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苕川四時詞 (초천사시사) - 丁若鏞 (정약용)

-수헌- 2023. 2. 25. 18:50

이 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고향에 있는 소내[苕川, 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사계절의 풍경을 육언시(六言詩)로 표현하였다. 육언시(六言詩)는 우리에게 사언시(四言詩)만큼이나 낯선 양식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고시, 절구, 율시 등이 다양하게 존재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동문선(東文選) 등 시선집에 육언시 항목을 따로 설정한 것을 볼 수 있다.

苕川四時詞效張南湖賞心樂事 초천사시사효장남호상심낙사     丁若鏞 정약용  

장남호의 상심낙사시를 본떠 초천사시사를 짓다

 

黔丹山賞花 검단산상화

검단산(黔丹山)의 꽃구경

 

村小梨花白立 촌소리화백립

작은 마을에 있는 배꽃은 새하얀데

山深杜宇紅然 산심두우홍연

깊은 산골 진달래는 붉기도 하구나

徐從石磴樵路 서종석등초로

돌 비탈 오솔길을 천천히 나아가서

還訪煙磯釣船 환방연기조선

안개 낀 강가 낚싯배를 다시 찾네

 

隨鷗亭問柳 수구정문류

수구정(隨鷗亭)의 버들 구경

 

茅亭會酌春酒 모정회작춘주

모정에 함께 모여 봄 술 따를 때

柳岸前臨小橋 류안전림소교

작은 다리 앞 언덕에 버들이 있네

雨葉如黃似綠 우엽여황사록

비에 젖은 잎들이 노란 듯 푸르고

煙條乍靜還搖 연조사정환요

안개 낀 가지가 잠깐씩 흔들거리네

 

藍子洲踏靑 남자주답청

남자주(藍子洲)의 답청

 

水北雙厓對碧 수북쌍애대벽

강 북쪽 두 기슭 마주하고 푸른데

沙邊一島孤靑 사변일도고청

모래 부근 섬 하나는 홀로 푸르구나

芒鞋匼匝穿徑 망혜암잡천경

짚신신고 오솔길을 빙 둘러 걸으니

芳草葳蕤滿汀 방초위유만정

싱그러운 풀들이 물가에 무성하네

 

 

興福寺聽鸎 흥복사청앵

흥복사(興福寺)의 꾀꼬리 소리

 

澗壑春深樹暗 간학춘심수암

골짜기에 봄이 깊고 숲은 어둑한데

禪樓晝寂煙生 선루주적연생

고요한 낮 절간에 안개가 일어나네

靑山自繞千疊 청산자요천첩

청산은 몸소 천 겹으로 에워쌌는데

黃鳥時聞一聲 황조시문일성

꾀꼬리 소리가 때때로 들리는구나

 

粵溪打魚 월계타어

월계(粤溪)의 고기잡이

 

桃花有雨新漲 도화유우신창

비가 오니 복사꽃이 새로이 만발하고

荇帶無風自牽 행대무풍자견

마름 풀은 바람 자도 절로 끌려가네

暖日輕陰布網 난일경음포망

구름 끼고 따스한 날 그물을 던지니

重脣巨口盈船 중순거구영선

커다란 물고기가 배에 넘치는구나

 

石湖亭納涼 석호정납량

석호정(石湖亭)의 납량(納涼)

 

澄泓倒揷丹壁 징홍도삽단벽

맑은 웅덩이에 절벽이 거꾸로 꽂혔고

層檻遙攀碧空 층함요반벽공

누각은 멀리 푸른 하늘 높이 매달렸네

風入松聲瀏亮 풍입송성류량

소나무에 부는 바람 소리는 상쾌하고

雲添石色玲瓏 운첨석색령롱

구름 낀 바위 빛깔은 아름답게 빛나네

 

石林賞荷 석림상하

석림(石林)의 연꽃 구경

 

澗奧紅亭翠閣 간오홍정취각

시내엔 붉은 정자 푸른 누각이 있고

園中曲沼方塘 원중곡소방당

정원엔 굽은 소와 모난 연못이 있네

要看菡萏秋色 요간함담추색

연꽃 봉우리와 가을빛을 구경하려면

宜趁楓林夕陽 의진풍림석양

마땅히 석양의 단풍 숲을 찾아와야지

 

酉谷聰蟬 유곡총선

유곡(酉谷)의 매미 소리

 

