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가을장맛비에 중부지방이 온통 물난리다. 요즘은 다목적 댐이 많아 홍수 조절도 하고 관개 치수가 잘 되어 있음에도 뜻하지 않은 호우에 물난린데, 예전에는 어땠을까. 조선 중기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동주(東州) 이민구(李敏求)는 홍수의 참상을 바라보는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觀漲行 관창행 李敏求 이민구 (東州集)
홍수를 바라보다.
久旱今年焦下土 구한금년초하토
올해 오랜 가뭄으로 대지가 타들어가다가
至夏六月始霖雨 지하륙월시림우
여름 유월이 되니 장맛비 오기 시작하네
水合三江混爲一 수합삼강혼위일
물이 모이고 세 강이 섞여 하나가 되고
風駕雪山相吼怒 풍가설산상후노
바람은 설산 타고 넘듯 거세게 우는구나
咫尺桑田變瀛海 지척상전변영해
지척에 있던 뽕밭이 큰 바다로 변하더니
厓顚谷狠須臾改 애전곡한수유개
언덕 위와 골짜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네
六鼇流漂三島踣 륙오류표삼도북
육오가 떠내려가고 삼신산도 무너지니
銀臺金闕今安在 은대금궐금안재
은대와 금궐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深林巨木古根盤 심림거목고근반
묵은 뿌리가 받쳐주던 숲 속 큰 나무는
鬼物守護朱炎寒 귀물수호주염한
더워도 추워도 귀물이 줄기를 지켰는데
老幹倔強爭不得 노간굴강쟁불득
굳게 버티던 늙은 줄기 견디지 못하고
苦戰拔去隨崩湍 고전발거수붕단
거칠게 싸우다 거센 물살에 뽑혔구나
有如上古鴻濛時 유여상고홍몽시
마치 혼돈의 상고시대에 있는 것처럼
淸濁未判眞宰悲 청탁미판진재비
조물주도 청탁을 구별 못해 슬프구나
又如懷襄經九載 우여회양경구재
또 구 년 동안 모든 걸 삼킨 홍수처럼
川陸澒洞堯嗟咨 천륙홍동요차자
산천에 흘러넘치니 요임금이 탄식하네
江干澤國蛟龍來 강간택국교룡래
강변의 수몰된 곳에는 교룡이 찾아오고
閭井水沒沈汚萊 여정수몰침오래
마을은 물에 잠기고 논밭은 황폐해졌네
洪濤入屋煙火斷 홍도입옥연화단
홍수가 집을 덮쳐 밥 짓는 연기 끊기고
十日不退生民哀 십일불퇴생민애
열흘을 빠지지 않아 백성들이 불쌍하네
況聞處處坼菑畬 황문처처탁치여
듣자니 게다가 곳곳에서 논밭이 휩쓸려
四野滌蕩禾無餘 사야척탕화무여
온 들판을 씻어가 남은 곡식 없다는구나
卽知溝壑只朝暮 즉지구학지조모
머지않아 구렁텅이에 떨어짐을 알겠으니
竟日哭聲連村墟 경일곡성련촌허
곡소리가 마을마다 종일 이어지겠구나
東州皤翁初遠歸 동주파옹초원귀
머리 센 동주 옹이 멀리서 막 돌아왔는데
觸事每覺身願違 촉사매각신원위
하는 일마다 원하는 바와 어긋남을 알겠네
長雲橫天天宇闇 장운횡천천우암
오랫동안 먹구름 하늘 덮어 세상 어두우니
仰視太陽韜晶輝 앙시태양도정휘
태양을 우러러봐도 밝은 빛이 감추어졌네
※六鼇(육오) : 바닷속에서 삼신산(三神山)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여섯 마리 자라를 가리킨다. ※銀臺(은대)金闕(금궐) : 삼신산에 있는 집을 말한다.
※鴻濛(홍몽) : 하늘과 땅이 아직 갈리지 않은 상태. 우주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천지의 원기, 혹은 그와 같은 혼돈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써, 끝없이 펼쳐진 바다나 하늘을 뜻하기도 한다.
※懷襄經九載(회양경구재) : 요 임금 때 구 년 동안 계속된 홍수가 산과 구릉을 모두 삼켰다는 뜻이다. 서경 요전(堯典)에 ‘넘실거리는 홍수가 사방에 해를 끼쳐, 산을 덮고 구릉을 삼킨다.〔湯湯洪水方割, 蕩蕩懷山襄陵.〕’라고 한 구절이 있다.
※汚萊(오래) : 낮은 곳이나 높은 곳이 각기 잡초가 무성하게 된 것을 말한다. 즉 논밭이 황폐해짐을 의미함.
※東州皤翁(동주파옹) : 東州(동주)는 이 시의 저자인 이민구(李敏求)의 자호이니 東州皤翁(동주파옹)은 늙은 자신을 뜻한다.
*이민구(李敏求,1589~1670) : 조선시대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州) 또는 관해(觀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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