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除夕次東坡詩 (제석차동파시) - 黃玹 (황현)

-수헌- 2024. 1. 25. 17:49

除夕次東坡詩 三首   제석차동파시 삼수     黃玹   황현  

섣달그믐 밤에 동파의 시에 차운하다 3수

 

饋歲   궤세

歲暮雪巷深 세모설항심

한 해 저무는 거리엔 눈이 깊이 쌓이고

話愁無人佐 화수무인좌

시름을 말하려 하니 곁에 사람이 없네

此時一跫音 차시일공음

이때에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 들리니

可敵兼金貨 가적겸금화

쌓인 금화의 가치에 대적할 만하구나

 

況復勤饋遺 황부근궤유

하물며 전해 줄 음식까지 가져왔으니

物細誼則大 물세의칙대

물품은 미미하지만 그 의로움은 크구나

縱有報謝勞 종유보사로

비록 사례하는 일이 다소 힘들지 마는

不嫌妨高臥 불혐방고와

높이 누워 있음을 방해해도 싫지 않아

 

爛熳村夫子 란만촌부자

시골 마을 선생이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顚倒爲虛座 전도위허좌

엎어질 듯이 빈자리로 모셔 들이는구나

我家有肥羜 아가유비저

우리 집에는 살진 새끼 양도 있고

霍霍刀新磨 곽곽도신마

칼도 새로 번쩍번쩍 갈아 두었으니

 

勿吝坐須臾 물린좌수유

잠깐 앉았다 가는 걸 사양하지 말고

共飽今夕過 공포금석과

오늘 저녁 함께 배불리 먹으며 보내세

卽此足人情 즉차족인정

이 정도이면 인정이 충분할 것이니

孰謂余寡和 숙위여과화

누가 나더러 대접이 소홀하다 하겠는가

 

※ 饋歲(궤세) : 세모에 서로가 방문하여 선물을 주며 대접하는 풍습. 饋는 선물을 말한다.

 

 

別歲   별세

一年常如此 일년상여차

한 해가 항상 이와 같이 가 버리니

百年寧復遲 백년녕부지

백 년인들 어찌 다시 더디게 갈까

金丹未必無 금단미필무

금단이 반드시 없지는 아닐 것이나

少壯諒難追 소장량난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구나

 

睠彼送人者 권피송인자

사람을 떠나보내는 저들을 보면

望斷返自涯 망단반자애

어쩔 수없이 물가에서 돌아오는데

人生歡樂日 인생환락일

인생에 있어서 기쁘고 즐거운 날은

莫如飮酒時 막여음주시

술 마시는 그 때라고 하지 말게

 

窮村猶歲味 궁촌유세미

오히려 궁촌이 세모의 맛이 있어

肴核家家肥 효핵가가비

집집마다 안줏거리가 풍성하여

薰然醉爲泥 훈연취위니

곤드레가 되도록 얼근하게 취하니

焉知流年悲 언지류년비

세월 흘러가는 슬픔을 어찌 알랴

 

霜鬢難自見 상빈난자견

흰 귀밑털을 스스로 볼 수 없으니

盃到君莫辭 배도군막사

술잔이 이르면 그대는 사양치 마오

吾曹俱已老 오조구이로

우리들은 이미 함께 늙어버렸으니

紅顔醒便衰 홍안성편쇠

술 깨면 불그레한 얼굴이 늙었을 거야

 

※別歲(별세) : 제야에 집안 식구들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며 밤을 밝히는 풍습.

 

※金丹(금단) : 신선이 만든다는 장생불사의 환약.

 

※望斷(망단)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처지가 딱함.

 

 

守歲   수세

心勞不濟事 심로불제사

마음만 애쓰고 일은 이루지 못하고

畫足終非蛇 화족종비사

발을 그렸으니 결국 뱀이 아니구나

歲去豈容守 세거기용수

가는 세월을 어찌 막을 수 없으니

如眼以鏡遮 여안이경차

거울 속의 눈을 가린 것과 같구나

 

定知古人語 정지고인어

옛사람의 말씀을 분명히 알겠으나

亦出無奈何 역출무내하

어찌할 수 없는 곳으로 나가는구나

漸老童穉厭 점로동치염

늙어 갈수록 아이들이 싫어하여

獨坐誰與譁 독좌수여화

홀로 앉아서 누구와 같이 얘기할까

 

血衰眠易警 혈쇠면역경

혈기가 약해져서 졸다가 잘 놀라니

兀若戒捶撾 올약계추과

종아리 맞을 걱정 하듯 위태롭구나

譬彼盞中燈 비피잔중등

비유하자면 저 등잔의 등불 같아서

油減挑還斜 유감도환사

기름 줄면 심지 돋워도 다시 기우네

 

萬事須及早 만사수급조

만사는 마땅히 일찍 서둘러야 하니

回首便蹉跎 회수편차타

고개 돌리는 사이에 어그러지는구나

寄謝紅塵子 기사홍진자

속세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 전하니

少年安可誇 소년안가과

젊은 시절이 어찌 자랑할 만할까

 

※ 守歲(수세) : 제야에 자지 않고 날을 밝히는 풍습.

 

※ 畫足終非蛇(화족종비사) : 전국책 제책(齊策)에 나오는 사족(蛇足)의 고사에서 뱀의 발을 그리다가 기회를 놓친 것처럼, 쓸데없는 일로 시기를 놓치고 일을 그르쳤음을 의미한다.

 

※ 이 시는 소식(蘇軾)의 시 궤세(饋歲) 별세(別歲) 수세(守歲)의 세수[三首]를 차운하였는데 원운은 예전에 이 카테고리에 소개한 바 있다.

< https://yjongha.tistory.com/189 >

 

*황현(黃玹,1855~1910) : 개항기 매천집, 매천시집, 매천야록 등을 저술한 문인. 시인, 열사.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나라를 빼앗기자 통분해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