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歲暮 四首 (세모 사수) - 李植 (이식)

-수헌- 2024. 12. 25. 13:26

歲暮 四首   세모 사수     李植   이식  

세모 4수

 

風木騷騷日夜號 풍목소소일야호

바람에 부대낀 나무들은 밤낮으로 울부짖고

凍雲和雪壓亭皐 동운화설압정고

찬 구름은 눈 덮인 언덕의 정자와 어울리네

荒林有逕牛羊入 황림유경우양입

소와 양 드나드는 숲의 오솔길은 황량하고

破壁無燈虎豹嘷 파벽무등호표호

무너진 벽에 등불도 없어 호표가 울부짖네

白首靑箱眞向晚수청상진향만

전해온 학문은 진실한데 흰머리로 늙어가니

濁醪麤飯久忘勞 탁료추반구망노

막걸리에 거친 밥 먹던 고달픔도 잊었구나

十年枉路東華土 십년왕로동화토

십 년 동안을 동화의 땅을 헛되이 다녔으니

紋繡紛紛笑縕袍 문수분분소온포

수놓은 비단옷이 해어진 솜옷을 비웃는구나

 

龍門砥柱眞天險 용문지주진천험

용문과 지주산은 정말 천애의 험지지만

漢水終南自日圻 한수종남자일기

한강과 종남산은 일기로부터 시작했네

朱雀通街曾走馬 주작통가증주마

일찍이 주작 거리를 말 타고 달리다가

白鵶寒峽早關扉 백아한협조관비

추운 백아곡에 돌아와 문을 닫아걸었네

虞翻薄相從人枉 우번박상종인왕

우번의 박한 관상이 어찌 남에게 굽히리

令伯私情與世違 영백사정여세위

영백이 사정으로 세상을 피해 숨었으나

回首壯圖成濩落 회수장도성호락

돌아보니 장한 뜻이 쓸모없이 되었으니

至今長往未全非 지금장왕미전비

이제 아주 떠나도 완전히 잘못은 아니리

 

岸岸流澌步步氷 안안유시보보빙

언덕마다 얼음 녹고 걸음마다 얼음 밟히고

出門眞怯馬凌兢 출문진겁마능긍

말도 벌벌 떨어서 문밖 나서기 겁이 나네

孤村返照鴉窺井 고촌반조아규정

노을 지는 외딴 마을 까마귀 우물 엿보고

曠野繁霜鶴啄塍 광야번상학탁승

된서리 내린 광야에는 학이 밭두둑을 쪼네

百歲光陰今欲半 백세광음금욕반

빠른 세월에 지금 백 세의 반이 되려는데

古人憂樂幾相乘 고인우락기상승

옛사람의 근심과 즐거움은 얼마나 이었을까

題門欲作迎春頌 제문욕작영춘송

봄맞이 시 한 수를 문간에 붙이고 싶지마는

無那西山虜祲凝 무나서산로침응

서쪽에 오랑캐의 요기가 엉겼으니 어찌하나

 

磨嶺古稱甁項塞 마령고칭병항새

마령진은 예전에 병목 요새라고 불리었는데

壯遊曾歷雪山重 장유증력설산중

일찍이 눈 덮인 산을 거듭 장쾌하게 다녔네

元戎錦幕催行酒 원융금막최행주

장수의 비단 장막에선 술 따르기를 재촉하고

戍卒銅刁趁擧烽 수졸동조진거봉

수졸은 들어 올린 봉화를 좇아 바라를 치네

四海風塵霜鬢暮 사해풍진상빈모

사해에 전운이 짙은데 흰머리로 세모 맞아서

一龕香火故山冬 일감향화고산동

고향 땅의 겨울에는 감실에 향불을 피웠지

武侯心事南軒識 무후심사남헌식

무후가 품었던 마음은 남헌이 알아주었는데

不管蘇公弄筆鋒 불관소공롱필봉

소공이 붓끝으로 희롱해도 상관하지 않으리

<霜鬢暮 一作今日厄 상빈모 일작금일액

상빈모(霜鬢暮)는 다른 곳에는 금일액(今日厄)으로 되어 있다.>

 

※靑箱(청상) : 집안에 대대로 전해지는 학문을 말한다. 유송(劉宋) 때 왕준지(王准之)의 집안은 대대로 박학한 지식과 사실(史實) 등을 기록하여 푸른 상자[靑箱]에 넣어 대대로 전수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왕 씨 청상학(王氏靑箱學)이라고 불렀다는 데서 유래한다.

