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

초파일(부처님 오신날) 漢詩 2

-수헌- 2022. 5. 6. 11:50

조선 중기의 문인인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은 정철(鄭澈)의 문인으로,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은 채 야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술로 낙을 삼았으며, 당대의 풍자 시인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한시 관등행 시우인(觀燈行 示友人)에서 초파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한양의 호사가와 부자들의 사치와 놀이 문화를 풍자하고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觀燈行 示友人 관등행 시우인     權韠 권필

관등 하러 가서 우인(友人)에게 보이다.

 

須彌之山兜率天 수미지산두솔천

수미산에 있는 도솔천에서

四月八日生金仙 사월팔일생금선

사월 초파일에 부처님이 탄생하셨네

心心相印比傳燈 심심상인비전등

심인을 서로 본받아 등불을 전하여

流入東華知幾年 유입동화지기년

동으로 들어온 지 몇 해인지 아는데

漢陽豪富天下雄 한양호부천하웅

한양의 호부들은 노는데 천하에 으뜸이라

張燈設戲傳遺風 장등설희전유풍

전해오는 풍속대로 등불 밝히고 노는구나

紛紛甲第鬪奢華 분분갑제투사화

분분한 저택들 화려하게 사치를 다투고

羅幃繡幕連靑空 라위수막련청공

화려한 비단 장막 푸른 하늘에 잇닿았네

金樽酒重花滿烟 금준주중화만연

안개 낀 꽃 속에서 금 술잔이 거듭 되고

紗籠銀燭光玲瓏 사롱은촉광령롱

사롱 등의 은 촛불은 빛이 영롱하구나

五鳳毰毸九龍騰 오봉배시구룡등

오봉이 춤을 추고 구룡이 높이 오르니

十里金碧輝觚稜 십리금벽휘고릉

십 리 금벽이 궁궐 높은 곳에 빛나네

是日金吾不禁夜 시일금오불금야

이날에는 금오가 야간 통행을 막지 않아

笙歌滿路香烟凝 생가만로향연응

풍악 소리 향 연기가 거리 가득 엉겼네

靑樓處處捲珠箔 청루처처권주박

청루에는 곳곳마다 주렴을 걷어 올리고

分曹作隊多豪客 분조작대다호객

나누어 무리 지어 다니는 호사가도 많구나

繁華幾時人事改 번화기시인사개

인사가 바뀌어 번화하던 그 어느 때에

滿目干戈日月晦 만목간과일월회

창칼이 눈앞 가득하니 일월도 어두워지네

九重城闕忽丘墟 구중성궐홀구허

구중궁궐과 성곽도 홀연 폐허가 되면

疇昔同遊幾人在 주석동유기인재

옛날 함께 놀던 사람 몇이나 남을까

他鄕作客伴孤燈 타향작객반고등

나그네 되어 타향에서 외로이 등잔 짝하니

歸夢遙遙越雲海 귀몽요요월운해

꿈속에서 아득히 구름바다 넘어가네

閉門飢臥動經旬 폐문기와동경순

문 닫고 배고파 누운 지 열흘 넘어가니

不覺明朝是佳節 불각명조시가절

내일이 초파일 명절 인지도 알지 못하네

速宜相就飮一斗 속의상취음일두

빨리 서로 모여 한 말 술 마시더라도

人世悲歡不堪說 인세비환불감설

인간 세상 애환은 감히 말하지 말게

男兒百年貴得意 남아백년귀득의

남아는 평생에 귀한 뜻을 얻어야지

何用傷心催白髮 하용상심최백발

무엇하러 백발 재촉하며 상심하리

玉蟲金粟亦無賴 옥충금속역무뢰

등잔불 또한 의지할 수가 없으니

夜來應有花間月 야래응유화간월

밤이 오면 꽃 사이로 달이 뜨겠지

 

須彌山(수미산), 兜率天(도솔천) : 석가(釋迦)가 원래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에 있다가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고 한다.

金仙(금선) : 부처의 이칭이다.

心印(심인) : 선종(禪宗)에서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을 심인이라 하며, 이 심인을 조사(祖師)들이 서로 전하는 것을 전등(傳燈)으로 비유한다.

甲第(갑제) : 크고 너르게 아주 잘 지은 집.

金碧(금벽) : 금빛과 푸른빛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빛깔을 이르는 말.

觚稜(고릉) : 궁궐의 가장 높은 곳. 전각(殿閣) 지붕의 기와 등(瓦脊)을(瓦脊)을 말한다.

金吾(금오) : 조선 시대, 임금의 명에 의해 죄인을 다스리는 일을 맡아보는 관청.

玉蟲金粟(옥충금속) : 등잔의 불꽃을 형용한 것이다. 한유(韓愈)의 영등화(詠燈花)황색 장막 속에 금속을 배열하고 비녀 끝에 옥충을 꿰맨 듯하구나.黃裏排金粟 釵頭綴玉蟲” 라는 구절이 있다.

 

창원 비음산 불곡사 일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