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시(季節詩)감상/사시사(四時詞)

山居四時各四吟 (산거사시각사음) - 李滉 (이황)

-수헌- 2022. 8. 24. 14:57

山居四時各四吟 共十六絶 산거사시각사음 공십륙절      李滉 이황

산속에 거주하며 사계절을 각 네 번씩 읊다. 모두 열여섯 절구이다.

 

이 시(詩)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산 속에 은거하면서 주위 풍경과 느낀 감회를 노래한 시인데,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의 풍경과 감회를 아침 낮 저녁 밤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 칠언 절구로 노래하였다. 그래서 이 시는 모두 16수의 칠언 절구로 이루어졌다.

 

春朝吟 춘조음

봄날 아침

 

霧捲春山錦繡明 무권춘산금수명

안개 걷힌 봄 산은 수놓은 비단처럼 밝고

珍禽相和百般鳴 진금상화백반명

진기한 온갖 새들 서로 응하며 울어 대네

山居近日無來客 산거근일무내객

산에 사는 요사이 찾아오는 손도 없으니

碧草中庭滿意生 벽초중정만의생

안 마당 가득 푸른 풀이 제멋대로 돋았네

 

 

春晝吟 춘주음

봄날 낮

 

庭宇新晴麗景遲 정우신청려경지

비 갠 뜰에 고운 경치는 더디게 와도

花香拍拍襲人衣 화향박박습인의

꽃향기는 옷자락에 가득히 스며드네

如何四子俱言志 여하사자구언지

어찌하여 네 제자가 자신의 뜻 말하는데

聖發咨嗟獨詠歸 성발자차독영귀

성인은 시 읊고 돌아온단 말만 칭찬했나

 

※獨詠歸(독영귀) : 공자(孔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각 자신들의 뜻을 말하라 [言志] 하였을 때, 모두 자기의 정치적 포부를 이야기하는데 증점(曾點)만 ‘늦은 봄에 봄옷이 완성되면 대여섯 명 어른, 예닐곱 아이들을 데리고 기수(沂水)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 가서 바람 쐬고서 시를 읊다가 돌아오겠다.’ 한 말을 유독 칭찬하였다는 고사(故事).

 

春暮吟 춘모음

봄날 저녁

 

童子尋山採蕨薇 동자심산채궐미

동자가 산을 찾아 고사리를 캐 왔으니

盤飧自足療人飢 반손자족료인기

반찬이 넉넉하여 굶주림 병을 고쳤네

始知當日歸田客 시지당일귀전객

전원에 돌아온 뜻을 오늘 처음 깨달으니

夕露衣沾願不違 석노의첨원부위

저녁 이슬 옷 젖어도 어김없길 바라네

 

※夕露衣沾願不違(석로의첨원부위) : 도연명(陶淵明)의 시 귀원전거(歸園田居)의 ‘길은 좁고 초목 무성해 저녁 이슬에 내 옷이 젖는구나. 옷 젖는 건 아깝지 않으나 다만 농사일 어김없길 바라네. [道狹草木長 夕露霑我衣 衣霑不足惜 但使原無違]’라는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春夜吟 춘야음

봄날 밤

 

花光迎暮月昇東 화광영모월승동

꽃 빛이 저녁에 동쪽에 뜨는 달을 맞이하니

花月淸宵意不窮 화월청소의불궁

밤은 맑고 꽃과 달의 정취가 다하지 않구나

但得月圓花未謝 단득월원화미사

다만 달이 둥글어져도 꽃이 지지 않는다면

莫憂花下酒杯空 막우화하주배공

꽃 아래서 술잔 비울 걱정은 하지 않으리라

 

 

夏朝吟 하조음

여름날 아침

 

晨起虛庭竹露淸 신기허정죽노청

새벽에 일어나니 빈 뜰 대나무에 이슬이 맑고

開軒遙對衆山靑 개헌요대중산청

문을 열고 멀리 마주하는 뭇 산들이 푸르구나

小童慣捷提甁水 소동관첩제병수

어린아이가 재빠르게 병에 물 길어 돌아오니

澡頮湯盤日戒銘 조회탕반일계명

세수하는 대야에 탕 임금의 일계명이 새겨있네

 

※湯盤日戒銘(탕반일계명) : 탕반(湯盤)은 은(殷) 나라 탕왕(湯王)의 목욕반(沐浴盤)을 말하는데 스스로를 경계함을 의미한다. 탕왕(湯王)은 목욕반에 ‘참으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마다 날로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한다.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라고 새겨서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한다.

