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四時詞 사시사 許蘭雪軒 허난설헌

-수헌- 2022. 3. 12. 17:33

四時詞 許蘭雪軒 허난설헌 

春   춘

 

院落深沈杏花雨 원락심침행화우

정원은 살구꽃비에 잠겨 깊이 가라앉고

流鸎啼在辛夷塢 유앵제재신이오

목련 핀 언덕에는 꾀꼬리 울음 흐르네

流蘇羅幕襲春寒 유소라막습춘한

오색 수실 비단 장막에 봄추위 스며들고

博山輕飄香一縷 박산경표향일루

박산향로에 한 가닥 향이 가볍게 피네

美人睡罷理新粧 미인수파리신장

미인은 잠에서 깨어나 새로이 단장하고

香羅寶帶蟠鴛鴦 향라보대반원앙

원앙 수놓은 향기로운 비단 띠를 두르네

斜捲重簾帖翡翠 사권중렴첩비취

드리운 겹 발 거두고 비취 휘장 치고서

懶把銀箏彈鳳凰 나파은쟁탄봉황

시름없이 은쟁을 잡고 봉황곡을 타네

金勒雕鞍去何處 금륵조안거하처

황금 재갈 화려한 안장으로 어딜 가셨나

多情鸚鵡當窓語 다정앵무당창어

앵무새만 다정하게 창가에서 지저귀네

草粘戱蝶庭畔迷 초점희접정반미

풀밭에 날던 나비는 뜰 주위를 헤매고

花罥遊絲闌外舞 화견유사란외무

꽃에 서린 아지랑이 난간 밖에 춤추네

誰家池館咽笙歌 수가지관인생가

어느 집 연당의 생황 곡에 목이 메고

月照美酒金叵羅 월조미주금파라

달빛이 금잔의 좋은 술을 비추어 주네

愁人獨夜不成寐 수인독야불성매

근심으로 잠 못 드는 밤 홀로 지새다가

曉起鮫綃紅淚多 효기교초홍루다

새벽에 일어나면 옷자락에 피눈물 가득하네

※流蘇(류소) : 오색 실로 만들어 깃발이나 가마, 옷 따위에 갖가지 실로 매듭짓게 꼬아 다는 술 .

※博山(박산) : 博山爐(박산로). 중국 산둥성에 있는 보산(博山)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동제(銅製) 향로(香爐).

※鮫綃(교초) : 전설에서 ‘鲛人’이 생사로 짠 직물. [鲛人(교인) ; 전설에서 남해에 산다는 물고기 모양의 사람. 울면 눈물이 구슬로 된다고 함]

 

夏   하

 

槐陰滿地花陰薄 괴음만지화음박

꽃 그림자 희미하고 땅에 느티나무 그늘 짙어

玉簟銀床敞珠閣 옥점은상창주각

은 평상에 대자리 펴니 고운 누각이 시원하네

白苧衣裳汗凝珠 백저의상한응주

하얀 모시 치마 적삼에 구슬 같은 땀이 배여서

呼風羅扇搖羅幕 호풍라선요라막

비단부채로 부치니 비단 휘장이 흔들리는구나

瑤階開盡石榴花 요계개진석류화

옥섬돌에는 석류꽃이 활짝 피었다가 지고

日轉華簷簾影斜 일전화첨렴영사

해가 기우니 처마 끝 주렴에 그늘이 비끼네

雕粱晝永燕引雛 조량주영연인추

조각한 들보엔 하루 종일 제비가 새끼 돌보고

藥欄無人蜂報衙 약란무인봉보아

사람 없는 약초밭 울타리엔 벌만 날아다니네

刺繡慵來午眠重 자수용래오면중

수를 놓다가 게을러져서 낮잠이 깊이 들어

錦茵敲落釵頭鳳 금인고락채두봉

비단 방석에다 봉황새긴 비녀를 떨구었네

額上鵝黃膩睡痕 액상아황니수흔

이마에는 잠 잔 자국이 누렇게 그려졌는데

流鸎喚起江南夢 유앵환기강남몽

꾀꼬리 울음소리가 강남 꿈을 깨우는구나

南塘女伴木蘭舟 남당여반목란주

남쪽 연못에선 여인과 함께 목란주를 타고

采采荷花歸渡頭 채채하화귀도두

연꽃을 따서 나루터로 돌아오는구나

輕橈齊唱采菱曲 경요제창채릉곡

천천히 노 저으며 채릉곡을 같이 부르니

驚起波間雙白鷗 경기파간쌍백구

물결 사이 갈매기 한 쌍 놀라서 날아가네

 

秋    추

 

