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苦熱二十韻 고열이십운

-수헌- 2021. 7. 30. 13:44

올해 삼복(三伏)이 다 지나려면 아직 열흘 넘게 남아 이 무더위가 가실 줄을 모른다. 올해는 특히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피서다운 피서도 못하고 이 무더위를 고스란히 견뎌야 할 것 같다.

조선 중기의 문신 계곡(谿谷) 張維(장유)는 이 지겨운 무더위를 이렇게 노래했다. 이 시는 칠언 배율시(七言 排律詩)로 이십운(二十韻)으로 되어 있는데 무더위를 실감 나게 잘 묘사하였고, 많은 고사(古事)를 인용하여 그의 넓은 학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張維(장유 ; 1587~1638)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묵소(默所)이다. 1609년(광해군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대사간·대사헌·대사성을 지냈다. 천문, 지리, 의술, 병서 등에 능통했고 이정구(李廷龜), 신흠, 이식(李植) 등과 더불어 조선 문학의 4 대가로 불리며, 저서로 계곡만필(谿谷漫筆), 계곡집(谿谷集)등이 있다.

 

苦熱二十韻 고열이십운 張維 장유

고통스러운 무더위 이십 운

 

火帝¹司天役祝融¹ 화제사천역축융

화제가 하늘을 맡아 축융을 부리니

八紘²都在一爐中 팔굉도재일로중

세상이 온통 한 화로 속에 든 것 같네

南訛¹本爲資生長 남와본위자생장

남와의 본분은 생장을 돕는 것일진대

北至³翻成煽蘊隆 북지번성선온융

북지가 되니 더위만 더 크게 부추기네

赤日曈曈纔出海 적일동동재출해

붉은 해 바다에서 겨우 솟아오르자마자

炎雲爀爀欲燒空 염운혁혁욕소공

구름도 붉게 타올라 하늘 태울 듯하네

乾坤未見淸凉地 건곤미견청량지

하늘땅 어딘들 서늘한 곳 보이지 않으니

陶鑄誰尸橐鑰功 도주수시탁약공

대장간 가마 풀무질은 도대체 누가 하는가

燕谷却嫌鄒子律⁴ 연곡각혐추자율

연나라 곡구가 추연의 양율도 싫어 물리치고

蜀山應鑠鄧家銅⁵ 촉산응삭등가동

촉산의 등씨 구리 산도 응당 녹아내리겠네

千林畏佳溫風動 천림외가온풍동

큰 수풀에도 무더운 바람 일어날까 두렵고

萬壑歊噓毒霧濛 만학효허독무몽

골짝마다 김이 올라 장독(瘴毒)같은 안개 끼었네

大抵有泉皆似沸 대저유천개사비

샘이란 샘물은 모두 끓어오르는 듯하고

遂令無物不成烘 수령무물불성홍

달궈지지 않은 물건 하나도 없게 되었네

壺頭鳶墮靑茅瘴⁶ 호두연타청모장

호두산 솔개도 청모의 장기(瘴氣)에 떨어지고

潭底龍焦紫貝宮 담저용초자패궁

못 속의 용마저 자패궁에서 더위에 지치는구나

最是書生偏懊惱 최시서생편오뇌

가장 오뇌에 시달리는 바로 이 서생은

不堪環堵翳蒿蓬 불감환도예호봉

쑥대로 둘러싸인 곳에서 견디지 못하겠네

墻陰厭聽蛙聲聒 장음염청와성괄

담 밑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개구리 소리도 싫고

甕牗愁看豹脚通 옹유수간표각통

창틈으로 드나드는 각다귀 근심스레 쳐다보네

穿破短衫渾涴汗 천파단삼혼완한

구멍 뚫린 홑적삼에 후줄근히 땀 흘러서

捉來輕箑强搖風 착래경삽강요풍

가볍게 부채 잡고 바람을 세게 부쳐대네

涼軒珍簟貧難辦 양헌진점빈난판

서늘한 집과 대자리는 가난해서 갖추기 어려워도

水玉秋菰⁷句漫工 수옥추고구만공

찬 수정(水晶)과 가을 고채(菰菜) 시로는 잘 읊네

街上衝塵多褦襶⁸ 가상충진다내대

먼지 무릅쓰고 쏘다니는 길거리의 내대자들

樾中蔭暍是帲幪 월중음갈시병몽

가로수 그늘 아래서 더위나 좀 식히시게

平泉會客龍皮滑⁹ 평천회객용피활

평천장에 모인 손님에게 용피 바람 불어오니

河朔¹⁰開筵羽爵崇 하삭개연우작숭

하삭음 잔치 열고 술잔들을 높이 드네

不是炎凉元有別 불시염량원유별

더운 날 시원한날 구분함이 옳지 않음은

由來苦樂自難同 유래고악자난동

고락이 한 가지 어려움에서 유래하기 때문일세

璇璣¹¹斟酌無停運 선기짐작무정운

북두성은 술 따르기 위해 운행 멈추는 일 없이

舒慘¹²循環本至公 서참순환본지공

본시부터 공평하게 음양을 펼치고 참하며 도네

龍火¹³乍從三伏轉 용화사종삼복전

용화가 갑자기 삼복 따라 기울어지면

鷹風¹⁴漸入九秋雄 응풍점입구추웅

가을철 접어들며 응풍이 점점 불어오리

冲和在我心無累 충화재아심무루

평정심을 가지면 마음에 누 될 게 없고

裘葛隨時道不窮 구갈수시도불궁

때맞춰 갖옷 칡옷 입어도 도에 궁하지 않네

玄圃樓臺氷淅瀝¹⁵ 현포루대빙석력

현포 누대 올라서면 찬 바람소리 들리고

露寒宮殿¹⁶玉玲瓏 로한궁전옥령롱

노한궁에는 옥호(玉壺) 소리가 영롱하네

仙凡路隔何由到 선범로격하유도

무릇 신선되는 길은 어떤 연유로 멀어지니

高臥長懷漉酒翁¹⁷ 고와장회록주옹

높이 누워 녹주옹만 오랫동안 생각하네

 

¹火帝(화제) 祝融(축융) 南訛(남와) : 모두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불이나 여름, 남방(南方)을 담당하는 신들이다.

