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溟大師의 충절과 詩

四溟大師-일본으로 가다(부산에서)

-수헌- 2020. 5. 21. 16:34

사명대사(四溟大師)는 강화 사신으로 일본으로 가는데 그 행색이 일국의 외교사절의 행차가 아니라 일개 승려가 유랑하는 모양으로 초라하였다 한다. 사명대사는 부산에서 한 달 이상을 기다렸다가 대마도로 건너가게 되는데 이것도 조정의 도움 없이 직접 대마도로 연락하여 입도(入島) 절차를 밟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에는 사명대사가 부산에서 대마도의 연락을 기다리며 고뇌하는 시를 몇 수 올린다.

 

『金海傳舍夜懷』

『김해읍내 전사에서의 밤의 회포』

旅次盆城府 여차분성부

여행 도중 분성부(金海)에 이르니

乾坤此地分 건곤차지분

하늘과 땅은 이곳에서 나눠지네

潮通百越海 조통백월해

조수는 바다를 백번 넘어 통하고

天接古陵雲 천접고릉운

옛 능의 구름은 하늘에 닿았구나

山月千秋白 산월천추백

산과 달은 천년 동안 희고

荷香半夜聞 하향반야문

한 밤중에 연꽃 향기 풍겨오네

滄波萬里意 창파만리의

창파 밖 만리 길을 생각하니

如樓正紛紛 여루정분분

어지러움이 누각처럼 높구나

 

『在竹島有一儒老譏山僧不得停息 以拙謝之』

『재죽도유일유노기산승부득정식 이졸사지』

죽도에서 한 늙은 선비가 나를 보고 산승이 쉬지도 못한다고 놀리므로

보잘것없는 시로 답하다

西州受命任家裔 서주수명임가예

서주에서 태어난 임씨 집 후예로

庭戶堆零苟不容 정호퇴령구불용

집안이 영락하여 몸 둘 곳 없었도다

無賴生成逃聖世 무뢰생성도성세

의지할 사람 없어 세상을 도피하여

有懷愚拙臥雲松 유회우졸와운송

어리석고 못난 생각에 송운에 숨었네

山河去住七斤衲 산하거주칠근납

산하에 가서 살아도 일곱근의 장삼이요

宇宙安危三尺笻 우주안위삼척공

우주의 안위도 석자의 지팡이로다

是我空門本分事 시아공문본분사

이것이 우리 공문(불도)의 본분인데

有何魔障走東西 유하마장주동서

어쩌다 마귀가 가로막아 동서로 달아나네

※竹島(죽도): 김해에서 부산 가는 길목 서낙동강변에 있는 지역, 지금의 부산시 강서구 죽림동(竹林洞) 지역이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축조한 왜성(倭城)이 있다.

 

『在勘巒有一儒問一路所記 以是無頭話謝之』

『재감만유일유문일로소기 이시무두화사지』

감만(勘巒)에 있을 때 한 선비가 그동안의 일을 물으므로 두서없는 말로 답하다

七月一日離京師 칠월일일이경사

칠월 초하루 서울을 떠나는데

庚雨盆傾夜不止 경우분경야부지

여름 비가 그치지 않고 밤까지 내렸네.

蓬山禪侶亦有情 봉산선려역유정

봉산의 중이 정이 많아

追質拈花第一旨 추질념화제일지

꽃을 집어 들고 성지를 쫓아오네

征衣更把問回期 정의경파문회기

가는 사람 옷을 붙잡고 돌아올 날 물어도

榮馬無語長驅耳 영마무어장구이

말없이 말을 몰아 멀리 달려왔네

炎炎大火發中腸 염염대화발중장

뱃속에서 큰 불이 뜨겁게 일어나도

滿身流汗成瘡痏 만신류한성창유

온몸의 땀은 부스럼 되어 오한이 나네

常識葉公夕飲氷 상식섭공석음빙

섭공(葉公)이 저녁에 얼음 먹은 것은 알고 있었으나

不知非指喩非指 부지비지유비지

손가락 아닌 것을 손가락 아니라고 고할 줄 몰랐네

寸心恒懼聖恩深 촌심항구성은심

마음은 항상 깊은 성은이 두려워

寤寐忽忽戒行李 오매홀홀계행리

자나 깨나 바쁘게 행장을 꾸렸네

登程再魄到天涯 등정재백도천애

길을 떠나 한 달만에 하늘 끝에 이르니

首秋已過中秋至 수추이과중추지

초가을 이미 지나고 중추가 되었도다.

回看直北五雲遙 회간직북오운요

눈을 돌려 북쪽 바라보니 오운(궁궐 있는 곳)은 먼데

杳杳長安何處是 묘묘장안하처시

아득하다 장안은 어디에 있는가

三韓路斷海茫茫 삼한로단해망망

삼한의 길은 끊어지고 바다는 망망하나

大鵬擊水三千里 대붕격수삼천리

대붕 새가 물을 치면 삼천리로다.

 

※葉公夕飲氷(섭공석음빙): 사신으로 가라는 명을 받고 두려움에 속이 타서 얼음을 먹는 것을 말함. 옛날 초(楚) 나라의 섭공(葉公) 자고(子高)가 제(齊) 나라로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공자(孔子)에게 말하길,“아침에 사신으로 가라는 명을 받고 저녁에 얼음을 먹었는데도(今吾朝受命而夕飮氷) 근심으로 속이 타들어 갑니다.”라고 했다. <莊子 人間世>

 

※不知非指喩非指(부지비지유비지) : <莊子 齊物論>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여기서 유추하면 사신의 직을 사양해야 했는데 못했음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以指喩指之非指, 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

손가락을 가지고서 손가락을 손가락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을 손가락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못하다.

以馬喩馬之非馬. 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

말(馬)을 가지고서 말을 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을 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못하다.

天地一指也,萬物一馬也

천지는 한 개의 손가락과 같고, 만물은 한 마리의 말과 같은 것이다.

可乎可,不可乎不可 (下略)

가능한 것은 할 수 있고 불가능한 것은 할 수 없다(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