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冬至 又吟 (동지 우음) - 李穡 (이색)

-수헌- 2023. 12. 15. 16:35

冬至 又吟   동지 우음    李穡 이색  

동지, 또 읊다.

 

豆粥淸晨體自平 두죽청신체자평

맑은 새벽 팥죽은 몸이 절로 바르게 하니

須知集義氣方生¹ 수지집의기방생

의를 모아야 기가 생김을 꼭 알아야 하네

立朝恰似軒墀鶴² 입조흡사헌지학

조정에선 마치 섬돌에 선 헌학과 같았고

望道還如氷雪鶯³ 망도환여빙설앵

도를 구하려 해도 빙설 속 꾀꼬리 같았네

孔聖文章容得見 공성문장용득견

공자의 문장은 모습을 볼 수라도 있지만

周公禮樂竟難行⁴⁾ 주공예악경난행

주공의 예악은 끝내 행하기가 어렵구나

肯從七日方來復⁵⁾ 긍종칠일방래부

칠일 만에 도가 돌아오는 것이 옳지만

天地有心元自明 천지유심원자명

천지에는 원래 절로 밝은 마음이 있네

 

筆退尖來詠太平 필퇴첨래영태평

떨어진 필력으로 태평을 읊다 붓이 닳고

可憐多病一書生 가련다병일서생

병도 많은 한 서생이 가련하기만 하구나

少年不跨換妾馬⁶⁾ 소년불과환첩마

젊을 때는 첩과 말을 바꿔 타지 않았고

老境喜聞求友鶯⁷⁾ 노경희문구우앵

노년엔 벗 찾는 꾀꼬리 소리 듣기 좋네

翠巘擬尋幽寺宿 취헌의심유사숙

푸른 산 깊숙한 절 찾아 머물고 싶으나

碧江難放小舟行 벽강난방소주행

푸른 강에 작은 배 띄워 다니기 어렵네

吾衰自信心無力 오쇠자신심무력

나 늙어서 마음이 무력함을 몸소 믿기에

謾向南陽憶孔明⁸⁾ 만향남양억공명

부질없이 남양의 공명만 생각할 뿐이네

 

稊米吾生天壤間 제미오생천양간

천지 사이에 좁쌀 같은 하찮은 내 인생

須敎大德不踰閑⁹⁾ 수교대덕불유한

반드시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게 하네

終身更蓄三年艾¹⁰⁾ 종신경축삼년애

평생 삼 년 묵은 쑥을 더욱더 저축하여

一蕢無虧九仞山¹¹ 일괴무휴구인산

흙 한 덩이로 아홉 길 산 축내지 말아야지

豈信由求能改德¹² 기신유구능개덕

유구가 덕을 고친다는 것은 믿을 수 없고

由來滕薛好爭班¹³ 유래등설호쟁반

예로부터 등설은 반열 다투기를 좋아했네

舞雩自有詠歸處¹⁴⁾ 무우자유영귀처

무우엔 절로 읊으며 돌아올 곳이 있지만

寂寂門庭苔蘚斑 적적문정태선반

적적한 내 문정엔 이끼만 얼룩져 있구나

 

游宦天都眞夢間¹⁵⁾ 유환천도진몽간

천자국에서 벼슬한 건 참으로 꿈만 같고

玉堂深處最淸閑 옥당심처최청한

옥당 깊숙한 곳이 가장 맑고 한가로웠네

影侵海底中心閣 영침해저중심각

궁전이 바다 밑 가운데 그림자를 비치고

勢入雲中萬壽山 세입운중만수산

만수산의 기세는 구름 속에 들었네

翰墨依俙鳥跡篆¹⁶⁾ 한묵의희조적전

어렴풋한 새발자국 전서로 글을 짓고

牙緋照耀蛾眉班¹⁷⁾ 아비조요아미반

홀과 관복이 백관 반열을 밝게 비추었네

當時諸子在何處 당시제자재하처

당시의 여러 사람들 지금은 어디 있는지

東海孤臣雙鬢斑 동해고신쌍빈반

동해의 외로운 신하 두 귀밑이 얼룩졌네

 

※集義氣方生(집의기방생)¹ : 의를 끝없이 모음으로써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孟子)의 제자 공손추(公孫丑)가 호연지기에 대하여 물었을 때, 맹자가 호연지기는 ‘언제나 의를 행하는 동안에 자연히 생기는 것이지, 의를 돌발적으로 행하여 억지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라고 하였다.  

 

※軒墀鶴(헌지학)² : 헌학(軒鶴). 헌학(軒鶴)은 아무런 능력 없이 국록만 축냄을 의미한다. 춘추시대 위의공(衛懿公)이 학을 좋아하여 학에게 벼슬을 내리고 수레에 태우고 다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望道還如氷雪鶯(망도환여빙설앵)³ : 성인(聖人)의 도를 닦아 실천하기가 어려움을 의미한다.

 

※周公禮樂(주공에악)⁴⁾ : 주공(周公)은 주(周) 나라 무왕(武王)의 동생인데,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오르자 섭정(攝政)을 하며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하여 주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한다.

