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溟大師의 충절과 詩

四溟大師-일본으로 가다(한양출발)

-수헌- 2020. 5. 17. 18:17

1604년 2월 사명대사(四溟大師)는 스승인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열반하였다는 부음을 받고 묘향산으로 상례(喪禮)를 치르기 위해 떠났다가 선조(宣祖)임금의 급한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갔다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스승의 상례도 치르지 못하고 7월1일 서울을 떠나 이듬해 5월 돌아 올 때까지 8개월간 도쿠가와(德川家康)와의 담판으로 피로인(被虜人) 3,000여명을 데리고 올 때까지 조정의 무관심속에서도 고국의 장래와 회담에 대한 걱정으로 고심하였다. 이때 四溟大師의 심정을 담은 시가 많이 남아 있는데 사명대사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대사의 시를 감상해 본다.

 

『한양을 떠나 충북 단양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지은 밤의 회포』

丹陽郭外有高樓 단양곽외유고루

단양성 밖의 높은 누각에서

獨倚中天近斗牛 독의중천근두우

홀로 중천에 의지하니 두우성(斗牛星)이 가깝구나.

鳥入青冥空宇靜 조입청명공우정

새들이 하늘로 날아가니 빈 집은 고요하고

蟬鳴綠樹碧雲秋 선명록수벽운추

나무에 매미 울고 하늘 높으니 가을이로다.

浮生一夢身長役 부생일몽신장역

덧없는 인생 꿈같은데 몸은 항상 억메이니

世事何年恨即休 세사하년한즉휴

세상사 어느 해에나 이 시름 그칠 것인가.

耿耿夜深星月轉 경경야심성월전

잠 못드는 깊은 밤 달과 별은 기우는데

寂寥無語俯清流 적요무어부청류

쓸쓸히 흘러가는 물만 말없이 굽어본다.

 

『죽령을 넘으면서』

庚雨初晴嶺嶠秋 경우초청령교추

여름비 개인 죽령마루는 가을인데

恭承朝命下南洲 공승조명하남주

왕명을 받들고 남주(왜국)로 내려가네

分身百億誰云妄 분신백억수운망

몸을 백억으로 나눈들 누가 거짓이라 하겠는가

離幻翻成博望侯 이환번성박망후

이환은 어느덧 박망후가 되었구나.

이환(離幻) : 사명대사의 자(字). 따라서 나는 어느듯 박망후가 되었구나 라는 뜻임

박망후(博望侯) : 한나라 무제(武帝)때의 장군인 장건(張騫). 일찌기 서역의 대월지국에 사신으로 가다가 흉노에게 포로로 잡혀 오랫동안 억류되었다 13년만에 귀환 하였다. 이때 가져온 정보는 후일 실크로드 개척에 중요한 자료 가 되었으며, 이후 공로를 인정받아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졌다.

 

『까치원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다. (乘舟流下鵲院)』

年來事事惜多違 년래사사석다위

해마다 일마다 어긋나 애석한데

此日此行容鬂改 차일차행용빈개

오늘 이 행차에 얼굴과 수염이 고쳐지랴

孤舟煙雨下中流 고주연우하중류

외로운 배 이슬비 속에 강 가운데 내려가니

風濤接天近滄海 풍도접천근창해

풍랑은 하늘에 닿고 창해는 가깝구나

雲黑山昏千萬重 운흑산혼천만중

구름은 검고 산은 어두워 천만 겹인데

漢水三峯何處在 한수삼봉하처재

한강과 삼각산은 어느 곳에 있는가

까치원(鵲院) : 작원관(鵲院關), 밀양 삼랑진 남쪽 낙동강 변에 있던 관문.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며,  임진왜란때 박진이 이끄는 군관민 300여명이 고니시(小西行長)의 1만 8천여 군사와 대적해 결사항전한 곳이다.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일본을 다녀올 때의 행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