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시(田園詩)

村居卽事 八首 (촌거즉사 팔수) - 金三宜堂 (김삼의당)

-수헌- 2025. 4. 7. 14:42

村居卽事 八首   촌거즉사 팔수     金三宜堂   김삼의당  

시골에 살면서 여덟 수

 

(1)

比簷茅屋自成村 비렴모옥자성촌

나란히 선 초가집들이 마을을 이루었는데

細雨桑麻晝俺門 세우상마주엄문

가랑비 오니 이웃들이 낮에도 문 닫았네

洞口桃花流水去 동구도화류수거

마을 앞 흐르는 시냇물에 복사꽃 떠가니

却疑身在武陵園 각의신재무릉원

이 몸이 무릉도원에 있는 듯하구나

 

(2)

老樹碨礌偃臥村 노수외뢰언와촌

마을에 쓰러져 누워있는 구부러진 노목은

一身生意半心存 일신생의반심존

한 몸 살고자 하는 마음 반쯤은 남아있네

白頭故老不知種 백두고로부지종

흰머리에 늙었으니 씨 맺을지는 모르지만

閱盡風霜但固根 열진풍상단고근

세상 풍상에 시달려서 뿌리만은 견고하네

 

(3)

老楡連抱立村邊 노유연포립촌변

오래된 느릅나무가 마을 어귀를 품어서

嫩葉團團疊小錢 눈엽단단첩소전

여린 잎새가 동근 엽전처럼 포개져 있네

上有靑絲垂百尺 상유청사수백척

나무 위에 푸른 그네가 백자나 드리워서

女娘撩亂學飛仙 여낭료난학비선

아가씨들 어지러이 선녀처럼 날아오르네

 

(4)

小溪東畔是吾家 소계동반시오가

우리 집은 작은 개울 동쪽 언덕에 있는데

家有雙株雪鬪花 가유쌍주설투화

집 안에는 두 그루의 설투화가 서 있다네

花下湥泉澄百尺 화하돌천징백척

꽃 아래는 백자 길이의 맑은 샘이 흘러서

淸晨起汲月婆娑 청신기급월파사

새벽에 일어나 달빛 아래 물을 길어온다네

 

(5)

平郊漠漠起蒼烟 평교막막기창연

아득한 들판에 푸른 안개가 일어나고

白鷺飛飛下野田 백로비비하야전

백로는 훨훨 날아서 들녘에 내려앉네

女笠男蓑爭去路 여립남사쟁거로

삿갓 도롱이 걸친 남녀가 길을 재촉하고

夕陽斜雨度前川 석양사우도전천

석양에 내리는 가랑비가 앞 내를 건너네

 

(6)

數聲牧笛過溪南 수성목적과계남

개울가 지날 때 목동의 피리 소리 나고

芳草連天碧勝藍 방초연천벽승람

하늘에 닿은 방초는 쪽빛보다 푸르네

漠漠平郊烟樹外 막막평교연수외

아득한 들판의 안개 낀 숲 건너편에는

夕陽飛去鷺三三 석양비거로삼삼

백로 서너 마리가 석양에 날아가는구나

 

(7)

平郊日落樹生陰 평교일낙수생음

들판에 해가 지니 나무 그림자 드리우고

山下孤村動夕砧 산하고촌동석침

산 밑 외딴 마을 저녘에 다듬이질하네

一曲樵歌何處起 일곡초가하처기

어디에서 나무꾼의 노랫소리 들려오더니

負薪歸路白雲深 부신귀로백운심

나무 지고 돌아오는 길에 흰 구름 짙네

 

(8)

白竹雙扉日暮扃 백죽쌍비일모경

해가 저무니 대 사립문에 빗장을 걸고

蒼烟深處盧令令 창연심처로령령

우거진 안갯속에 개 방울 소리 울리네

田家近日麻工急 전가근일마공급

요즈음 농촌에서는 길쌈하기에 바빠서

次第隣燈杳若星 차제린등묘약성

집마다 켜 놓은 등불 별처럼 반짝이네

 

※桑麻(상마) : 상마지교(桑麻之交). 뽕나무와 삼나무가 벗 삼아 지낸다는 뜻으로, 전원에 은거하여 시골 사람들과 사귀며 지는 이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盧令令(노령령) : 노(盧)는 사냥개라는 의미이고 령(令)은 방울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영령(令令)은 방울소리가 울리는 것을 의미한다. 시경(詩經) 국풍(國風) 노령(盧令)에 ‘사냥개가 딸랑거리는 그 사람 멋있고 인자하네. [盧令令 其人美且仁]’라는 구절이 있는데, 주석서(注釋書)인 모시(毛詩)에 ‘[사냥에 빠진] 어리석음을 풍자한 시이다. 양공이 그물과 주살로 사냥하기를 좋아하여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니, 백성들이 괴로워했기 때문에 옛일을 펼쳐서 그것을 풍자하였다. [刺荒也 襄公好田獵畢弋而不修民事 百姓苦之 故陳古以風焉]’는 기록이 있다.

 

*김삼의당(金三宜堂, 1769∼1823) : 전라도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당호는 삼의당(三宜堂)이다.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에서 출생하여 같은 마을에 살던 담락당(湛樂堂) 하립(河笠,1769∼1830)과 혼인하여 남원, 진안 등지의 시골에서만 살았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여류 시인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이나 신사임당(申師任堂)처럼 당당한 사대부 명문 출신이거나, 황진이(黃眞伊), 이매창(李梅窓)처럼 기생 출신이 문명(文名)을 날리는 것이 대부분인데 김삼의당은 벽촌의 평범한 아녀자인 것이 상당히 이채로우며, 그 때문에 좋은 시적 세계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여류 시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