 

※肯從七日方來復(긍종칠일방래부)⁵⁾ : 주역 복괘(復卦)에, 복괘의 일양(一陽)이 생기는 것을 두고. ‘그 도(道)가 반복하여 칠일 만에 돌아온다. [反復其道 七日來復]’ 한 데서 온 말이다.

 

※換妾馬(환첩마)⁶⁾ : 위(魏)의 조조(曹操) 아들 창(彰)은 성격이 호탕하였는데, 일찍이 남의 준마(駿馬)를 보고는 탐을 내어 그 주인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아름다운 첩이 있어 말과 바꿀 수 있으니, 그대가 내 첩을 고르기만 하라.’ 하니, 그 주인이 한 첩을 지목하므로, 창이 그 첩을 말과 바꾸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老境喜聞求友鶯(노경희문구우앵)⁷⁾ : 시경 소아(小雅) 벌목(伐木)에, ‘나무 찍는 소리는 쩡쩡하고, 새는 재잘거리며 우네.……재잘거리는 울음소리는 그 벗을 찾는 소리라네. [伐木丁丁 鳥鳴嚶嚶…… 嚶其鳴矣 求其友聲]’ 한 데서 온 말이다.

 

※南陽憶孔明(남양억공명)⁸⁾ : 공명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의 자인데,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남양의 초려(草廬)에 은거하며 몸소 농사를 지으며 지냈으므로 이른 말이다.

 

※大德不踰閑(대덕불유한)⁹⁾ :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드나들어도 괜찮다. [大德不踰閑 小德出入 可也]’ 한 데서 온 말이다.

 

※三年艾(삼년애)¹⁰⁾ : 삼 년 묵은 약쑥.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오늘날 왕 노릇 하려는 자는 7년 된 병에 삼년 묵은 쑥을 구하기와 한가지니, 진실로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얻지 못한다" 〔今之欲王者 猶七年之病求三年之艾也 苟爲不畜 終身不得〕고 했다.

 

※一蕢無虧九仞山(일괴무휴구인산)¹¹ : 서경(書經) 여오(旅獒)에, ‘작은 행실을 함부로 하다가는 마침내 큰 덕에 누가 되어, 아홉 길 산을 쌓는 데 있어 흙 한 덩이에 공이 이지러지는 것과 같다. [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 한 데서 온 말이다.

 

※豈信由求能改德(기신유구능개덕)¹² : 유구(由求)는 공자의 두 제자인 중유(仲由)와 염구(冉求)를 말한다. 이 두 사람이 모두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 되었는데, 염구는 특히 계씨의 덕(德)을 바로잡지 못하고 도리어 백성에게 전보다 세금을 갑절이나 더 거두어서 계씨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주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염구는 우리 무리가 아니니, 소자들아 북을 울려 염구를 성토해야 한다. [求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 可也]’ 하였다. 또 계자연(季子然)이 공자에게 묻기를, ‘중유와 염구는 대신(大臣)이라 이를 만합니까?’ 하자, 공자가 이르기를, ‘지금 중유와 염구는 숫자만 채운 신하라고 할 만하다. [今由與求也 可謂具臣矣]’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先進> <孟子 離婁上>

 

※滕薛(등설)¹³ : 등설(滕薛)은 춘추 시대에 있었던 소국(小國)인 등(滕) 나라와 설(薛) 나라를 말하는데, 노 은공(魯隱公) 때 등후(滕侯)와 설후(薛侯)가 내조(來朝)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행례(行禮)의 선후(先後)와 석차(席次)의 고하(高下)를 가지고 다투었다는 고사가 있다.

 

※舞雩自有詠歸處(무우자유영귀처)¹⁴⁾ : 공자(孔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각 자신들의 뜻을 말하라 [言志] 하였을 때, 모두 자기의 정치적 포부를 이야기하는데 증점(曾點)만 ‘늦은 봄에 봄옷이 완성되면 대여섯 명 어른, 예닐곱 아이들을 데리고 기수(沂水)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 가서 바람 쐬고서 시를 읊다가 돌아오겠다. [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한 말을 유독 칭찬하였다는 고사(故事)가 있다.

 

※游宦天都眞夢間(유환천도진몽간)¹⁵⁾ : 유환(游宦)은 타향에서 벼슬살이하는 것을 말하고, 천도(天都)는 당 시 천자국인 원나라를 뜻하는 듯하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서작관으로 원나라에 가서 회시(會試) 전시(殿試)에 합격하여 응봉한림문자 승사랑 동지제고(應奉翰林文字承事郞同知制誥) 겸 국사원 편수관(國史院編修官)을 지냈다.

 

※翰墨依俙鳥跡篆(한묵의희조적전)¹⁶⁾ : 한묵(翰墨)은 문한과 필묵이란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글을 짓는 것을 이르는 말이고, 조적(鳥跡)은 황제(黃帝)의 신하 창힐(蒼頡)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 처음으로 문자(文字)를 만들었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문자를 가리킨다.

 

※蛾眉班(아미반)¹⁷⁾ : 조정의 반열[朝班]을 뜻한다. 몽계필담(夢溪筆談) 고사(故事)에 당나라 제도에 양성(兩省)의 관리들이 서로 마주 서는 것을 아미반이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