蓬萊 楊士彦 詩와 글씨

金水亭 詩板 3

-수헌- 2022. 1. 11. 12:10

금수정(金水亭)의 본래 이름은 우두정(牛頭亭)이다. 고려 말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은 지금의 금수정이 있는 자리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그 주변을 우두연(牛頭淵)이라고 불리었다. 척약재(惕若齋)의 아들 김명리가 은퇴 후 아버지를 기려 이곳에 정자를 짓고 우두정(牛頭亭)이라 하였는데,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이 정자를 금수정이라 이름했다. 그런 연유로 이 정자를 찾은 문인들이 우두정 또는 우두연이라는 시제로 시를 지었고 일부가 금수정에 시판으로 남아 있다.

 

永平牛頭淵 영평우두연      漢陰 李德馨 한음 이덕형

 

野闊暮光薄 야활모광박

들판은 넓어서 저녁 빛이 옅고

水明山影多 수명산영다

물은 맑아서 산 그림자가 많네

綠陰白煙起 녹음백연기

녹음 속에서 흰 연기가 일어나고

芳草兩三家 방초양삼가

방초 사이에 두어 채 집이 있네

 

※이 시는 한음 이덕형이 열 살 즈음에 외삼촌을 따라 포천 외가에 갔다가 봉래 양사언을 만나 주고받은 시인데 양사언이 탄복하여 “너는 나의 상대가 아니라 스승이로구나.”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덕형(李德馨,1561~1613) : 조선시대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 쌍송(雙松) 포옹산인(抱雍散人).

 

 

牛頭亭 우두정      東州 李敏求 동주 이민구

 

碧樹牛頭北 벽수우두북

푸른 나무숲 우두정 북쪽에 있고

秋風馬首東 추풍마수동

가을바람 말머리 동에서 불어오네

重來傷歲換 중래상세환

다시 오니 바뀐 세월에 아프고

久坐惜亭空 구좌석정공

빈 정자가 가여워 오래 앉았네

 

水冷煙霏歇 수랭연비헐

물은 차고 피어나던 안개 걷히니

林疏日氣通 림소일기통

숲이 트이고 햇살이 환히 비치어

仍將桃竹杖 잉장도죽장

이에 도죽장을 짚으려 하니

暫映菊花叢 잠영국화총

별안간 국화 무더기가 흐릿해지네

 

桃竹杖(도죽장) : 도죽(桃竹)이란 대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말한다. 도죽(桃竹)은 사천(四川)에서 나는 종죽(棕竹)을 말하며 도지죽(桃枝竹)이라고도 한다. 두보(杜甫)가 장유후(章留後)로부터 도죽장 두 자루를 선물 받고 지은 桃竹杖引贈章留後(도죽장인증장유후)라는 시가 있다.

 

*이민구(李敏求,1589-1670) : 조선시대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지봉 이수광의 아들이다.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州), 관해(觀海).

 

 

 

牛頭亭 우두정     象村 申欽 상촌 신흠

 

携酒遠相送 휴주원상송

서로 멀리 보내고자 술을 가지고

牛頭潭上亭 우두담상정

우두연 물가의 정자에 오르니

淵源河內學 연원하내학

정자(程子)의 성리학이 근원이 되고

詩禮濟南生 시례제남생

시경과 예기는 제남생일세

 

晩水如鷗白 만수여구백

해 질 녘 물가는 갈매기처럼 희고

遙山與眼靑 요산여안청

눈길 주는 먼 산은 푸른빛일세

悠悠千古調 유유천고조

멀고 먼 천고 옛적의 가락으로

留取歲寒情 류취세한정

세한의 정을 남겨두고자 하네

 

河內學(하내학) : 하내(河內)는 중국 황하 이북지방으로 송나라 이학(理學)의 태두인 정이(程頤; 程子라고 불림) 출생지임. 따라서 하내학은 정이(程頤)의 학파를 말함.

濟南生(제남생) : 제남(濟南) 지방의 명유(名儒) 복생(伏生). 한(漢) 문제(文帝) 때 진시황(秦始皇)이 불태운 경서를 복원할 당시 제남(濟南) 땅의 복생(伏生)이 90이 넘는 나이에도 상서(尙書)를 구술(口述)하여 전하게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신흠(申欽,1566 ~1628) : 조선시대 예조참판, 자헌대부,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경숙(敬叔), 호는 현헌(玄軒) 상촌(象村) 현옹(玄翁) 방옹(放翁).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이 시는 상촌집에 ‘청평에서 돌아오자 문생들이 우두정에서 나를 맞이하여 술자리를 마련하였는데 김 찰방 경직이 함께하였다. 작별하면서 율시 한 수를 주었다 [自淸平還 諸門生邀酌於牛頭亭 金察訪敬直與焉 臨別留贈一律] 진퇴격(進退格)’ 이라는 서문이 있어 단순한 술자리가 아닌 성리학과 시경과 예기를 논하며 정을 나눈 자리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