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應製賦狎鷗亭四時 (응제부압구정사시) - 姜希孟 (강희맹)

-수헌- 2023. 6. 11. 11:42

應製賦狎鷗亭四時   응제부압구정사시      姜希孟 강희맹 

어명에 따라 압구정 사시를 짓다

 

春日朝回玉輦傍 춘일조회옥련방

봄날 아침에 옥련을 모시고 돌아오는데

乘閑出郭卽滄浪 승한출곽즉창랑

연에 올라 한가히 성을 나서니 곧 창랑이네

北望禁地鶯花老 북망금지앵화로

북쪽 바라보니 궁궐의 봄 풍경은 무르익고

西去澄江襟帶長 서거징강금대장

서쪽으로 맑은 강이 금대처럼 길게 흐르네

白愛圓沙還倚杖 백애원사환의장

둥근 백사장이 좋아 지팡이 짚고 돌아오고

靑怜遠岫屢移床 청령원수루이상

멀리 푸른 봉우리가 예뻐 자주 평상 옮기네

濯纓歌罷無人見 탁영가파무인견

탁영가를 마쳤는데도 보이는 사람은 없고

滿意汀洲杜若香 만의정주두약향

물가의 두약 향기만이 마음에 드는구나

 

阿香推轂輾陰機 아향추곡전음기

아향이 뇌거 바퀴를 밀어 비올 기미 돌더니

江雨飜盆已沒磯 강우번분이몰기

강에 내린 비로 물 넘쳐 이미 강변이 잠겼네

濁浪遙呑平野濶 탁랑요탄평야활

흐린 물결은 아득히 넓은 들판을 삼키었고

盲風低逐暝煙飛 맹풍저축명연비

빠른 바람 낮게 불어 짙은 안개 날려 보내네

時聞鴉櫓尋村過 시문아로심촌과

때로 마을 찾아 지나는 노 젓는 소리 들리고

遠見漁燈傍岸歸 원견어등방안귀

멀리 언덕 곁 돌아가는 고기잡이 등불 보이네

多小倚蓬千里客 다소의봉천리객

멀리서 떠돌다 온 다소의 나그네들이 기대어

醉眠風雨滿簑衣 취면풍우만사의

도롱이가 비바람에 흠뻑 젖어도 취해 잠들었네

 

蒹葭白露夜飛霜 겸가백로야비상

갈대에 흰 이슬 내리고 밤에는 서리 날리는데

捲上簾鉤月轉廊 권상렴구월전랑

발을 걷어 올리니 초승달이 행랑에 흐르는구나

浪靜魚龍眠水府 낭정어룡면수부

고기와 용이 용궁에 잠들어 물결이 고요한데

天寒鷗鷺逗湖光 천한구로두호광

찬 하늘 갈매기와 백로는 호수 빛에 머무르네

安危自信憑雙劎 안위자신빙쌍검

편안과 위태로움은 스스로 믿는 쌍검에 기대고

冷暖還驚饋五漿 냉난환경궤오장

차고 따뜻한 오장을 대접받고 놀라서 돌아왔네

我已忘機人忘我 아이망기인망아

나 이미 속세를 잊고 사람들도 나를 잊었으니

終隨野老也何傷 종수야로야하상

시골 늙은이를 따르지 않은들 어찌 슬프겠는가

 

曉色沈沈鎖凍雲 효색침침쇄동운

언 구름에 잠겨서 새벽빛이 침침하고

山河忽變玉龍紋 산하홀변옥룡문

산하는 홀연 옥룡의 무늬로 변하였네

將身蹔向江湖路 장신잠향강호로

몸이 잠깐 강호의 길로 향하려 하니

浪跡寧同鳥獸群 낭적영동조수군

떠도는 발자취가 금수무리와 같구나

簑笠孤舟新活計 사립고주신활계

도롱이와 삿갓은 새 생활의 계획이요

金章紫綬舊功勳 금장자수구공훈

금장과 자색 인끈은 옛날의 공훈이네

一尊且盡江亭晩 일존차진강정만

항아리 술도 다하고 강 정자는 저무니

雪樹梅花摠不分 설수매화총불분

나무의 눈과 매화꽃도 분별 못 하겠네

 

 

※狎鷗亭(압구정) : 압구정(狎鷗亭)은 세조 때의 권신인 한명회(韓明澮)의 별장이었다. 한명회는 ‘강가에서 살며 갈매기와 노닌다.’는 뜻의 압구(狎鷗)를 호로 삼고, 별장의 이름을 압구정(狎鷗亭)이라 하였다. 1484년(성종 15)에 한명회가 그의 나이 70세로 궤장(机杖)을 하사 받고 물러나 압구정에서 여생을 보낼 때 성종이 친히 압구정 시를 지어 내렸고, 조정의 여러 문사들도 어제(御製)에 화운(和韻)하여 수백 편의 시가 쓰였다고 전한다.

 

※玉輦(옥련) : 옥련(玉輦)은 련(輦)을 높여 부르는 말로 임금의 수레를 의미한다. 이 시는 압구정(狎鷗亭)에 임금이 거동하였을 때에 지은 시이다.

 

※禁地(금지) :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禁止)된 땅이란 뜻으로 임금이 거처하는 왕궁을 의미한다.

 

※鶯花(앵화) : 꾀꼬리가 울고 꽃이 피는 것으로 봄날의 정경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봄철의 구경거리를 대표하는 말로 쓰인다.

 

※濯纓歌罷無人見(탁영가파무인견) : 탁영가(濯纓歌)는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서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량의 물이 흐려서 더러우면 내 발을 씻겠다.”는 것을 말하는데, 세상이 깨끗하면 갓을 쓰고 출세해 보고, 세상이 더러우면 발을 씻고 들어앉겠다는 말이다. 여기서는 세상이 깨끗해졌는데도 인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인 듯하다.

 

※阿香(아향) : 전설에 나오는 뇌거(雷車)를 미는 여신[뇌신(雷神)]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녀가 뇌거(雷車)를 밀면 큰 우렛소리와 함께 비가 온다고 한다.

 

※水府(수부) : 바닷속에 있다는, 물을 맡아 다스리는 용왕의 궁.

 

※冷暖還驚饋五漿(냉난환경궤오장) : 오장(五漿)은 다섯 집에서 차를 대접한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에 열자(列子)가 제(齊) 나라에 가다가 도중에 돌아왔는데, 백혼무인(伯昏暓人)이 왜 돌아왔느냐고 묻자, ‘내가 길을 가다가 열 집에서 차를 사 마셨는데, 이중 다섯 집에서는 사기도 전에 먼저 대접해 주었다. [吾嘗食於十漿 而五漿先饋] 그래서 놀라서 돌아왔다’고 했다. 이는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라는 의미이다.

 

※簑笠孤舟(사립고주) : 대자연에 묻혀 사는 편안함을 의미한다.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의 시 강설(江雪)에 ‘외로운 배에 도롱이 삿갓 쓴 노인, 홀로 낚시하는 추운 강에 눈이 내리네. [孤舟簑笠翁(고 주사립 옹) 獨釣寒江雪(독조한강설)]라는 표현이 있다.

 

※金章紫綬(금장자수) : 금으로 된 인장과 붉은색의 인끈으로,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전하여 고관대작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압구정의 주인인 한명회(韓明澮)를 찬양한 말이다.

 

*강희맹(姜希孟,1424~1483) : 조선전기 예조정랑, 이조참의, 진헌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 운송거사(雲松居士) 국오(菊塢) 만송강(萬松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