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곡(蓀谷)과 삼당시인(三唐詩人)

拾穗謠 (습수요) 外

-수헌- 2020. 9. 19. 23:05

손곡 이달(蓀谷 李達)을 비롯한 삼당시인(三唐詩人)이 활동하던 때는 16세기 후반으로 임진왜란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고초를 겪던 시기였다.

손곡 이달(蓀谷 李達)은 서자라는 출신의 한계로 벼슬도 하지 않고 전국을 유랑하며 많은 시를 지었는데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시를 많이 지었다.

그러나 방랑생활 도중 피폐한 민초들의 삶이나 관료들의 수탈과 실정을 비판, 고발하는 시도 많이 썼는데 이러한 시 에도 손곡의 서정적이고 풍류적인 면이 잘 나타난다.

 

拾穗謠 습수요

이삭 줍는 노래

 

田間拾穗村童語 전간습수촌 동어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 말이

盡日東西不滿筐 진일동서불만광

종일 동서로 다녀도 바구니가 안 찬다네.

今歲刈禾人亦巧 금세예화인역교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도 교묘해져서

盡收遺穗上官倉 진수유수상관창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관가 창고에 바쳤네.

 

이 노래는 당시 농촌의 수탈당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이 시는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들의 말을 빌려 당시의 상황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삭이라도 주워 허기를 채워야 하는데, 관가의 수탈이 혹심하여 이삭 한 톨 남김없이 관가에 바쳐 주울 이삭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刈麥謠 예맥요 (田家行;전가행)

보리 베는 노래

 

田家少婦無夜食 전가소부무야식

시골집 젊은 아낙 저녁거리가 없어서

雨中刈麥林中歸 우중예맥림중귀

빗속에 보리 베어 숲 속으로 돌아오니

生薪帶濕煙不起 생신대 습연 불기

생나무는 습기 먹어 불길도 일지 않고

入門兒女啼牽衣 입문아녀제견의

문에 들어서니 어린 딸은 옷 잡고 우는구나

 

손곡(蓀谷) 이달이 상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본 것을 작품으로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이달의 제자인 허균은 이 작품을 평하기를 '먹을 것이 없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그렸다'라고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에 먹을거리가 떨어지고, 젊은 아낙은 별 수 없이 빗속에 들로 나가 보리를 베어 집으로 돌아와 자식들에게 보리밥이라도 지어줘야 하는데, 땔나무는 습기를 먹어서 불이 잘 붙지 않고, 게다가 어린 딸은 어머니 옷을 잡고 울기까지 한다. 애 아버지는 어디로 갔는지, 남편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처량하게 만든다. 비와 습기에 젖은 땔나무 등의 소재도 처량함을 표현하며, 측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祭塚謠 제총요

무덤에서 제 지내는 노래

 

白犬前行黃犬隨 백견전행황견수

흰둥이는 앞서고 누렁이는 따라가는데

野田草際塚纍纍 야전초제총류류

들밭 풀 섶에는 무덤들이 늘어섰네.

老翁祭罷田間道 노옹제파전간도

제를 지낸 늙은이가 밭 사이로 난 길을

日暮醉歸扶小兒 일모취귀부소아

저물녘 취해서 아이 부축받아 돌아오네

 

蓀谷 李達이 임진왜란 등으로 세상이 매우 어지러웠던 때. 이 을씨년스럽고 암울한 시대를 <祭塚謠>로 읊었다. 이 시는 긴 전쟁으로 피폐한 시대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많은 무덤 중 제를 지낸 무덤이 누구의 무덤인지, 손자의 부축을 받으며 취해 돌아오는 심정이 이해와 공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