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暮 十首 세모 십수 李植 이식
세모 10수
歲暮悲親老 세모비친로
세모에 어버이가 늙으신 게 슬퍼서
高堂返綵衣¹⁾ 고당반채의
색동옷을 입고 부모님께로 돌아왔네
南山風發發²⁾ 남산풍발발
남산에 부는 바람 거세게 몰아쳐도
西嶺日暉暉³⁾ 서령일휘휘
서산마루의 햇빛은 밝게 빛나는구나
險難攻吾短 험난공오단
나의 잘못을 어렵게 고치려고 하니
因循悟昨非 인순오작비
지난날 나의 허물을 깨닫게 되었네
從今啜菽水⁴⁾ 종금철숙수
이제부터 콩죽에 물을 마시더라도
歡意誓無違 환의서무위
기쁘게 해 드릴 마음 어기지 말아야지
二 이
歲暮悲時難 세모비시난
세모에 시대가 어려워져 서글퍼서
中宵涕自漣 중소체자련
한밤중에 절로 눈물이 흐르는구나
雲臺高議絕⁵⁾ 운대고의절
조정에는 드높은 의론이 끊어지고
象闕片心懸⁶⁾ 상궐편심현
대궐에는 한 조각 마음만 걸었구나
白日臨頭上 백일임두상
머리 위에는 밝은 햇빛이 비추이고
滄溟在眼邊 창명재안변
눈앞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졌는데
殘生任朽骨 잔생임후골
남은 여생 이 몸은 늙어만 가는데
靑簡爲誰編⁷⁾ 청간위수편
청사는 누구를 위하여 엮어지려나
三 삼
歲暮悲身世 세모비신세
세모가 되니 내 신세가 서글퍼져서
茅簷坐曝暄 모첨좌폭훤
처마 밑에 앉아 햇볕 쬐고 있으니
歸雲呈晚巘 귀운정만헌
구름이 나타나 봉우리를 돌아가고
片雪入閑門 편설입한문
한가한 문에 눈 한 조각 날아드네
古義違干祿 고의위간록
벼슬 구하던 옛사람 뜻이 어긋나도
親交戒肆言 친교계사언
친구 사이라도 방자한 말 경계하리
鵶村耕谷口⁸⁾ 아촌경곡구
아촌 골짜기 입구에서 밭이나 갈며
從此息囂煩 종차식효번
번잡하고 소란한 일 이제는 쉬어야지
四 사
歲暮悲心事 세모비심사
세모가 되니 나의 심사가 서글퍼지고
丹田徧莠稂⁹⁾ 단전편유랑
단전에 강아지풀만 두루 펼쳐졌구나
稊秋防未熟 제추방미숙
돌피가 더 익기 전에 막아야 하지만
蘭晚恐無香 난만공무향
만년에 난초 향기 못 맡을까 두렵네
古道終難挽 고도종난만
옛사람의 도를 끝내 붙잡지 못하니
衰懷苦不張 쇠회고부장
약해진 마음 펼치지 못해 괴롭구나
北風饒雨雪 북풍요우설
북풍에 진눈깨비가 거세게 몰아쳐도
松柏故山蒼 송백고산창
고향 산천 솔과 잣은 푸르기만 하네
五 오
歲暮悲民計 세모비민계
세모에 백성들의 생활이 서글픈데
天災國役仍 천재국역잉
하늘이 재앙을 내려 부역만 거듭되네
吏姦同伺鼠 이간동사서
간악한 아전은 쥐새끼처럼 틈만 보고
官慢似癡蠅¹⁰⁾ 관만사치승
게으른 관리들은 멍청한 파리와 같네
白屋無餘甔¹¹⁾ 백옥무여담
쌀독이 텅텅 빈 가난한 백성의 집과
朱門隔幾層 주문격기층
고관대작의 집은 몇 층이나 차이날까
治安抱短策 치안포단책
편안히 다스릴 계책 가슴속에 있건만
終始老田塍 종시노전승
변함없이 밭두둑에서 늙어 가는구나
六 육
歲暮喜還家 세모희환가
세모에 집에 돌아오니 기쁘기만 한데
山扉掩日斜 산비엄일사
석양에 산골 집 사립문을 닫아걸었네
年荒猶續酒 연황유속주
흉년에도 역시 술 계속 마실 수 있고
身健任差科¹²⁾ 신건임차과
부역을 견뎌 낼 만큼 몸도 튼튼하다네
稚子文思進 치자문사진
어린 자식 글솜씨도 발전해 나아가고
慈親飮膳加 자친음선가
어머니도 음식을 더 드시는 듯하구나
老奴强解事 노노강해사
늙은 하인이 억지로 일 가르쳐 주면서
時復話桑麻 시부화상마
때때로 자꾸 농사 이야기만 하는구나
七 칠
歲暮喜休官 세모희휴관
세모에 벼슬 그만두어 기쁘기만 한데
靑雲不可干 청운불가간
청운의 뜻은 막을 수가 없구나
慈恩許棲遁 자은허서둔
자애로운 은혜로 은둔을 허락하시니
聖際合盤桓 성제합반환
