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宮中四景集句 (궁중사경집구) - 林惟正(임유정)

-수헌- 2023. 1. 7. 20:19

이 시는 고려시대의 문신인 임유정(林惟正)집구시(集句詩)로서 궁중의 사계절 경치를 표현하였다. 집구시(集句詩)는 자기가 지은 시(詩)가 아니고 여러 사람의 작품에서 한 구(句)씩 떼어 모아서 적당하게 맞추어 만든 것인데, 진(晋) 나라 부함(傅咸)이 경전(經典)의 구(句)를 모아 만든 집경시(集經詩)가 시초라고 한다. 그 뒤로 송나라 석연년(石延年) 왕안석(王安石) 문천상(文天祥) 등이 두보(杜甫)의 시에서 집구한 집두시(集杜詩)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의 임유정(林惟正) 조선의 김시습(金時習)등 다수의 문인들의 집구시가 전해온다. 여러 사람의 시에서 한 구절씩 따 와서 새로운 시를 만들기 때문에 수많은 시인의 많은 작품을 알아야 하고, 운자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창작 이상의 예술 혼이 담겨야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창작이 아니기 때문 문학적 재능을 나타낼 수는 있으나 진정한 문학의 본령은 아니라고 평하기도 한다.

 

 

宮中四景集句 궁중사경집구      林惟正 임유정 

궁중의 사계절 경치를 집구하다

 

春 봄

上林花掩映 상림화엄영 왕우칭(王禹稱)

상림원이 온통 꽃으로 가리워지니

化國日舒長 화국일서장 호진유(胡眞儒)

해도 길어지고 나라도 태평해지네

風暖鳥聲碎 풍난조성쇄 두순학(杜荀鶴)

따스한 바람에 새소리 수다스럽고

泥新燕影忙 니신연영망 백낙천(白樂天)

새 진흙 나르는 제비 모습 바쁘네

輕輿臨大掖 경여림대액 진숙달(陳叔達)

가벼운 수레로 대액지에 행차하고

步輦御披香 보련어피향 왕관의(王官儀)

보련을 타고 피향정으로 납시네

聖藻懸宸想 성조현신상 최식(崔湜)

임금님의 시상을 대궐에 내 거니

詩無入俗章 시무입속장 반랑(潘閬)

속된 문장이 들어간 시가 없구나

 

 

夏 여름

氷盤消酷暑 빙반소혹서 장자방(張子房)

소반에 담긴 얼음으로 모진 더위를 씻고

輦路挾垂楊 연로협수양 양사도(楊師道)

어연 다니는 길에는 수양버들 늘어졌네

林熱鳥開口 임열조개구 두보(杜甫)

무더운 숲에는 새들이 입을 벌리고

雲披月吐光 운피월토광 왕철(王鐵)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빛을 토해내네

新衣裁白紵 신의재백저  (賈島)

흰모시로 새 옷을 지어 입었는데도

薄汗染紅粧 박한염홍장 이덕유(李德裕)

분홍빛 화장에 엷은 땀이 배어드네

何處添佳景 하처첨가경 승 무본(僧 無本)

더 아름다운 경치가 어디 있는지

南風草樹香 남풍초수향 백낙천(白樂天)

훈훈한 남풍에 초목이 향기롭구나

 

秋 가을

秋晩岳增翠 추만악증취 사마원(司馬元)

가을이 저물어도 산은 더욱 푸르니

俄符聖壽長 아부성수장 장방(蔣防)

갑자기 성수가 길어질 조짐이구나

錦衣盤鸑鷟 금의반악작 황희(黃晞)

비단 옷 바탕에 봉황새를 수놓았고

珠殿鎖鴛鴦 주전쇄원앙 이백(李白)

주옥 궁전에는 원앙새가 갇히었네

摵摵風驚竹 색색풍경죽 조조(曹組)

바스락거리는 바람에 대가 놀라고

圑圑月隱墻 圑圑월은장 두보(杜甫)

둥근 달은 담장 뒤에 숨는구나

瓊筵承湛露 경연승담로 왕유(王維)

좋은 연회에서 담로를 받드니

御酒菊逾黃 어주국유황 송지문(宋之問)

어주의 누런 국화 빛 더욱 짙구나

 

※聖壽(성수) : 임금님의 나이나 수명을 높여 이른 말.

※湛露(담로) : 시경(詩經)의 편명(篇名)인데, 천자(天子)가 제후(諸侯)와 연회(宴會)하는 시이다. 가득히 내린 이슬이란 뜻이나, 전하여 군주(君主)의 깊은 은혜를 말한다.

 

冬 겨울

寒日臨淸晝 한일림청주 장정원(張政元)

날은 춥고 맑은 대낮이 되니

苔亁着夜霜 태건착야상 유개(柳開)

밤에 내린 서리에 이끼도 말랐네

嚴風生北戶 엄풍생북호 위야(魏野)

모진 바람이 북쪽 문으로 들어오고

晩景麗東墻 만경려동장 사과(謝薖)

동쪽 담장에 저녁 햇빛이 곱구나

地暖梅先發 지난매선발 양미지(楊薇之)

땅이 따스하니 매화가 먼저 피고

更疏漏正長 경소루정장 송지문(宋之問)

이따금씩 물시계 소리가 길어지네

一承黃竹詠 일승황죽영 이예(李乂)

오로지 황죽가를 이어받으시니

銀漢洒宸章 은한쇄신장 양거원(楊巨源)

임금님 시에 은한이 뿌린 듯하네

 

※黃竹詠(황죽영) : 황죽가(黃竹歌). 주목왕(周穆王)이 겨울에 황대(黃臺)에서 놀며 사냥하다가 날이 몹시 추워 얼어 죽은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애절한 뜻을 황죽가(黃竹歌)를 지어서 백성을 불쌍히 여겼다 한다.

 

*임유정(林惟正,생몰연대 미상) : 고려시대 녹사, 국자감좨주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집구체(集句體)의 시를 잘 지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그의 문집이나 동문선에도 집구시(集句詩)만이 뽑혀 있고 순수하게 자신이 지은 시는 한편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