東壓澄潭止水 동압징담지수

동으로 맑게 고인 못물 내려다보이고

西臨碧樹涼蟬 서림벽수량선

서쪽 푸른 숲 속 매미 소리 시원하네

曉日疏歌緩節 효일소가완절

아침엔 느린 곡조로 쉬엄쉬엄 노래하고

斜陽促管繁絃 사양촉관번현

석양엔 관현이 뒤섞인 듯 빠르게 우네

 

䤬鑼潭汎月 사라담범월

사라담에 뜬 달

 

月照䤬鑼潭上 월조사라담상

사라담 못물 위에 달빛이 비치고

風來舴艋舟邊 풍래책맹주변

나룻배 언저리에 바람이 불어오네

蘭橈桂櫂容與 난요계도용여

계수 노로 천천히 목란 배를 저으니

金闕銀臺杳然 금궐은대묘연

황금 궁궐 은 누대가 묘연하구나

 

天眞菴賞楓 천진암상풍

천진암(天眞庵)의 단풍 구경

 

買酒花郞坊裏 매주화랑방리

술을 사서 화랑 방 가운데로 와서

停車鸎子峯陰 정차앵자봉음

앵자봉 그늘에서 수레를 멈추었네

一夜𩆷𩆷白雨 일야섬섬백우

밤새 쓸데없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兩厓欇欇紅林 양애섭섭홍림

양 기슭 단풍들이 붉은 숲을 이뤘네

 

水鍾山賞雪 수종산상설

수종산(水鍾山)의 눈 구경

 

縹緲閬風玄圃 표묘랑풍현포

아스라이 넓은 낭풍과 현포의

周遭玉樹銀屛 주조옥수은병

옥 숲이 은 병풍을 두루 둘렀네

天近峯巒似黑 천근봉만사흑

산마루 닿은 하늘이 검게 보이고

水逢湍瀨暫靑 수봉단뢰잠청

여울 만난 물은 갑자기 푸르구나

 

斗尾峽觀魚 두미협관어

두미협(斗尾峽)의 고기 구경

 

俯鑿玻瓈萬孔 부착파려만공

수정 같은 얼음에 만공을 뚫어서

橫施鐵銷千尋 횡시철소천심

쇠사슬을 천 길이나 가로질러 쳤네

天寒綠帽盈雪 천한록모영설

날은 춥고 두건에는 눈이 쌓이는데

日射紅鱗耀金 일사홍린요금

물고기에 햇빛 비쳐 금빛으로 빛나네

 

松亭射帿 송정사후

송정(松亭)의 활쏘기

 

雲晴碧檜壇上 운청벽회단상

푸른 전나무 언덕에 눈이 그치니

日照黃莎岸邊 일조황사안변

누런 잔디 기슭에 해가 비치네

銅丳燒來胾肉 동찬소래자육

구리 꼬챙이에 고기 구워 내오고

角弓聽取鳴弦 각궁청취명현

활에서 올리는 시위 소리를 듣네

 

 

※苕川(초천) :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고향에 있는 소내(苕川, 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를 말한다.

※張南湖(장남호) : 남송시대 사람 장자(張鎡,1153~1221?)를 말하며, 상심낙사(賞心樂事)는 마음으로 즐기는 좋아하는 일이란 뜻이다.

※蘭橈(난요) : 목란(木蘭) 노[棹], 작은 배의 미칭(美稱)이다. 난은 목란수(木蘭樹)를 가리키는데, 고시(古詩)에서는 난주(蘭舟), 난장(蘭槳), 난요(蘭橈) 등으로 표현되나 모두 작은 배의 미칭일 뿐 목란수를 반드시 사용한 것은 아니다.

※容與(용여) : 주저하며 멈칫거리는 모양.

※𩆷𩆷白雨(섬섬백우) : 섬섬(𩆷𩆷)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모양을 말하고, 백우(白雨)는 원래 우박을 뜻하나 백(白)이 ‘쓸데없는, 부질없는’ 이란 뜻이 있으므로 쓸데없는 가을비 정도로 이해된다.

※欇欇(섭섭) : 섭섭(欇欇)은 단풍나무를 말한다. <설문해자>

※閬風玄圃(낭풍현포) : 낭풍(閬風)은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의 신선이 산다는 곳이고, 현포(玄圃)는 중국 전설에 천제가 산다는 곳이니 곧 신선 세계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