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暮行 세모행 李敏求 이민구
세밑의 노래
歲月得之如積寸 세월득지여적촌
세월은 촌각이 쌓여서 흘러가는 것인데
晝夜相乘亦至健 주야상승역지건
밤과 낮 서로 이어 매우 건실하게 흘러
殊方轉眄且六年 수방전면차육년
타향에서 순식간에 또 육 년째가 되니
只堪消磨未堪恨 지감소마미감한
그저 한탄도 못하고 세월만 보내는구나
況當窮冬近除夕 황당궁동근제석
게다가 추운 겨울에 그믐밤이 다가와서
屈指新春都不隔 굴지신춘도불격
손꼽아 세어보니 새봄이 멀지 않았구나
逝者茫然來者促 서자망연래자촉
가는 해는 아득하고 오는 해는 급한데
倀倀乾坤我爲客 창창건곤아위객
나는 나그네 되어 천지를 갈팡질팡하네
筋骸駑緩已自知 근해노완이자지
몸뚱이 둔해진 줄 나 이미 알고 있지만
俯視落日傷前期 부시낙일상전기
지는 해 굽어보며 정해진 앞날 아파하네
彭殤脩短卽朝暮 팽상수단즉조모
장수하나 요절하나 아침저녁 사이인데
埋沒抑塞將奚悲 매몰억색장해비
파묻히고 억눌린다고 어찌 슬퍼만 하랴
寰中形役詎幾許 환중형역거기허
세상에 육신에 매일 날 얼마 되지 않아
寄食荒村閱寒暑 기식황촌열한서
황량한 시골에 기식하며 세월을 보내네
山深氷雪常漠漠 산심빙설상막막
산은 깊어 얼음과 눈이 끝없이 이어지고
魑魅黃昏效人語 이매황혼효인어
저녁에는 도깨비가 사람 말을 흉내 내네
隣家老馬始生駒 인가노마시생구
이웃집 늙은 말이 막 망아지를 낳았는데
騰踏直欲凌天衢 등답직욕능천구
곧바로 하늘길로 뛰어오르려고 하는구나
川陸崎嶇路幽昧 천륙기구로유매
내와 언덕은 험난하고 길은 어두우니
麒麟蹩躠隨泥塗 기린별설수니도
기린도 비틀거리며 진창길을 따라가네
骨肉零丁消息遲 골육영정소식지
골육들은 영락하여 소식조차도 더딘데
東望故國何多思 동망고국하다사
동쪽 고향 바라보며 무슨 생각 많은가
喧喧驛隷走揮汗 훤훤역예주휘한
역졸들은 떠들썩하게 땀 흘리며 달리고
冠蓋織轍輪蹄疲 관개직철륜제피
고관들의 행차에 수레와 말도 고달프네
曾聞虜庭淹漢節 증문노정엄한절
듣자니 오랑캐 땅에 한절이 머물렀을 때
復道胡兵候關月 부도호병후관월
오랑캐 병사도 관산의 달을 살폈다 하네
嗚呼有舌不得出 오호유설부득출
아아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으니
慟哭三更五情熱 통곡삼경오정열
한밤에 오정이 끓어 올라 통곡하는구나
【이 시는 동주 이민구가 병자호란 직후인 1637년(인조 15) 영변에 유배되어 지내면서 세모를 맞은 심정을 읊은 것이다.】
※彭殤脩短卽朝暮(팽상수단즉조모) : 장수하는 사람이나 요절하는 사람이나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팽(彭)은 팽조(彭祖)라는 사람으로 하(夏) 은(殷) 주(周) 3대(三代)에 걸쳐 8백 년을 살았다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殤)은 성년이 되기 전에 죽은 아이를 말한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요절한 아이보다 오래 살았고 할 수 없고, 팽조가 요절했다고 할 수도 있다. 〔莫壽乎殤子, 而彭祖爲夭.〕’라는 말이 나온다.
※形役(형역) : 마음이 육체나 물질의 지배를 받음을 말한다. 즉 마음이 육신에 얽매여 살 날이라는 의미이다.
※魑魅黃昏效人語(이매황혼효인어) : 겨울 저녁 매섭게 부는 바람 소리를 도깨비의 말에 비유한 듯하다.
※零丁(영정) : 고독하고 영락한 모양.
※曾聞虜庭淹漢節(증문노정엄한절) : 한절(漢節)은 한나라 황제가 준 부절로 사신을 말한다. 여기서는 한 무제(漢武帝) 때 흉노에 사신으로 간 소무(蘇武)를 말하는 듯하다. 소무(蘇武)는 흉노의 선우(單于)가 소무를 귀순시키려고 움집 속에 감금하고 음식을 주지 않았으나, 소무는 내리는 눈을 먹고사는 등 고생을 하면서도 끝내 굽히지 않고 19년이나 억류 생활을 했다.
※關月(관월) : 변방 관문의 산에 뜬 달 [關山月]이란 뜻이나,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세병마행(洗兵馬行)에 ‘삼 년 동안 피리소리 속에 관산의 달을 바라보네. 〔三年笛裏關山月〕’라고 한 이후로 고향의 달 또는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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