소요하기에 알맞은 태평성대로구나
鷗鷺前盟重 구로전맹중
물새들과 맺은 약속 중하기만 해도
風濤昨夢寒 풍도작몽한
풍랑 몰아친 간밤의 꿈이 차가웠네
課農兼養拙 과농겸양졸
농사일 익히고 졸렬한 성품 기르며
從此覓心安 종차멱심안
여기에서 편안한 마음을 찾아봐야지
八 팔
歲暮喜歸田 세모희귀전
세모에 전원으로 돌아와 기뻐하며
幽棲占地偏 유서점지편
호젓한 곳을 차지하고 숨어 지내네
牛山近驪窟¹³⁾ 우산근여굴
여강 거처 가까이 우산이 자리하고
白谷傍玄淵 백곡방현연
깊은 연못 곁에는 백곡이 자리했네
黍稷當三寶 서직당삼보
서직을 당연히 삼보로 삼고
鷄豚共一廛 계돈공일전
돼지 닭과 함께 한 집에서 살리라
翻思抱關苦¹⁴⁾ 번사포관고
고달팠던 미관말직 시절 생각하니
役役枉經年 역역왕경년
얼마나 고생하며 굽은 세월 보냈던가
九 구
歲暮喜窺園 세모희규원
세모에 즐겁게 동산을 둘러보니
陶公宿好敦¹⁵⁾ 도공숙호돈
예전부터 좋아한 도공을 알겠구나
已看松菊茂 이간송국무
이미 무성한 솔과 국화가 보이고
應見韭菘繁 응견구숭번
응당 무성한 배추 부추도 보이네
築榭依山足 축사의산족
산기슭에 의지해 정자 하나 짓고
疏泉到水源 소천도수원
우물을 파서 물줄기를 끌어오리라
春來學抱瓮¹⁶⁾ 춘래학포옹
봄날 항아리 안고 물을 퍼 온다면
機事更能存 ¹⁶⁾ 기사경능존
기사가 어찌 다시 생길 수 있을까
十 십
歲暮喜尋書 세모희심서
세모에 기쁘게 책을 찾아 읽으며
開籤理蠹魚 개첨리두어
책갈피를 열어 좀벌레를 털어내네
古人餘糟粕¹⁷⁾ 고인여조박
옛사람이 남긴 술지게미마저도
吾黨自籧篨¹⁸⁾ 오당자거저
우리에겐 쓸모없는 거저일 뿐이네
學貴深潛得 학귀심잠득
배울 때는 깊이 빠져들어야 하고
心須瀹滌虛 심수약척허
마음을 씻어 내어 비워야 하겠지
修名倘可立 수명당가립
간혹 이름을 닦아 세울 수도 있지만
夕死未爲徐¹⁹⁾ 석사미위서
석사의 일은 천천히 하지 않으리라
※高堂返綵衣(고당반채의)¹⁾ : 고당(高堂)은 부모님이 거처하는 곳을 말하는데, 전하여 부모님을 의미한다. 채의(綵衣)는 노래자(老萊子)가 입은 색동옷으로, 춘추시대 초나라의 은사(隱士) 노래자가 부모님을 즐겁게하기 위해 나이 칠십에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웠다 한다.
※南山風發發(남산풍발발)²⁾ : 효성을 다 하지 못한 자식의 심경을 표현하였다. 어버이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는 효자의 심정을 읊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육아(蓼莪)에 ‘남산은 높다랗고, 회오리바람은 거세구나. 사람들 모두 잘 지내는데, 나만 왜 해를 입나. [南山烈烈 飄風發發 民莫不穀 我獨何害]’라고 하였다.
※西嶺日暉暉(서령일휘휘)³⁾ : 어버이의 자애로움을 표현한 말이다.
※從今啜菽水(종금철숙수)⁴⁾ : 효성을 다 하겠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집안이 가난해서 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한다고 한탄하자, 공자가 ‘콩죽에 물을 마시더라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이다. [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雲臺(운대)⁵⁾ : 후한 명제(後漢明帝) 때 등우(鄧禹) 등 전대(前代)의 명장 28인의 초상화를 그려서 걸어 놓고 추모한 공신각(功臣閣)의 이름이다. 전하여 조정을 뜻하기도 한다.
