蓬萊 楊士彦 詩와 글씨

蓬萊 楊士彦 방을 열면서.....

-수헌- 2018. 8. 8. 16:16

이 방은 蓬萊 楊士彦 公의 시와 글씨를 감상하면서 蓬萊公의 작품세계와 그의 사상등을 생각해 보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蓬萊公은 잘 아시다 시피 조선 중기의 관료이자 시인 묵객으로써 잘 알려진 분입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는 시조 태산가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모르는 이가 없고,

안평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4대 서예가로 일컬어지며, 해서(楷書)와 초서(草書)에 뛰어났고 특히 큰 글자를 잘 썼다고 전해지며, 문집으로 봉래집(蓬萊集)이 있습니다.

아우 양사준(楊士俊),양사기(楊士奇)와 함께 글에 뛰어나 중국 송나라의 소순, 소식,소철의 3부자(삼소:三蘇)에 견주어졌으며, 아들 양만고(楊萬古)도 문장과 서예로 이름이 전해져 옵니다.

송나라 삼소의 소식은 호가 동파(東坡)로써 우리가 익히 아는 소동파입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전해지는 작품이 얼마 되지 않으며, 에 대한 연구도 얼마 되지 않은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蓬萊公의 작품에 대한 평가와 해석도 썩 명확하지 못한 면이 많고, 의 행적등도 야사에 근거한 설화가 많이 전해 옵니다.

양사언설화의 출생 과정을 이야기한 것으로서, 계서야담2, 청구야담(靑丘野談)·해동야서(海東野書)·동야휘집(東野彙輯)·기문총화(記聞叢話)·선언편(選諺篇)에 각각 1편씩 수록되어 있습니다.

은 명종조에 진사에 뽑히고, 1546년에 별시에 급제하여 안변 도호부사를 지내는 등 40여년을 봉직하였으나 워낙 청렴하여 사후에 가족에 남겨진 재산이 전혀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자연과 산수를, 특히 금강산을 좋아하여 호를 금강산의 별칭인 蓬萊로 하였으며, 금강산 만폭동, 동해 두타산 무릉계곡, 포천의 선유담, 금수정, 강원도 평창 등 여러 곳에 의 친필 암각서가 전해집니다.

또한 작품으로 본 의 성품은 다정 다감한 편으로 앞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주요 포인트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의 글씨나 시 등 작품을 인터넷에 나도는 형식적인 해석보다 제 나름대로 해석해 올릴 예정이나, 혹 다른 의견이나 잘못된 점이 보이면 지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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