紗幮寒逼殘宵永 사주한핍잔소영

휘장엔 추위 스며들고 남은 밤은 길건만

露下虛庭玉屛冷 노하허정옥병랭

텅 빈 뜰에 이슬 내려 옥 병풍도 차갑구나

池荷粉褪夜有香 지하분퇴야유향

못의 연꽃 시들어도 밤까지 향기 남았고

井梧葉下秋無影 정오엽하추무영

우물가 오동잎 지니 가을 그림자도 없네

丁東玉漏響西風 정동옥루향서풍

서풍에 떨어지는 물시계 소리가 울리고

簾外霜多啼夕蟲 렴외상다제석충

주렴 밖에 서리 내리니 밤벌레 시끄럽네

金翦刀下機中素 금전도하기중소

베틀에 걸린 하얀 베를 금가 위로 잘라내니

玉關夢斷羅帷空 옥관몽단라유공

임 그리는 꿈도 끊겨 비단 장막 쓸쓸하네

裁作衣裳寄遠客 재작의상기원객

먼 길 가는 길손 편에 부칠 옷 지을 때

悄悄蘭燈明暗壁 초초난등명암벽

등잔불만 근심스레 어두운 벽 밝혀주네

含啼寫得一封書 함제사득일봉서

울음을 삼키며 편지 한통을 써 놓으니

驛使明朝發南陌 역사명조발남맥

역사는 내일 아침 남쪽 길로 떠난다네

裁封已就步中庭 재봉이취보중정

옷과 편지 봉하고 나서 뜨락을 걸으니

耿耿銀河明曉星 경경은하명효성

은하수 반짝이고 새벽 별들이 밝구나

寒衾轉輾不成寐 한금전전불설매

찬 이불속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데

落月多情窺畫屛 낙월다정규화병

새벽달 다정스레 병풍 그림을 엿보네

 

※玉關夢(옥관몽) : 옥관은 고대 중국의 만리장성 서쪽 끝에 있던 관문으로 한(漢) 나라 때 서역으로 가던 통로였다. 玉關夢(옥관몽)은 옥관으로 수(戍)자리 떠난 임을 그리는 꿈, 즉 멀리 떠나 만날 수 없는 임을 그리는 꿈으로 해석된다.

※驛使(역사) : 공문서나 서신을 전달하는 사람. 요즘의 우편배달부.

 

冬    동

 

銅壺滴漏寒宵永 동호적루한소영

춥고 긴 밤에 물시계 떨어지는 소리 들리고

月照紗幃錦衾冷 월조사위금금랭

달빛 어린 휘장 안 비단 이불이 싸늘하구나

宮鴉驚散轆轤聲 궁아경산록로성

담장의 까마귀 녹로 소리에 놀라 흩어지고

曉色侵樓窓有影 효색침루창유영

새벽빛이 누대에 드니 창에 그림자 비치네

簾前侍婢瀉金甁 렴전시비사금병

주렴 앞에 여종 아이 금병에서 물을 부으니

玉盆手澁臙脂香 옥분수삽연지향

대야에 손 담그기 싫어도 연지는 향기롭네

春山描就手屢呵 춘산묘취수루가

눈썹을 그리다가 시린 손을 자주 불어대니

鸚鵡金籠嫌曉霜 앵무금롱혐효상

새장 속 앵무새도 새벽 서리는 싫어하네

南隣女伴笑相語 남린여반소상어

이웃 여인과 짝하여 서로 웃으며 말하길

玉容半爲相思瘦 옥용방위상사수

임 생각에 고운 얼굴 반쪽이 다 됐구나

金爐獸炭暖鳳笙 금로수탄난봉생

수탄으로 쇠 화로 데우고 봉생을 부니

帳底美兒薦春酒 장 저미 아천 춘주

장막 아래서 고운 아이가 춘주를 올리네

憑闌忽憶塞北人 빙란홀억새북인

난간에 기대 변방의 님을 문득 생각하니

鐵馬金戈靑海濱 철마금과청해빈

금빛 창에 검은 말 푸른 바닷가 달리겠지

驚沙吹雪黑貂弊 경사취설흑초폐

모래바람 눈보라에 가죽옷이 다 헤져도

應念香閨淚滿巾 응념향규루만건

규방에서 눈물로 지새는 날 생각하시겠지

 

※轆轤(록로) : 무엇을 달아 높이 올리거나 내리기 위해 또는 무엇을 멀리 보내거나 당기기 위해 쓰는 바퀴 모양의 장치.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여기서는 새벽 물 긷는 우물 두레박의 도르래가 연상된다.

※春山(춘산) : 봄 산이라는 뜻이나 전하여 부인의 눈썹이라는 뜻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