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雪後次舍弟韻 (설후차사제운) - 張維 (장유)

-수헌- 2024. 1. 23. 16:55

雪後次舍弟韻   설후차사제운     張維   장유

눈이 온 뒤에 동생의 시에 차운하다

 

急雪連昏曉 급설련혼효

저녁부터 새벽까지 쏟아진 폭설이

遙山遞晦明 요산체회명

먼 산의 어두움이 밝게 바뀌더니

乾坤初霽色 건곤초제색

비로소 눈이 개니 천지가 일색이고

林壑轉寒聲 임학전한성

숲 골짜기에 찬바람 소리만 구르네

凍雀翻還墮 동작번환타

얼어붙은 참새는 날다가 떨어지고

飢鳶噤不鳴 기연금불명

굶주린 솔개는 입 다물고 못 우네

袁安僵臥久 원안강와구

원안선생 쓰러져 누운 지 오래되니

乘興也難行 승흥야난행

감흥에 편승하여 가 보기도 어렵네

 

※袁安僵臥久(원안강와구) : 원안(安袁)은 한(漢) 나라 때 현사(賢士)로 낙양(洛陽)에 큰 눈이 내려 모두 눈을 쓸고 나와서 먹을 것을 구하러 돌아다니는데, 유독 원안의 집 앞에만 눈이 쌓여 있었다. 현령이 원안이 죽은 줄 알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원안이 누워 있었다. 현령이 원안에게 어찌 나와서 먹을 것을 구하지 않느냐고 묻자, 원안은 ‘큰 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고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였다. 이에 현령은 원안을 어진 사람이라고 여겨 효렴(孝廉)으로 천거하였다. 이는 폭설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문밖을 출입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乘興也難行(승흥야난행) : 중국 진(晉) 나라 때 회계(會稽) 사람 왕휘지(王徽之)가 눈 내리는 달밤에 흥에 겨워 섬계(剡溪)에 있는 벗 대안도(戴安道)가 생각나서 작은 배를 타고 찾아갔다가, 정작 그곳에 도착해서는 마침 흥이 다해 돌아왔다고 한 고사에 비유하여, 눈이 내려 흥이 나도 방문하기도 어려움을 표현하였다.

 

夜來大雪 今冬始見 喜成一律 呈畸菴白洲    張維

야래대설 금동시견 희성일률 정기암백주 장유

밤사이에 큰 눈이 내렸는데 올 겨울 들어 처음 보는 광경이라서 기쁜 마음에 시 한 수를 지어 기암과 백주에게 보내다

 

入夜風鳴枯樹枝 입야풍명고수지

밤이 되자 마른나무 가지에 바람이 불더니

窮冬一雪赤堪奇 궁동일설적감기

겨울 끝자락에 첫눈 내리니 또한 기이하네

寒侵老子獨先覺 한침로자독선각

한기 느낀 늙은이는 혼자서 먼저 깨어나도

睡熟小兒都不知 수숙소아도불지

깊이 잠든 어린아이는 아무도 모르는구나

<俗傳小兒不覺雪 豐年之祥 속전소아불각설 풍년지상

세상에서 전하는 말에, 어린아이가 모르는 사이에 눈이 오면 풍년 들 상서로운 징조라 한다.>

滿地江山花爛熳 만지강산화란만

강산과 천지에 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九天宮闕玉參差 구천궁궐옥참차

구중궁궐도 들쑥날쑥한 옥처럼 되었구나

梁園授簡非吾事 양원수간비오사

양원의 서간 받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나

欲得諸公白戰詩 욕득제공백전시

여러 공들과 함께 백전시를 짓고 싶구나

 

※畸菴(기암) : 조선시대 기옹집 기옹만필 등을 저술한 학자 정홍명(鄭弘溟, 1582~1650). 기암(畸菴)은 그의 호이다. 자는 자용(子容), 호는 기암(畸庵) 또는 삼치(三癡).

 

※白洲(백주) : 조선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명한(李明漢, 1595∼1645 ). 백주(白洲)는 그의 호이다. 자는 천장(天章).

 

※梁園授簡(양원수간) : 양원(梁園)은 한(漢) 나라 때 양 효왕(梁孝王)이 조성한 광대(廣大)한 원림(園林)으로 토원(兎園)이라고도 한다. 양 효왕(梁孝王)이 토원(兎園)에서 노닐면서 사마상여(司馬相如)에게 서간을 보내 [授簡] 자신을 위해서 눈에 대한 시를 짓도록 부탁한 고사가 있다. 전하여 왕명(王命)으로 시를 짓는 것을 말한다.

 

※白戰詩(백전시) : 백전(白戰)은 무기 없이 맨손으로 싸우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백전시(白戰詩)는 특정한 어휘의 구사를 금하고 시를 짓게 했던 격식을 말한다. 백전(白戰)은 송(宋) 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처음 시도했던 것으로, 예컨대 눈[雪]에 대한 시를 지을 경우 눈과 관련이 있는 학(鶴) 호(皓) 소(素) 은(銀) 이(梨) 매(梅) 로(鷺) 염(鹽) 등의 어휘의 사용을 금하는 것이다. 뒤에 소식(蘇軾)이 빈객들과 함께 이를 회상하며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의 시 가운데 ‘당시의 규칙을 그대들 준수하라. 맨손으로 싸워야지 무기를 잡으면 안 되네. [當時號令君聽取 白戰不許持寸鐵]’라는 구절이 있다.

 

*장유(張維,1587~1638) : 조선시대 좌부빈객,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 묵소(默所). 이정구(李廷龜) 신흠(申欽) 이식(李植) 등과 더불어 조선 문학의 사대가(四大家)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