※東華(동화) : 동화(東華)는 송나라 궁성의 동쪽 문 이름인데, 입조(入朝)할 때 이 문을 이용했다. 전하여 도성이나 조정을 의미한다.

※日圻(일기) : 일기(日畿)와 같은 말로, 도성과 그 부근의 지역을 가리킨다.

朱雀通街曾走馬(주작통가증주마) : 주작가(朱雀街)는 주작대로(朱雀大路)를 말하며, 관아를 옆에 끼고 있는 궁궐 정문과 도성 남문을 관통하는 큰길을 주작대로라 한다. 즉 도성에서 잘 나가던 때를 의미한다.

※白鵶谷(백아곡) : 택당(澤堂)의 고향 마을 이름이다.

※虞翻(우번) : 우번(虞翻)은 삼국 시대 오왕(吳王) 손권(孫權)의 신하로, 거침없이 바른 소리를 하다가 변방으로 쫓겨갔는데, ‘나는 원래 아첨을 못하는 골상이라, 윗사람을 범한 죄를 받아 바닷가로 쫓겨나 죽게 되었다. [骨體不媚 犯上獲罪 當長沒海隅]’고 말한 고사가 있다. 택당(澤堂)이 자신의 심성을 우번(虞翻)에 비유하였다.

※令伯(영백) : 영백(令伯)은 서진(西晉) 때 이밀(李密)의 자(字)인데, 늙고 병든 조모(祖母)의 봉양을 호소하며 진 무제(晉武帝)에게 올린 진정표(陳情表)가 유명하다. 택당(澤堂)이 노모(老母) 봉양을 이유로 사직소를 올리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을 영백(令伯)의 고사에 비유하였다.

※濩落(호락) : 호락(瓠落)과 같은 뜻으로. 넓고 크다는 뜻이나, 전하여 너무 커서 쓸모가 없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위왕(魏王)이 혜자(惠子)에게 큰 표주박 씨를 주어 심었는데, 그 열매가 너무 커서, 물을 채우니 무거워서 혼자 들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을 잘라서 바가지를 만들었는데, ‘얕고 평평해서 쓸 곳이 없었다. 공연히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이 쓸모가 없어서 그것을 쪼개버렸다. [瓠落無所容 非不呺然大也 吾爲其無用而掊之]’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流澌(유시) : 얼음이 녹아서 흐름.

※磨嶺(마령) : 마천령(摩天嶺)과 마운령(摩雲嶺)에 있는 북방 변경의 군영(軍營)을 말한다.

※銅刁(동조) : 구리로 만든 바라. 낮에는 군사들의 취사 용기로 쓰고 밤에는 순라(巡邏)를 돌면서 치는 군대의 기물(器物)이다.

※武侯心事南軒識(무후심사남헌식) : 무후(武侯)는 시호(諡號)가 충무후(忠武侯)인 제갈량(諸葛亮)을 말하고, 남헌(南軒)은 송나라 때 남헌선생(南軒先生)으로 불린 장식(張栻)을 말한다. 장식(張栻)이 남헌집(南軒集)의 ‘형주석고산제갈충무후사기(荊州石鼓山諸葛忠武侯祠記)’에서 제갈공명에 대하여 정성스럽게 평가한 것을 말한다.

※不管蘇公弄筆鋒(불관소공농필봉) : 소공(蘇公)은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말하는데, 그의 시 가운데 ‘선주가 유장을 내쫓으려고, 일으킨 군사는 의롭지 못한데, 공명 같은 옛 호걸이, 어찌 그런 일을 하였는가. [先主反劉璋 兵意頗不義 孔明古豪傑 何乃爲此事]’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유비(劉備)가 같은 유 씨(劉氏)인 익주 목사(益州牧使) 유장(劉璋)을 군사로 위협하여 항복받은 것을 제갈량(諸葛亮)이 말리지 않았다고 비난한 것을 말한다.

 

*이식(李植,1584~1647) : 조선시대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 남궁외사(南宮外史) 택구거사(澤癯居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