 

 

夏晝吟 하주음

여름날 낮

 

晝靜山堂此日明 주정산당차일명

고요한 한낮 산 집에는 햇빛이 밝은데

葱瓏嘉樹遶簷楹 총롱가수요첨영

곱고 푸른 나무가 처마 끝을 에워쌌네

北窓高臥羲皇上 배창고와희황상

북창 아래 높이 눕자 희황상인이 된 듯

風送微涼一鳥聲 풍송미량일조성

시원한 바람 속에 새소리를 보내오네

 

※희황상인(羲皇上人) : 진(晉) 나라 때의 은사(隱士)인 도잠(陶潛)의 자호이다. 도연명(陶淵明)이 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에서 ‘오뉴월 중에 북창 아래에 누워서 잠시 불어온 서늘한 바람을 만나니 스스로 희왕상인이라 일컫네. [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오뉴월 중 북창하와 우량풍잠지 자위시희황상인)]’이라 한 것을 인용하여 자신을 도연명(陶淵明)에 비유하였다.

 

 

夏暮吟 하모음

여름날 저녁

 

夕陽佳色動溪山 석양가색동계산

석양의 고운 빛깔에 시내와 산이 변하니

風定雲閒鳥自還 풍정운한조자환

바람 자고 구름 한가해 새들도 돌아오네

獨坐幽懷誰與語 독좌유회수여어

홀로 앉아 그윽한 정을 누구와 얘기할까

巖阿寂寂水潺潺 암아적적수잔잔

바위 언덕 적적한데 물만 졸졸 흘러가네

 

 

夏夜吟 하야음

여름날 밤

 

院靜山空月自明 원정산공월자명

집은 고요하고 빈산에 달은 절로 밝은데

翛然衾席夢魂淸 소연금석몽혼청

여유롭게 이불에 앉으니 몽혼도 맑아지네

寤言弗告知何事 오언불고지하사

깨어나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일인지 아는데

臥聽皐禽半夜聲 와청고금반야성

한밤중 서로 부르는 새소리 누워서 듣네

 

※夢魂(몽혼) : 꿈속의 넋.

 

 

秋朝吟 추조음

가을날 아침

 

殘暑全銷昨夜風 잔서전소작야풍

어젯밤 바람에 늦더위가 모두 사라지고

嫩涼朝起灑襟胸  눈량조기쇄금흉

아침에 일어나니 서늘함이 가슴에 스미네

靈均不是能言道 영균부시능언도

굴원이 도에 대하여 말을 할 수 없었다면

千載如何感晦翁 천재여하감회옹

천년 뒤 회옹이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靈均(영균)  : 초(楚) 나라 출신으로 어부사(漁父辭)를 지은 굴원(屈原)을 말한다. 굴원의 자(字)가 영균(靈均)이다. 굴원이 어부사(漁父辭)에서 ‘온 세상이 다 혼탁해도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어도 나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내가 버림받은 것이다.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放見(거세개탁 아독청 중인개취 아독성 시이방견)]’라고 한 것을 말한다.

※晦翁(회옹) : 朱熹(주희)를 말함, 주자학을 집대성하여 朱子(주자)로 불린다.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고, 회옹(晦翁)은 그의 여러 가지 호 중의 하나이다.

 

 

秋晝吟 추주음

가을날 낮

 

霜落天空鷹隼豪 상낙천공응준호

서리 내린 빈 하늘의 새매는 호기롭고

水邊巖際一堂高 수변암제일당고

물가의 바위 사이 집 한 채 높다랗네

近來三徑殊牢落 근내삼경수뇌낙

요즘 세 갈래 길도 유난히도 쓸쓸하여

手把黃花坐憶陶 수파황화좌억도

국화를 잡고 앉아 도연명을 생각하네

 

※三徑(삼경) : 도령삼경(陶令三徑). 도령(陶令)은 팽택령(彭澤令)을 지낸 진(晉) 나라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한(漢) 나라 장후(蔣詡)가 뜰에 오솔길 세 개를 내고 송(松), 국(菊), 죽(竹)을 심은 고사가 있는데, 은사(隱士)의 청빈한 생활을 의미한다. 도잠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오솔길은 황폐해지는데, 소나무 국화는 그대로 있네. [三徑就荒 松菊猶存]’라는 구절이 있다,

