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소만(小滿), 보리 베기와 보리 타작

-수헌- 2022. 5. 14. 14:52

입하(立夏)가 지나면 소만(小滿)이 다가온다. 소만은 보리가 익어서 수확하고 타작하는 시기이다. 예전에는 보릿고개 춘궁기(春窮期)가 심하여 이 시기를 넘기기가 어려웠는데, 일단 보리타작이 끝나면 일단 배를 곯는 일은 면할 수 있어 농가에서는 보리타작이 매우 힘든 일임에도 즐거운 노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의 시 예맥행(刈麥行)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 타맥행(打麥行)에 이와 같은 보리 베기와 보리타작의 애환이 잘 묘사되어 있다.

 

刈麥行 예맥행     成俔 성현

보리 베는 일

 

池塘黯黯初生葦 지당암암초생위

못 둑은 갈대가 막 자라 나니 어둑해지고

栗樹放花垂鼠尾 율수방화수서미

밤나무는 꽃을 피워 쥐꼬리처럼 드리웠네

千村麥浪綠搖風 천촌맥랑록요풍

마을마다 바람에 푸른 맥랑이 일렁이더니

滿畝漸變彤雲起 만무점변동운기

밭이랑 가득 붉은 구름 일어나듯 변해가네

 

彤雲迢遞望如流 동운초체망여류

붉은 구름을 멀리 흐르는 물처럼 바라보니

村中五月如深秋 촌중오월여심추

시골의 오월이 마치 깊은 가을 같구나

竹鷄鉤輈布穀歇 죽계구주포곡헐

자고새 구주하며 울고 뻐꾹새 울음 그치고

雲天飜黑玄悠悠 운천번흑현유유

구름 낀 먼 하늘은 먹물 엎지른 듯 검구나

 

農夫腰鎌婦具筐 농부요겸부구광

농부는 허리에 낫 차고 아낙은 바구니 갖고

擧家遑遑十指忙 거가황황십지망

온 집안이 모두 바빠서 허둥지둥하는구나

朝從上隴復下隴 조종상롱부하롱

아침부터 밭두둑 위로 또 아래로 다니면서

長歌短謳相低仰 장가단구상저앙

서로 길고 짧은 노랫가락 나지막이 흥얼대네

 

將穗成束雙肩赬 장수성속쌍견정

보리 이삭 묶어서 양 어깨가 멍들도록 지고

登場盡日聲彭彭 등장진일성팽팽

타작마당에 올라 온종일 타맥 소리 울리네

彭彭魄魄應南北 팽팽백백응남북

방방 백백 타작소리 남북에서 서로 응하니

簸糠熬粥當香粳 파강오죽당향갱

보릿겨 까불려서 죽 쑤니 향이 쌀밥 같구나

 

田家有樂亦有苦 전가유악역유고

농가에 즐거울 때 있으면 괴로울 때 있으니

半輸私家半公賦 반수사가반공부

반은 집으로 들이고 반은 관청에 바치라고

聚升裒斗計未成 취승부두계미성

몇 말 몇 되를 거뒀는지 세어 보기도 전에

里胥經過叫前路 리서경과규전로

이장이 길 앞을 지나면서 외쳐 대는구나

 

※彤雲(동운) : 붉은 구름 또는 붉은 노을이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조금 붉은빛을 띠며 누렇게 잘 익은 보리 이삭 물결을 표현하였다.

※竹鷄鉤輈(죽계구주) : 竹鷄(죽계)는 鷓鴣(자고)새를 의미하며, 鉤輈(구주)는 구주격책(鉤輈格磔)으로 鷓鴣(자고)새가 우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이다. 자고새가 ‘구주격책, 구주격책’ 하고 소리 내며 운다는 말.

※彭彭魄魄(방방백백) : 방방백백은 보리타작하는 소리를 형용한 의성어이다. 송(宋) 나라 장순민(張舜民)의 타맥사(打麥詞)에 “보리타작이여, 보리타작이여, 방방백백 울려라, 그 소리 산 남쪽 산 북쪽이 서로 호응하네.〔打麥打麥 彭彭魄魄 聲在山南應山北〕”라고 한 데서 인용하였다.

 

*성현(成俔,1439~1504) : 조선 전기 허백당집, 악학궤범, 용재총화 등을 저술한 학자. 자는 경숙(磬叔), 호는 용재(慵齋) 부휴자(浮休子) 허백당(虛白堂) 국오(菊塢). 시호는 문대(文戴)이다.

 

 

打麥行 타맥행      丁若鏞 정약용

보리타작 하는 일

 

新篘濁酒如湩白 신추탁주여동백

새로 거른 막걸리는 우유처럼 희고

大碗麥飯高一尺 대완맥반고일척

큰 사발의 보리밥은 한 자 높이일세

飯罷取耞登場立 반파취가등장립

밥 먹고 도리깨 들고 타작마당에 서니

雙肩漆澤翻日赤 쌍견칠택번일적

검게 탄 두 어깨가 햇볕에 번들거리네

 

呼邪作聲擧趾齊 호사작성거지제

옹헤야 소리 내며 발맞추어 두드리니

須臾麥穗都狼藉 수유맥수도랑자

잠깐사이 보리 이삭 어지러이 널렸네

雜歌互答聲轉高 잡가호답성전고

주고받는 잡가 소리 점점 더 높아지고

但見屋角紛飛麥 단견옥각분비맥

지붕까지 흩날리는 보리도 보이는구나

 

觀其氣色樂莫樂 관기기색악막악

기색들을 살펴보니 풍류 없어도 즐거워

了不以心爲形役 료불이심위형역

마음으로 육체를 부리지 않음을 알겠네

樂園樂郊不遠有 낙원낙교불원유

낙원과 낙교는 멀리 있는 게 아닐 텐데

何苦去作風塵客 하고거작풍진객

어찌 고달픈 풍진 세상 나그넷길 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