漁村楊先生光山書院奉安文
伏以鄒魯之彦士林之栻 妙歲登庠 修程有關維時昏亂倫網 斁塞聯章媚竈時論崩角 投袂南歸潔身守 白宣光再造淸議復作旌招時望薦剡相續 豈曰長往 聖俞無祿 建盧南犯 天步蹙蹙雪涕 赴難義旅赫林赫盟成痛哭寸鐵彌激 絕跡名利雅意邱壑卜築江上大明日曆 花竹相鄰 魚鳥為樂展也 樹立允矣學力觀省懲室體驗 經籍戒深鸚鵡耻切墦郭風彩不泯百世炳若於何質證眉老石刻士心靡然爭推懿德崇報之誠曠世靡忒 一區光山桑梓舊蹟堂室秩秩廟宇嶷嶷山高水長瞻仰如昨 兹涓吉辰縟儀遵式襟佩有齊籩豆孔碩 於千萬年明祀無斁
後學李東沆謹撰
漁村楊先生光山書院奉安文
어촌 양선생 광산서원 봉안문
伏以鄒魯之彦士林之栻
엎드려 생각컨대 추로의 성현을 뒤따른 선비이시며 사림의 스승이었다.
妙歲登庠 修程有關維時昏亂倫網斁塞聯章媚竈時論崩角
젊은 나이에 태학에 드시어 수학할 때 앞길이 열려 있었으나 오직 시국이 혼란하고 윤강이 폐색되어 연이어 올리는 상소는 아첨을 일삼고 있어 세상 정론이 다투어 묻어졌다.
投袂南歸潔身守白
옷깃을 뿌리치고 남쪽으로 돌아와 몸을 깨끗이 하고 청백을 지켰다.
宣光再造淸議復作旌招時望薦剡相續
옳은 것을 밝히는 빛이 소생되고 밝은 의론이 다시 살아났다. 이름난 착한 사람을 불러 천거하고 삭관하기를 계속하였다.
豈曰長往聖俞無祿
어찌 길게 가리요 마는 그러한 성대에 록을 얻지 못했다.
建盧南犯 天步蹙蹙雪涕
멀리서 오랑캐가 남침하게 되어 임금의 걱정이 대단했다.
赴難義旅赫林赫盟成痛哭寸鐵彌激
눈물을 흘리면서 전난에 달려가서 의병의 행렬이 빛났다. 항복을 맹세하게 되어 통곡하였다. 총칼마저 써 보지 못했다.
絕跡名利雅意邱壑卜築江上大明日曆 花竹相鄰 魚鳥為樂展也
명리와 자취를 끊은 채 바른 뜻을 품고 고향에 돌아와 강 위에 집을 짓고 밝은 나날을 보냈다. 꽃과 대나무를 이웃했으며 고기와 새를 벗 삼아 즐기었다.
樹立允矣學力觀省 懲室體驗經籍 戒深鸚鵡耻切墦郭
진실한 뜻을 세우고 학력을 진실하게 쌓았으며 사사로운 정을 억누르고 살폈으며 경서에 있는 바를 체험했다. 함부로 말하는 것을 깊이 경계했으며 수치스러운 일을 삼가 해 걸식하는 것처럼 간절히 싫어했다.
風彩不泯百世炳若於何質證 眉老石刻士心靡然爭推懿德崇報之誠曠世靡忒
풍채가 어두워지지 않고 백세에 빛나야 하거늘 무엇으로 증명할까. 미수의 비명이기에 선비들 마음 쏠리고 떳떳한 덕을 다투어 추앙했으며 숭배하고 보답하려는 정성이 온 세상에 감돌았다.
一區光山桑梓舊蹟堂室秩秩廟宇嶷嶷山高水長瞻仰如昨
광산일구는 고향 옛터인데 당실이 정연하고 묘우가 높고 높아 산고 수장한 풍모를 우러러 본지가 어제 같구나.
兹涓吉辰縟儀遵式襟佩有齊籩豆孔碩 於千萬年明祀無斁
이에 좋은 날을 가려 절차와 의식을 갖추었으며 선비들의 의관이 정제 되었고 제기들이 번듯하다. 천만년에 걸쳐 신령스런 제사가 다함이 없으리라.
後學李東沆謹撰
후학 이동항이 삼가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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