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董戎樓四時 (동융루사시) - 金宗直 (김종직)

-수헌- 2023. 5. 17. 11:35

董戎樓四時 用鄭觀察使文炯 失一首    동융루사시 용정관찰사문형 실일수      金宗直 김종직

동융루의 사계절에 대하여 지으면서 관찰사 정문형의 운을 쓰다 

 

翛翛苦竹鵓鴣鳴 소소고죽발고명

참 대밭에 바람 불고 비둘기 울어대니

春思撩人晩倚楹 춘사료인만의영

봄 생각에 마음 설레 기둥에 기대섰네

又見海門花似錦 우견해문화사금

다시 보니 해문에 꽃이 비단과 같으니

未妨賓幕酒爲名 미방빈막주위명

빈막을 주막으로 이름 해도 무방하겠네

雲迷荒戍艅艎集 운미황수여황집

구름 낀 거친 병영에 배들이 모여들고

草膩平原組練明 초니평원조련명

풀 무성한 평원에는 병사들이 질서 있네

縱有龍韜何處試 종유룡도하처시

비록 병법이 있다 한들 어디에 시험할까

維城況復作長城 유성황부작장성

더구나 왕실에서 다시 장성을 쌓았으니

 

鸝庚怕熱寂無鳴 이경파열적무명

꾀꼬리도 더위 두려워 울지 않아 고요하고

海口淸風滿畫楹 해구청풍만화영

해구의 청풍이 화려한 기둥에 가득 부네

已喜泛蓮能却暑 이희범련능각서

이미 물에 뜬 연이 더위 물리쳐 기뻤지만

須知學劍不邀名 수지학검불요명

마땅히 검술 공부는 명성 바란 게 아니네

蟹螯洲上遊人鬧 해오주상유인료

게들의 모래섬엔 노는 사람들로 시끄럽고

鴈鶩池邊返照明 안목지변반조명

안목지 주위에는 석양이 밝게 되비치는데

醉罷碧筩仍極目 취파벽용잉극목

벽통주에 취하고 나서 먼 곳을 바라보니

歸鴉閃閃度層城 귀아섬섬도층성

저녁 까마귀 번쩍이며 높은 성을 지나가네

 

匣裏靑蛇夜夜鳴 갑리청사야야명

칼집 속의 청사검은 밤마다 울어대는데

幾將雙手拍軒楹 기장쌍수박헌영

몇 번이나 두 손으로 기둥 난간 쳐야 하나

三冬雪案誰談道 삼동설안수담도

삼동의 차가운 책상에서 누가 도를 말하나

二載轅門自竄名 이재원문자찬명

이년 동안 군문에서 스스로 이름을 숨겼네

愛日微烘梅萼動 애일미홍매악동

살며시 햇살 쬐어 매화 봉오리가 깨어나고

獰飆亂颭海濤明 영표란점해도명

모진 바람 어지러이 파도를 크게 일으키네

若爲渴盡黿鼉窟 약위갈진원타굴

어찌하면 자라 악어 소굴을 다 없애버리고

直取扶桑作外城 직취부상작외성

곧장 부상을 취하여 바깥 성으로 만들까

 

※董戎樓(동융루) : 옛날 울산(蔚山)의 좌도병마절도사영(左道兵馬節度使營) 영내에 있던 누각.

 

※鄭文炯(정문형, 1427~1501) : 조선전기 경상도순변사, 판중추부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명숙(明叔), 호는 야수(野叟).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의 증손이다.

 

※海門(해문) : 나라와 나라 사이 해로를 이용한 교섭과 교류가 이루어질 때 마지막 기착지를 의미한다. 울산이 예로부터 해문의 역할을 하였다.

 

※龍韜(용도) : 병법서(兵法書)인 무경칠서(武經七書)중 육도(六韜)의 세 번째, 육도(六韜)는 문도(文韜), 무도(武韜), 용도(龍韜), 호도(虎韜), 표도(豹韜), 견도(犬韜)의 6권으로 되어 있다. 제목의 도(韜)는 칼이나 활 등을 넣어 두는 주머니를 말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지혜를 담고 있는 여섯 주머니’, ‘여섯 가지 비책’ 등으로 해석되며 여기서는 병법 정도로 이해된다.

 

※維城(유성) : 황자(皇子;왕실의 큰아들)를 뜻하는 말이다. 전하여 왕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경의 ‘종자는 나라의 성이다.〔宗子維城〕’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已喜泛蓮能却暑(이희범련능각서) : 범련(泛蓮)은 훌륭한 막료(幕僚)로 등용됨을 이른다. 진(晉) 나라 때 유고지(庾杲之)가 재상 왕검(王儉)의 막료가 되었을 때 소면(蕭緬)이 왕검에게 유고지(庾杲之)의 인품을 칭찬하며 ‘푸른 물에 떠서 연꽃에 의지한 것[泛綠水依芙蓉]과 같다.’ 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여름을 주제로 한 시이기에 이미 등용되어 공을 세웠음을 더위와 연결 지었다.

 

碧筒州(벽통주) : 삼국(三國) 시대 위(魏) 나라 정각(鄭慤)이 삼복(三伏)에 피서(避暑)를 하면서 연잎(蓮葉)에다 술 석 되를 담아서 잠(簪)으로 연잎의 줄기를 찔러서 마시면 술 향기가 맑고 시원하다 하였는데, 그것을 벽통주(碧筒州)라 하였다.

 

※靑蛇劍(청사검) : 한 고조(漢高祖)의 보검으로, 그는 이 검으로 백사(白蛇), 곧 진 시황을 멸하였다 한다.

 

※直取扶桑作外城(직취부상작외성) : 부상(扶桑)은 원래 동쪽 바다의 해 돋는 곳을 말하는데, 전하여 여기서는 일본(日本)을 가리킨다. 이 시는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이 경상도 순변사를 지낸 정문형의 시를 차운하며,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라는 염원을 담았다. 앞 구절의 원타굴(黿鼉窟)도 일본을 의미한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 : 조선 초기의 문신, 학자, 서예가이며, 승정원 도승지, 예문관제학, 이조참판,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과 경술(經術)에 뛰어나 이른바 영남학파의 종조(宗祖)가 되었으며,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사후인 1498년의 무오사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무오사화 당시 부관참시를 당했으며, 많은 제자가 죽임을 당했고, 이때 그의 수많은 저서가 불태워졌다. 중종 때 신원(伸寃)되고, 숙종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