산의 달이 동서로 비추니

皓彩紅光望不窮 호채홍광망불궁

흰빛과 붉은빛이 바라보기 끝이 없구나

徹夜房櫳明似晝 철야방롱명사주

밤새도록 방 창살이 대낮같이 밝으니

却疑銀漢落瑤空 각의은한락요공

은하수가 맑은 하늘에서 떨어진 듯하네

 

이상은 봄을 읊은 4 수이다. [右春四吟]

 

夏 여름

朝 아침

暑窓晨闢氣還淸 서창신벽기환청

새벽에 창을 여니 더운 기운이 다시 맑아지고

池藕階蕉浥露靑 지우계초읍로청

못의 연과 섬돌의 파초는 이슬에 젖어 푸르네

休道桑暾炎莫禦 휴도상돈염막어

해가 뜨면 더위를 막을 수 없다 말하지 말라

爽胷只在誦湯銘 상흉지재송탕명

탕반명을 읊고 있으면 가슴이 상쾌해진다네

 

※桑暾(상돈) : 상돈(桑暾)은 부상(扶桑)과 같은 뜻으로 해가 뜨는 곳을 말한다.

※湯銘(탕명) : 湯銘(탕명)은 은(殷) 나라 탕왕(湯王)의 목욕반(沐浴盤)에 새긴 글[湯盤銘;탕반명]을 말하는데, 스스로를 경계함을 의미한다. 탕왕(湯王)은 목욕반에 ‘참으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마다 날로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한다.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라고 새겨서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한다.

 

晝 낮

剛憐遲日繞簷明 강련지일요첨명

처마를 밝게 두른 해가 더뎌 더욱 가련하고

亭午炎風任泛楹 정오염풍임범영

한낮의 더운 바람 정자 기둥에 불어오네

竟夕端襟無語坐 경석단금무어좌

저녁까지 옷깃 단정히 하고 말없이 앉아

數他黃鳥囀枝聲 수타황조전지성

가지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 세어 보네

 

暮 저녁

落景蒼凉下遠山 낙경창량하원산

석양빛이 먼 산에서 서늘하게 내려오니

野農耘罷荷鋤還 야농운파하서환

농부가 김매기 마치고 호미 메고 돌아오네

也知羣動因皆息 야지군동인개식

따라서 움직이는 모든 것이 쉬어야 하는데

灌圃寒泉響獨潺 관포한천향독잔

밭에 물대는 찬 샘물 소리만 졸졸거리네

 

夜 밤

氛壒宵澄月更明 분애소징월경명

밤이 되어 먼지 걷히니 달이 더욱 밝고

北窓時入竹風淸 북창시입죽풍청

때때로 북창에 들어오는 대 바람이 맑네

堪憐盡日勞筋僕 감련진일로근복

종일토록 고생한 머슴이 가련하기만 한데

又作乘凉打麥聲 우작승량타맥성

또 서늘한 틈을 타서 보리타작 소리 나네

 

이상은 여름을 읊은 4 수이다. [右夏四吟]

 

秋 가을

朝 아침

朝來庭樹颯金風 조래정수삽금풍

아침이 되어 뜰의 나무에 가을바람 불어오니

斗覺新凉爽我胷 두각신량상아흉

서늘함에 홀연 내 가슴이 상쾌해짐을 느끼네

長夏惱煩今快已 장하뇌번금쾌이

긴 여름의 괴로움이 그치고 지금 상쾌해져서

病蘇翻勝杜陵翁 병소번승두릉옹

병에서 나으니 도리어 두릉옹 보다는 낫구나

 

※杜陵翁(두릉옹) : 호가 소릉(少陵)인 두보(杜甫)를 말한다. 평소 소갈증(消渴症)으로 고생하였으며, 그의 시편 곳곳에서 병 많음을 탄식하였다.