²八紘(팔굉) ; 팔방의 너른 범위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말.

³北至(북지) : 하지(夏至)의 다른 이름. 태양이 이날 적도(赤道)의 최북단에 도달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⁴燕谷 鄒子律(연곡 추자율) :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추연(鄒衍)이 연(燕) 나라의 곡구(谷口)에 있을 때, 땅이 비옥함에도 기온이 낮아 농사가 안 되는 것을 보고, 양율(陽律)을 불어넣어 곡식을 자라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⁵鄧氏銅山(등씨동산) : 한 문제(漢文帝)가 총신(寵臣)인 등통(鄧通)에게 촉군(蜀郡) 엄도(嚴道)의 동산(銅山)을 하사하여, 스스로 동전을 만들게 해서 거부(巨富)가 되도록 했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⁶壺頭鳶墮靑茅瘴(호두연타청모장) : 후한(後漢)의 마원(馬援)이 교지(交趾)를 공격하며 호두산에 이르렀을 때 혹독한 무더위에 병으로 죽는 사졸들이 늘어나고 자신도 병에 걸리자 “찌는 듯한 독기에 솔개마저 물속에 툭툭 떨어지나니, 고향에서 편히 살자던 소싯적의 그 말을 누워서 떠 올린 들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毒氣熏蒸 仰視鳥鳶跕跕墮水中 臥念少游平生時語 何可得也]”라고 탄식했던 고사를 인용하였음. 청모(靑茅)는 남방에서 나는 향기가 독한 띠풀 이름이다.

⁷水玉秋菰(수옥추고) : 진(晉) 나라 장한(張翰)이 가을에 고향의 고채(菰菜) 맛이 그리워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했던 고사와, 두보(杜甫)가 이 고사를 인용한 시에 “어찌하면 차가운 수정 지니고, 서늘한 가을 고채 맛을 볼거나. [乞爲寒水玉 願作冷秋菰]”라는 구절에서 인용했다.

⁸褦襶子(내대자) :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내대는 본래 여름철에 햇빛을 가리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쓰는 삿갓의 일종인데, 삼국 시대 위(魏)나라 정효(程曉)의 시 〈더운 여름의 손님을 조롱하다(嘲熱客)〉에 “지금 삿갓 쓴 이가, 무더위에 남의 집 찾아왔네. 주인이 손님 왔다는 말 듣고, 이를 어쩌나 하며 찡그리네.〔只今褦襶子 觸熱到人家 主人聞客來 嚬蹙奈此何 〕”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⁹平泉會客龍皮滑(평천회객룡피활) : 당(唐) 나라 이덕유(李德裕)가 별장인 평천장(平泉莊)에서 여름에 주연(酒宴)을 베풀 때, 황금 항아리에 담은 물로 백룡피(白龍皮)를 적셔 놓으니 한기(寒氣)가 일어나면서 서늘해졌다는 전설이 있다.

¹⁰하삭음(河朔飮) : 피서(避暑) 목적의 주연(酒宴)을 말한다. 후한(後漢) 말에 유송(劉松)이 원소(袁紹)의 자제와 함께 하삭(河朔)에서 삼복(三伏) 더위를 피하려고 밤낮으로 주연을 베풀었던 고사에서 유래함.

¹¹璇璣(선기) ; 북두칠성의 제1성(第一星)에서 제4성까지를 가리키던 말.

¹²舒慘(서참) : 양서 음참(陽舒陰慘)의 줄임말로 ‘따뜻하게 펴주고 참혹하게 처벌함’을 이르며, 음양(陰陽)ㆍ고락(苦樂) 등 대립 개념을 총괄하여 표현하는 말이다.

¹³龍火(용화) : 화성(火星)을 말하는데, 동방 7수(宿) 중의 심수(心宿)로서, 이 별이 서쪽으로 기울어지면 화기(火氣)가 수그러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¹⁴鷹風(응풍) : 입추가 되면 응준(鷹隼;새매)이 맹위를 떨친다는 말에서 비롯하여 가을바람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¹⁵淅瀝(석력) : 비나 눈이 내리는 소리 또는 바람이 나무를 스치어 울리는 쓸쓸한 소리로 시원한 바람을 의미한다.

¹⁶露寒宮(노한궁) : 노한궁(露寒宮)은 한(漢) 나라 궁전 안의 관소(館所) 이름인데, 두보(杜甫)의 시에 萬里露寒殿 開氷靑玉壺(만리노한전 개빙청옥호)라는 구절이 있어 인용했다.

¹⁷漉酒翁(녹주옹) : 술 거르는 늙은이라는 뜻으로 도연명(陶淵明)을 가리킨다. 도연명이 술이 익으면 갈건(葛巾)으로 술을 걸러낸 다음 다시 머리에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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