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淸名) 한식(寒食)이 지나면 곡우(穀雨)가 다가오는데, 곡우(穀雨)는 곡식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되는 봄비가 내리는 날이라는 뜻이다. 농촌에서는 곡우(穀雨)에 모든 곡물이 잠에서 깨어 자란다고 보아, 이 무렵에 볍씨를 물에 담가 못자리를 마련하면서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한다. 청명(淸名)이 지나면 모든 식물이 파릇하게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데, 특히 이 무렵부터 곡우(穀雨) 이전에 딴 찻잎은 우전(雨前)이라 하여 맛이 좋고 부드러우며 향기가 좋아 최상급의 차(茶)로 선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선비나 고관들의 취향(趣向)을 충족하기 위해 가혹한 차세(茶稅)를 부과하고, 이를 충당하기 위해 백성들이 차밭을 일구고, 야생차를 채취하기 위해 험준한 산야를 헤매는 등 고통을 받았다. 고려말의 선비인 이규보(李奎報) 선생은 차(茶)를 매우 좋아하였으나 한갓 신선놀음에 불과한 선비들의 취향을 위해 백성들이 고통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차밭을 모두 불태워야 한다고 하였다. 곡우(穀雨)를 맞아 이규보(李奎報) 선생의 차(茶)에 대한 예찬과 백성들의 고충을 생각하며, 같은 운자(韻字)를 써서 지은 시 몇 편을 연속으로 올린다.
雲峯住老珪禪師 得早芽茶示之 予目爲孺茶 師請詩爲賦之 李奎報
운봉주노규선사 득조아다시지 여목위유다 사청시위부지 이규보
운봉에 사는 노규 선사가 조아다를 얻어 내게 보이며 유다라 이름을 붙이고 시를 청하기에 지어 주다.
人間百味貴早嘗 인간백미귀조상
인간이 온갖 귀한 맛 일찍 보게 하려고
天肯爲人反候氣 천긍위인반후기
하늘이 사람을 위해 절후를 바꾸어 주네
春榮秋熟固其常 춘영추숙고기상
봄에 자라고 가을에 익는 것이 당연하고
苟戾於此卽爲異 구려어차즉위이
진실로 이에 어긋난다면 기이한 일이네
邇來俗習例好奇 이래속습예호기
근래의 습속은 기이한 사례를 좋아하니
天亦隨人情所嗜 천역수인정소기
하늘 또한 인정이 즐기는 것을 따르려고
故敎溪茗先春萌 고교계명선춘맹
시냇가의 찻잎을 이른 봄에 싹트게 하여
抽出金芽殘雪裏 추출금아잔설리
황금처럼 노란 싹이 잔설 속에 자라났네
南人曾不怕髬髵 남인증불파비이
남녘 사람 이에 맹수도 두려워하지 않고
冒險衝深捫葛虆 모험충심문갈류
위험을 무릅쓰고 칡덩굴을 휘어잡으면서
辛勤採摘焙成團 신근채적배성단
열심히 따서 불에 덖어 덩어리로 만들어
要趁頭番獻天子 요진두번헌천자
가장 먼저 임금님께 올리려는 물건인데
師從何處得此品 사종하처득차품
선사는 어디에서 이런 물건을 얻었는지
入手先驚香撲鼻 입수선경향박비
손에 넣으니 향기가 코를 찔러 놀랍구나
塼爐活火試自煎 전로활화시자전
벽돌 화로에 불을 피워서 몸소 달여서
手點花瓷誇色味 수점화자과색미
꽃무늬 잔에 따르니 색과 맛을 자랑하네
黏黏入口脆且柔 점점입구취차유
입에 넣을 때 들어붙는 맛이 부드러우며
有如乳臭兒與稚 유여유취아여치
어린아이에서 나는 젖 냄새 비슷하구나
朱門璇戶尙未見 주문선호상미견
고관대작과 부잣집에서도 볼 수 없는데
可怪吾師能得致 가괴오사능득치
우리 선사가 이를 얻었으니 이상하구나
蠻童曾未識禪居 만동증미식선거
만동이 아직 선사 거처를 알지 못할텐데
雖欲見餉何由至 수욕견향하유지
누가 어떻게 차를 보냈는지 알고 싶구나
是應蘂闥九重深 시응예달구중심
이는 당연히 구중의 대궐 깊은 곳에서
體貌禪英情禮備 체모선영정예비
선사의 체모에 정으로 보낸 예물이겠지
愛惜包藏不忍啜 애석포장불인철
차마 마시지 못하고 아끼고 간직하다가
題封勅遣中使寄 제봉칙견중사기
임금의 하사품을 중사를 시켜 보내오니
不分人間無賴客 불분인간무뢰객
세상 분별하지 못하고 떠도는 나그네가
得嘗況又惠山水 득상황우혜산수
더군다나 또한 혜산수까지 맛을 보았네
平生長負遲暮嗟 평생장부지모차
평생을 늙어가며 불우함을 탄식했는데
第一來嘗唯此耳 제일내상유차이
가장 좋은 맛을 본 것은 오직 이뿐이니
餉名孺茶可無謝 향명유다가무사
좋은 유다를 마시고 어찌 사례가 없을까
勸公早釀春酒旨 권공조양춘주지
공에게 맛있는 이른 봄 술 빚기 권하여
喫茶飮酒遣一生 끽다음주견일생
차 마시고 술 마시며 한평생을 보내면서
來往風流從此始 내왕풍류종차시
여기서 오고 가며 풍류놀이 시작해 보세
※老珪禪師(노규선사) : 이규보(李奎報) 선생의 오랜 벗으로 규사(珪師) 규공(珪公)으로 불린다. 이규보(李奎報)와 함께 공부하였으나 출가하였으며, 주로 남원(南原) 운봉(雲峰)에 거주하였다. 이규보(李奎報)보다 10여 세 연장(年長)이라 노규선사(老珪禪師)로 칭하였다.
※早芽茶(조아다) : 이른 봄 일찍 돋아난 잎으로 제조한 차(茶).
※朱門璇戶(주문선호) : 주문(朱門)은 귀족이나 고관대작이 사는 집을 말한다. 귀족의 집 대문을 붉은색으로 칠한 것에서 연유한다. 선호(璇戶)는 옥돌처럼 좋은 집, 즉 부잣집을 의미한다.
※蠻童(만동) : 남쪽 오랑캐의 아이, 미개한 아이라는 의미이나, 여기서는 단순히 가동(家童)이나 사동(使童)의 의미로 쓰인 듯하다.
※惠山水(혜산수) : 혜산천(惠山泉)의 물을 말한다. 혜산(惠山)은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있는데, 그곳의 샘물이 맛이 좋아 주민들이 술을 빚어 혜천주(惠泉酒)라 하고, 차를 달이면 그 맛이 일품이라 한다.
※遲暮(지모) : 점차 나이가 들어 늙어감. 만년. 황혼. 늘그막.
*이규보(李奎報,1168~1241) : 고려 의종 때의 대문장으로 활약한 고려의 문신.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지헌(止軒) 삼혹호 선생(三酷好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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