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孔氏漁村四時 (공씨어촌사시) - 李稷 (이직)

-수헌- 2023. 6. 5. 18:51

孔氏漁村四時 孔伯恭別墅    공씨어촌사시 공백공별서     李稷 이직 

공씨어촌의 사시가 공백공의 별장에서

 

春江水淸滑 춘강수청활

봄날 강의 물이 맑게 흐르고

碧草滿汀洲 벽초만정주

푸른 풀이 물가에 가득하구나

伯恭愛閑曠 백공애한광

백공은 한가로움을 좋아하여

盡日垂釣鉤 진일수조구

종일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네

有時搖桂楫 유시요계즙

때때로 계수나무 노를 저어서

放歌月中遊 방가월중유

달빛 속에 놀면서 노래 부르네

歌聲徹寥廓 가성철요곽

노랫소리 쓸쓸히 울려 퍼지면

雲物爲遲留 운물위지류

구름도 느릿느릿 머무는구나

陶然此爲樂 도연차위악

이렇게 느긋하게 즐거움 삼으니

富貴非所求 부귀비소구

부귀영화 찾을 일이 아니로구나

 

柳陰密成幄 류음밀성악

버들 그늘이 빽빽하게 장막을 이루고

黃鳥送好音 황조송호음

꾀꼬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네

幅巾步回渚 폭건보회저

복건을 쓰고 물가를 돌아서 걸으니

沙白水淸深 사백수청심

모래는 희고 물은 맑고도 깊구나

問君何爲者 문군하위자

묻노니 그대는 어떠한 사람이기에

不受世紛侵 불수세분침

세속의 어지러운 침노를 받지 않는가

潔身富春志 결신부춘지

부춘산의 마음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

濟世磻溪心 제세반계심

반계의 마음으로 세상을 구제하려네

乾坤一竿竹 건곤일간죽

천지간에 낚싯대 하나로 살아가니

氣味古猶今 기미고유금

그 뜻과 기개가 예나 지금이 같구나

 

士有早聞道 사유조문도

선비가 일찍 도에 대하여 들으면

瑩潔此心虛 형결차심허

밝고 깨끗하게 마음을 비운다네

經濟豈無策 경제기무책

경세제민에 어찌 계책이 없으랴만

在天吾焉如 재천오언여

하늘에 달렸으니 내가 어찌할까

放懷穹壤間 방회궁양간

하늘땅 사이에 마음을 풀어놓고

逍遙江海居 소요강해거

강과 바다에 거주하며 거니는구나

淸商動萬里 청상동만리

맑은 가을바람 만 리에 불어오니

蒲柳影凋疏 포류영조소

창포와 버들 모습도 시들어 버렸네

紉蘭以爲佩 인란이위패

난초를 꼬아서 노리개로 삼더라도

蓴鱸不願餘 순로불원여

농어회 순챗국 말고 더 바라지 않네

 

生平厭喧鬧 생평염훤료

평생을 소란하고 시끄러움이 싫어서

寄迹漁村中 기적어촌중

어촌에 잠시 몸을 의탁하여 살았네

偃息蓬窓下 언식봉창하

오두막집에 쓰러져서 살고 있으나

歲暮淸江空 세모청강공

맑은 강에 해가 저무니 쓸쓸하구나

興來時獨釣 흥래시독조

흥이 일어 때때로 홀로 낚시질할 때

飛雪隨輕風 비설수경풍

가벼운 바람 따라 눈발이 날아오네

天寒龍正蟄 천한룡정칩

날씨가 추워서 용마저 숨어 버리고

逝者自流東 서자자류동

강물도 절로 동쪽으로 흘러가는구나

料應眞眞趣 요응진진취

진실로 진정한 흥취를 알려고 하면

觀物觀始終 관물관시종

사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하리

 

※孔漁村(공어촌) : 조선전기 전의부령 예조총랑 집현전태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도교인인 공부(孔俯, ?~1416).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동하였으며, 백공(伯恭)은 자, 어촌(漁村)은 호이다. 1376년(우왕2)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명필로 이름을 날렸다.

 

※陶然(도연) : 흐뭇하다. 편안하고 즐겁다. 느긋하다.

 

※富春(부춘) : 부춘산(富春山). 부춘산(富春山)은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산으로 한(漢) 나라 때 엄광(嚴光)이 낚시를 하며 은거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부춘산의 마음은 엄광(嚴光)처럼 세속을 떠나 은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磻溪心(반계심) : 반계(磻溪)는 중국 섬서성(陝西省)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으로, 강 태공(姜太公)이 이곳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주 문왕(周文王)을 만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반계심(磻溪心)이란 강 태공처럼 때를 기다리며 세상을 구원할 포부를 의미한다.

 

※氣味古猶今(기미고유금) : 이 시의 주인공인 공부(孔俯)를 중국의 엄광(嚴光)이나 강 태공(姜太公)에 비유하여 칭송하고 있다.

 

※蓴鱸(순로) : 순채국과 농어회를 말한 것으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말한다. 진(晉) 나라 때 문인(文人) 장한(張翰)이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고향인 강동(江東)의 순챗국과 농어회를 생각하면서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중하거늘, 어찌 수 천리 타관에서 벼슬하여 명작(名爵)을 구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蓬窓(봉창) : 쑥대로 엮은 허름한 집. 창밖에 쑥이 무성하게 뒤덮인 허름한 집.

 

※逝者自流東(서자자류동) : 逝者(서자)는 직역하면 가는 사람이란 뜻이나, 여기서는 인생이나 세월을 의미한다. 논어(論語)에 공자(孔子)께서 시냇가에 서 계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가는 것이 이 물과 같아서 밤낮을 그치지 않는구나.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는 구절이 있다.

 

*이직(李稷,1362~1431) : 조선전기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우정(虞庭), 호는 형재(亨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