 

晝 낮

三杯濁酒興仍豪 삼배탁주흥잉호

석 잔의 탁주로 흥이 일어 호쾌해지니

秋日荒山獨上高 추일황산독상고

가을날 황량한 산을 홀로 높이 올라서

俯瞰黃雲濃四野 부감황운농사야

짙은 황금 구름 같은 사방 들판 굽어보니

農人隨處樂陶陶 농인수처악도도

농부들이 곳곳에서 도도하게 즐거워하네

 

暮 저녁

暮山秋景望堪娛 모산추경망감오

저녁 산 가을 경치 바라보며 즐길 만하니

積翠浮嵐淡似圖 적취부람담사도

남기가 떠올라 푸름이 그림처럼 담박하고

最是碧蘆紅蓼色 최시벽로홍료색

아주 좋은 푸른 갈대와 붉은 여뀌 빛깔이

夕煙和却漸虛無 석연화각점허무

저녁안개와 섞여서 점점 사라져 없어지네

 

夜 밤

碧空遙夜絳河淸 벽공요야강하청

밤중 은하수가 맑은 푸른 하늘 저 멀리

桂影涵秋別樣明 계영함추별양명

달빛이 가을을 머금어 특별히 밝구나

試捲疎簾孤倚枕 시권소렴고의침

성근 주렴을 걷고 홀로 베개에 의지하니

了無魂夢近昏冥 요무혼몽근혼명

꿈속의 넋도 흐릿함이 전혀 없어졌네

 

이상은 가을을 읊은 4 수이다. [右秋四吟]

 

※絳河(강하) : 은하수의 별칭. 은하수가 북극성의 남쪽에 있기에 남방의 색인 붉은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冬 겨울

朝 아침

拓窓寒日照寒空 척창한일조한공

창을 여니 찬 해가 추운 하늘에서 비치고

春色閒園但竹䕺 춘색한원단죽총

봄빛은 동산의 대나무 떨기에만 한가롭네

夜氣孔神朝可見 야기공신조가견

매우 신비한 야기는 아침에 볼 수 있으니

西箴眞箇獲吾衷 서잠진개획오충

나의 충정이 서잠의 참된 것을 얻었구나

 

※夜氣(야기) : 밤에 생장(生長)하는 맑은 기운. 만물이 잠든 밤에 사념(邪念)이 없어지고 정신은 저절로 맑아지는 순수한 기운을 뜻함. 맹자는 야기를 기르는 것을 수양법의 하나로 여겼다.

※西箴(서잠) : 송나라 때 성리학자인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을 말하는 듯하다. 서명(西銘)은 유학의 기본 윤리인 인애(仁愛)의 원리를 밝힌 것으로 천지만물과 나라는 존재와의 일체에서 얻어지는 심오한 사상적 내용을 담고 있다.

 

晝 낮

短日深居鍊魄營 단일심거련백영

해가 짧아 깊숙이 들어앉아 몸을 단련하니

鏡中依保舊時形 경중의보구시형

거울 속에는 여전히 옛 모습을 지니고 있네

却嫌屋裏陰因冷 각혐옥리음인랭

냉기로 인하여 음산해진 집 안이 싫어져서

午向南簷暖晷迎 오향남첨난귀영

한낮에 남쪽 처마에서 따뜻한 햇볕을 맞네

 

暮 저녁

瞥眼羲輪已沒西 별안희륜이몰서

잠깐 사이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가 버리니

宿禽猶解競歸栖 숙금유해경귀서

오히려 새들도 돌아가서 깃들 줄 아는데

何人漏盡猶行路 하인루진유행로

어떤 사람이 시간이 다 되도록 길을 다니며

應坐靈臺慾浪迷 응좌영대욕랑미

마음을 욕망의 물결에 미혹되게 하는가

 

※羲輪(희륜) : 희화(羲和)가 모는 수레라는 뜻으로 태양을 말한다. 희화가 여섯 필의 말이 끄는 수레 위에 태양을 싣고 날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운행하였다고 한다.

※漏盡(루진) : 물시계의 물이 다 새어나가 없어졌다는 뜻으로 (통금)시간이 다 되었다는 뜻임.

※靈臺(영대) : 신령스럽다는 뜻으로, 마음을 이르는 말.

 

夜 밤

寒窓夜夜燦蟾光 한창야야찬섬광

차가운 창문에 밤마다 달빛 찬란하니

睡鶴松壇夢更長 수학송단몽경장

송단에 잠든 학은 꿈이 더욱 길어지네

坐念平生成底事 좌념평생성저사

앉아서 평생에 이룬 일들을 생각하니

八旬徒得鬢邊霜 팔순도득빈변상

팔순에 다만 흰 귀밑머리만 얻었구나

 

이상은 겨울을 읊은 4 수이다. [右冬四吟]

 

*정종로(鄭宗魯,1738~1816) : 조선후기 입재집 소대명신언행록 등을 저술한 학자. 자는 사앙(士仰), 호는 입재(立齋) 무적옹(無適翁).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성리학 연구와 강학 저술에 전념하였으며,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