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冬至(동지) - 李穡 (이색)

-수헌- 2023. 12. 13. 14:08

冬至 동지    李穡 이색 

 

白髮蕭蕭不滿簪 백발소소불만잠

백발이 성글어서 비녀도 꽂히지 않아

閉關靜坐契天心¹ 폐관정좌계천심

문 닫고 조용히 앉아 천심을 따르려네

病狀藥物堆生熟 병상약물퇴생숙

병상의 약물은 날것 익힌 것이 쌓였고

老境詩篇雜古今 노경시편잡고금

늘그막 한 편의 시에는 고금이 섞였네

泥上車輪難重載 니상차륜난중재

진흙탕 수레바퀴 무거운 짐 싣기 어렵고

霧中山岳盡平沈 무중산악진평침

산악은 안갯속에 모두 펀펀히 묻히었네

今年比似前年好 금년비사전년호

금년을 견주어 보니 지난해처럼 좋아서

豆粥如酥翠鉢深 두죽여소취발심

연유 같은 팥죽이 푸른 사발에 가득하네

 

向曉燈花綴玉簪 향효등화철옥잠

새벽이 되니 등잔불 아래 옥비녀를 꽂고

閉關方見聖人心 폐관방견성인심

문 닫으니 성인의 마음 알아볼 수 있겠네

三韓禮樂自如昔 삼한례악자여석

삼한의 예악은 진실로 예전과 같으나

四海兵戈非獨今 사해병과비독금

사해의 병란은 유독 오늘만이 아니네

赫赫靈臺通闢闔² 혁혁영대통벽합

뚜렷한 마음은 열고 닫으면서 통하고

茫茫氣海載浮沈³ 망망기해재부침

한없이 넓은 기해는 부침을 실었구나

明知善養非難事⁴⁾ 명지선양비난사

선양이 어렵지 않음은 분명히 알겠으나

祗是工夫有淺深 지시공부유천심

다만 공부에 깊고 얕음이 있을 뿐이네

 

櫪馬聲中屢盍簪⁵⁾ ⁶⁾ 력마성중루합잠

외양간 말 우는 가운데 빠르게 모였는데

病餘頻起舊游心 병여빈기구유심

병이 깊으니 옛 놀던 때가 자주 생각나네

文章體製殊非古 문장체제수비고

문장의 체제는 예전보다 뛰어나지 않고

冠蓋交游盡在今⁷⁾ 관개교유진재금

지금 살피니 벼슬아치와 교유도 끝났네

綵鷁碧江天漠漠⁸⁾ 채익벽강천막막

놀잇배 띄운 푸른 강엔 하늘이 아득하고

浮蛆錦席夜沈沈⁹⁾ 부저금석야침침

좋은 술 화려한 자리의 밤이 고요했었지

回頭屈指眞如夢 회두굴지진여몽

돌이켜 손꼽아 보니 참으로 꿈만 같은데

更喜小春和氣深¹ 경희소춘화기심

소춘에 화기가 깊으니 또다시 기쁘구나

 

※閉關靜坐契天心(폐관정좌계천심)¹ : 주역 복괘(復卦) 상사(象辭)에 ‘우레가 땅속에 있는 것이 복이니, 선왕이 이것을 인하여 동짓날에 관문을 닫아서 상려를 다니지 못하게 하고, 임금은 사방을 시찰하지 않는다. [雷在地中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 한 데서 온 말이다.

 

※赫赫靈臺通闢闔(혁혁영대통벽합)² : 영대(靈臺)는 도가(道家)에서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고, 열고 닫음이란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문을 닫는 것을 곤이라 하고, 문을 여는 것을 건이라 하고, 한 번 닫고 한 번 여는 것을 변화라 하고, 끝없이 왕래하는 것을 통이라 한다. [闔戶謂之坤 闢戶謂之乾 一闔一闢謂變 往來不窮謂之通]’고 한 데서 온 말로, 천지조화의 변화를 의미한다.

 

※茫茫氣海載浮沈(망망기해재부침)³ : 기해(氣海)는 사람 신체의 정기(精氣)가 모인다고 하는 배꼽 아래 1치 5푼쯤 되는 단전을 말하는데, 전하여 여기서는 천지간에 가득 찬 넓고 큰 기운인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뜻한다. 부침(浮沈) 역시 천지간의 음양 조화를 의미하는 말이다.

 

※善養(선양)⁴⁾ : 잘 기른다는 뜻. 맹자(孟子)가 ‘나는 천하의 말을 잘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르노라.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櫪馬(력마)⁵⁾ : 외양간에 묶여 있는 말이라는 뜻으로, 무엇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盍簪(합잠)⁶⁾ :  뜻 맞는 이들이 서로들 달려와 회동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예괘(豫卦)에 붕합잠(朋盍簪)이 있는데, 주석에 ‘합은 합친다는 뜻이고 잠은 빠르다는 뜻으로 모든 벗이 동시에 빨리 온다는 것이다.’ 하였다.

 

※冠蓋(관개)⁷⁾ : 예전에, 높은 벼슬아치가 타고 다니는 덮개가 있는 수레를 이르던 말. 전하여 높은 벼슬아치를 말함.

 

※綵鷁(채익)⁸⁾ : 뱃놀이에 사용하는 호화로운 배를 말함. 익(鷁)은 백로와 같은 큰 물새로 그 새가 풍파를 잘 견딘다 하여 배가 난파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뱃머리에 화려하게 조각하여 장식했다.

 

※浮蛆(부저)⁹⁾ : 술이 익어서 걸러냈을 때, 술 위에 흰개미나 구더기같이 쌀알이 부풀어 떠 있는 것을 말함. 전하여 잘 익은 좋은 술을 말함.

 

※小春(소춘)¹ : 원래 음력 10월 또는 절기 소설(小雪)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동지를 의미한다. 당나라의 서견(徐堅) 등이 현종의 칙명으로 편찬한 책 초학기(初學記)에 ‘겨울철에 양기(陽氣)가 발동하면서 만물이 귀의할 곳을 얻게 되는바, 그 기운이 봄처럼 따뜻하게 되기 때문에 소춘(小春) 혹은 소양춘(小陽春)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동짓날 처음으로 양기가 생겨나기 때문에 소춘으로 표현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