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유두절(流頭節)

-수헌- 2021. 7. 22. 15:05

어제(21일)는 중복(中伏)이었고, 오늘은 24절기 중 꼭 절반에 해당하는 열두 번째 절기 대서(大暑)이다. 대서는 이름 그대로 가장 더운 날이란 뜻으로 이때는 항상 장마가 끝나고 열대야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더운 때를 그냥 보내지 않고 유두일이라는 속절(俗節)을 두어 더위도 식히고 쉬며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도 가졌다. 유두(流頭)일은 음력 6월 15일로 삼복(三伏)의 기간 중에서도 가장 무더운 시기이다. 기록에 의하면 유두일에는 옛날 신라 때부터 액막이로 동류수(東流水;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풍속이 있고, 유두천신(流頭薦新)으로 농신제, 용신제등을 지냈으며, 전병 유두면과 같은 유두 음식을 먹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정동유(鄭東愈)는 오직 유두만이 우리 고유 명절이고 그 밖의 것은 다 중국의 절일(節日)을 따온 것이라고 했다 <주영편(晝永編)>. 그러나 조선 후기의 문신 이학규는 이러한 것이 액막이가 아니고 단순한 피서법일 뿐이라고 하였다.

 

流頭宴 유두연    李學逵 이학규

 

東都遺俗 以六月十五日 沐髮東流水 동도유속 이유월십오일 목발동류수

경주의 옛 풍속에 음력 615일이면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은 후

因爲稧飮 謂之流頭宴 인위계음 위지류두연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셨는데 이를 유두연이라고 한다.

盖沿河朔避暑之飮 而誤爲祓禊耳 개연하삭피서지음 이오위불계이

이는 하삭의 피서음을 따른 것인데 액막이 제사로 잘못 전해진 것이다.

 

六月之中流頭節 유월지중유두절

유월의 한가운데 유두절에는

東京屋霤相烘熱 동경옥류상홍열

경주의 모든 지붕이 달구어 지네

彈冠振衣莫須遲 탄관진의막수지

갓과 옷깃 먼지 털다 늦지 말게나

流觴曲水行當設 유상곡수행당설

당연히 유상곡수 자리 마련할 테니

 

이학규(李學逵, 1770~1835) ; 조선후기 『낙하생전집』, 『인수옥집』 등을 저술한 문인. 자는성수(醒叟), 호는 낙하생(洛下生) 또는 낙하(洛下).

 

※하삭(河朔)의 피서음(避暑飮) :무더운 여름철에 피서(避暑)하는 술자리를 뜻하는 말. 후한(後漢)말에 광록대부 유송(劉松)이 하삭(河朔)으로 원소(袁紹)의 군대를 위무하러 가서 원소의 자제들과 삼복더위에 술자리를 벌여 즐긴 고사에서 온 말이다.

※彈冠振衣(탄관진의) ; 갓과 옷깃을 턴다는 뜻으로, 목욕을 한다는 말이다.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갓과 옷깃을 턴다는 굴원(屈原)의 옛말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流觴曲水(유상곡수) :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에 나온 말로, 굽이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마시는 좋은 술자리를 말한다.

 

유두절(流頭節)에 술을 마시며 벌이는 잔치를 유두연(流頭宴)이라고 하는데 이는 액막이 제사와는 애초에 관련이 없고 그저 더위를 피해서 술을 마시던 옛일을 본받은 것뿐인데, 당시 사람들은 유두일만 되면 반드시 액막이 제사를 지낸다고 서문에서 지적하고 있다.

 

 

流頭日醉吟 유두일취음   李廷馣 이정암

유두일에 취하여 읊다

 

羞將白髮洗淸川 수장백발세청천

맑은 냇물에 백발을 감기 부끄러워

逃暑聊依樹影邊 도서료의수영변

근처 나무 그늘에서 피서를 즐긴다

濁酒三杯成穩睡 탁주삼배성온수

탁주 석 잔 마시고 곤히 잠이 들어

不知紅日下西天 불지홍일하서천

해가 서쪽 하늘로 진 줄도 몰랐네

 

李廷馣(이정암, 1541~1600년) : 조선시대 병조참판, 전주부윤,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자는 중훈(仲薰), 호는 사류재(四留齋)·퇴우당(退憂堂)·월당(月塘).

 

流頭日 次人韻 유두일 차인운   許𥛚 허적

유두일에 다른 사람의 시에 차운하다

 

擾擾綠雲飛瀑下 요요록운비폭하

폭포수 아래 푸른 구름 어지러이 날리니

人爭濯熱事遨遊 인쟁탁열사오유

사람들 더위 식히며 노는 일로 다투네

自憐短髮渾霜雪 자련단발혼상설

성근 머리털에 눈서리 내린 게 가련해서

不願淸冷灑我頭 불원청랭쇄아두

내 머리에는 차가운 물 끼얹고 싶지 않네

 

𥛚(허적, 1563년~1640) : 조선시대 영천군수, 형조 정랑, 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하(子賀), 호는 수색(水色), 인조 6년 유효립(柳孝立)의 모반사건에 공을 세워 영사공신(寧社功臣)에 녹훈되고 양릉군(陽陵君)에 책봉되었다.

 

流頭觀農樂 유두관농악    安由愼 안유신

유두절에 농악을 관람하다

 

匆旗一建颺東風 총기일건양동풍

깃발 하나 우뚝 세우니 동풍에 휘날리고

擊鼓郊原舞綵童 격고교원무채동

들에는 색동옷 입은 머슴들 북 치고 춤추네

邊事已平農事早 변사이평농사조

농사철은 이르고 변방은 이미 평안하니

始覺吾君聖德鴻 시각오군성덕홍

임금님의 크나 큰 덕 비로소 깨달았네

 

安由愼(안유신, 1580~1657), 조선시대 빙고감 예관, 상서원직장, 양천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자는 수초(遂初), 호는 남파(南坡). 저서로 남파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