 

 

秋暮吟 추모음

가을날 저녁

 

秋堂眺望與誰娛 추당조망여수오

가을 집 조망을 누구와 함께 즐길까

夕照楓林勝畫圖 석조풍림승화도

석양 비친 단풍 숲이 그림보다 낫구나

忽有西風吹雁過 홀유서풍취안과

홀연히 서풍 불고 기러기가 지나가도

故人書信寄來無 고인서신기내무

옛 친구는 편지 한 장 보내오지 않네

 

 

秋夜吟 추야음

가을날 밤

 

月映寒潭玉宇淸 월영한담옥우청

차가운 못에 달 비치고 하늘은 맑은데

幽人一室湛虛明 유인일실담허명

유인이 밝고 빈방 하나에 빠져 있구나

箇中自有眞消息 개중자유진소식

그 가운데로부터 참된 소식이 있으니

不是禪空與道冥 부시선공여도명

참선의 공도 아니요 도가의 명도 아니네

 

※玉宇(옥우) : 옥으로 장식한 궁전. 천제(天帝)가 있는 곳, 즉 하늘을 가리킨다.

※幽人(유인) : 어지러운 속세를 피하여 깊숙한 곳에 숨어 사는 사람. 은자(隱者).

 

 

冬朝吟 동조음

겨울날 아침

 

羣峯傑卓入霜空 군봉걸탁입상공

뭇 산봉우리들 가을 하늘 속에 우뚝 솟았고

庭下黃花尙倚叢 정하황화상의총

뜰아래 누런 국화는 아직 몇 떨기 남았는데

掃地焚香無外事 소지분향무외사

바깥이 무사하도록 땅을 쓸고 향불을 피우니

紙窓銜日皦如衷 지창함일교여충

종이창이 햇빛 머금어 밝기가 속마음 같구나

 

 

冬晝吟 동주음

겨울날 낮

 

寒事幽居有底營 한사유거유저영

쓸쓸하게 은거하며 살며 추울지라도

藏花護竹攝羸形 장화호죽섭리형

꽃 심고 대숲 돌보며 몸을 보전하네

慇懃寄謝來尋客 은근기사내심객

찾아오는 손님 은근히 사양해 보내니

欲向三冬斷送迎 욕향삼동단송영

삼동이 되면 맞이하고 보냄도 끊으리라

 

※幽居(유거) : 속세를 떠나 깊숙하고 고요한 곳에 묻혀 외따로 삶.

 

 

冬暮吟 동모음

겨울날 저녁

 

萬木歸根日易西 만목귀근일역서

모든 나무 잎이 지고 쉬이 해는 지는데

烟林蕭索鳥深棲 연림소색조심서

안개 낀 쓸쓸한 숲 깊이 새가 깃들었네

從來夕惕緣何意 종내석척연하의

예부터 저녁에 두려워함은 무슨 연유일까

怠欲須防隱處迷 태욕수방은처미

은미한 곳에서도 게으름을 막고 싶어서네

 

※夕惕(석척) : 日乾夕惕(일건석척)의 준 말인 듯.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삼효(九三爻)에 나오는 문장으로 ‘군자는 날마다 부지런히 노력하고 저녁에 걱정하면 위태롭거나 허물은 없다. [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無咎]’라는 뜻인데, 날마다 쉬지 않고 부지런하며 저녁에는 하루를 반성하고 자기 행동을 두려워하며 걱정한다면 허물이 없을 것이라는 뜻.

 

 

冬夜吟 동야음

겨울날 밤

 

眼花尤怕近燈光 안화우파근등광

눈병이 심하니 등불 가까이하기 두렵고

老病偏知冬夜長 노병편지동야장

늙고 병드니 겨울밤 긴 것을 조금 알겠네

不讀也應猶勝讀 부독야응유승독

책 읽지 않는 것이 읽기보다 나을 듯하여

坐看窓月冷於霜 좌간창월냉어상

앉아서 서리보다 찬 창밖의 달빛을 보네

 

※眼花(안화) : 눈앞에 불똥 같은 것이 어른어른 보이는 안질(眼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