※象闕(상궐)⁶⁾ : 천자나 제후가 사는 성문의 바깥에 지어 놓은 높다란 집으로, 대궐을 말한다.
※靑簡爲誰編(청간위수편)⁷⁾ : 청간(靑簡)은 푸른 죽간(竹簡)으로 책(冊)이라는 뜻이나 전하여 청사(靑史)라는 의미로 쓰인다. 두보(杜甫)의 시에 ‘운대에선 하루 종일 (공신을) 그리는데, 청사는 누굴 위해 엮어지려나. [雲臺終日畫 靑簡爲誰編]’라는 구절이 있다.
※鵶村(아촌)⁸⁾ : 아촌(鵶村)은 반포(反哺)도 하지 못하는 불효한 까마귀가 사는 마을이란 뜻이나, 택당의 고향 마을 이름이다.
※丹田徧莠稂(단전편유랑)⁹⁾ : 단전(丹田)은 배꼽에서 5~6 센티미터 아랫부분으로 인체의 경혈 중 가장 기운이 많이 모이는 세 곳으로 인체 에너지의 중심이라고도 한다. 유랑(莠稂)은 강아지풀로 농작물에 유해한 잡초라는 의미이다. 곧 잡념과 같은 심신(心身)에 유해한 요소가 많음을 의미한다.
※癡蠅(치승)¹⁰⁾ : 겨울에 벽에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는 파리를 말한다. 한유(韓愈)의 시에 ‘멍청하긴 흡사 추위 만난 파리 꼴 [癡如遇寒蠅]’이라는 표현이 있다.
※白屋(백옥)¹¹⁾ : 색칠을 하지 않아 나무나 흙이 그대로 드러난 집으로, 평민이나 가난한 선비가 사는 집을 말한다.
※差科(차과)¹²⁾ : 요역(徭役)과 세금. 부역(賦役). 차(差)는 요역을, 과(科)는 납세를 뜻한다.
※驪窟(여굴)¹³⁾ : 여강(驪江)은 여주(驪州) 일대의 남한강을 말하는데, 택당(澤堂)이 1618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경기도 지평(砥平 ; 지금의 양평)으로 낙향하여 남한강 변에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지냈기에 이곳을 여굴이라 한 듯하다.
※抱關(포관)¹⁴⁾ : 관문(關門)을 지키거나 [抱關], 목탁(木鐸)을 치며 돌아다닌다 [擊柝]는 포관 격탁(抱關擊柝)에서 온 말로 미관말직(微官末職)을 의미한다.
※陶公宿好敦(도공숙호돈)¹⁵⁾ : 도공(陶公)은 진(晉) 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을 말하는데. 그의 시 칠월야행강릉도중작(七月夜行江陵途中作)에 ‘시서는 예전부터 좋아했는데, 동산의 숲에는 속된 뜻이 하나 없네. [詩書敦宿好 林園無俗情]’라는 구절이 있다.
※春來學抱瓮(춘래학포옹) 機事更能存(기사경능존) ¹⁶⁾ : 기사(機事)는 얕은꾀를 내어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자공(子貢)이 우물 속에 들어가 항아리에 물을 퍼서 채소밭에 물을 주는 노인에게 두레박 사용을 권하자, 그 노인이 ‘기계를 사용하면 기사(機事)가 있게 마련이고, 기사가 있으면 기심(機心)이 있게 마련이고, 가슴속에 기심이 있으면 순백(純白)의 경지가 갖추어지지 않게 되어 도를 이루지 못하니, 내가 그렇게 할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럽게 여겨서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답변한 고사가 있다.
※古人餘糟粕(고인여조박)¹⁷⁾ : 제 환공(齊桓公)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수레바퀴 만드는 사람이 ‘왕께서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이 남긴 술지게미입니다. [君之所讀者 古人之糟粕而夫]’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籧篨(거저)¹⁸⁾ : 거저(籧篨)는 대자리라는 뜻이나, 사람들이 엮어서 곳집을 만드니 구부리지를 못하여, 구부리지 못하는 병자[새 가슴]라는 뜻으로 전이되었다. 여기서는 쓸모없음으로 표현한 듯하다.
※夕死(석사)¹⁹⁾ : 도를 깨우치는 일을 말한다. 논어(論語) 이인(里仁)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朝聞道 夕死可矣]’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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